당나귀 신사는 왜 쥐꼬리 수익에도 감개무량인가
사실 60만 원은 그동안 잃은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돈이었지만, 주식이든 경마든 이익을 본 기억이 워낙 까마득했으므로 감개무량하였던 것이다. 백팔만은 지도자 ‘탈법자’에게 전화해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으나, 대규모의 자금으로 주식 시세를 총괄 지휘하느라 바쁜 분을 직접 호출하는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 하여 그는 정중하게 문자를 남겼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 건가? 3천 주가 아니라 3만 주를 사서 600만 원을 벌었어야 했는데 밑천이 부족한 게 원통하구나! 당연히 백팔만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탈법자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셔야겠다, 우선은 당나귀에 태워 소줏집 골목으로라도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번 돈으로 주말 경마에 걸면 왠지 재수가 좋을 것 같았다. 경마도 온갖 작전 얘기가 난무했지만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눈앞에서 생생하게 이루어지는 건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말 못하는 말이 뛰다 보니 설령 작전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꼭 그대로는 안 되는 게 경마 아닌가 싶었다. 말이라는 동물이 인간보다 충직하고 정직하다는 사실도 작전이라는 걸 어렵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었다. 그런데 탈법자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정확하게 주가를 예측할 수 있는가? 게다가 실제로 돈을 벌게 해줌으로써 백팔만으로 하여금 기쁨과 함께 일견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는가? 그는 작전세력의 우두머리이거나 적어도 실세임이 분명한 것 같았다.
“뭐야, 이게. 오빠 지금 돈 번 거야?” 마돈걸이 돈 냄새는 정말 잘 맡는다. 그 후각 하나만은 천부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사실 마돈걸이 백팔만처럼 돈 없고 사회적 지위도 없는 사내를 오빠라고 부른 건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그녀는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을 활용해서 20대 중반 이후 10년 이상을 숱한 남자와 색깔도 다양한 데이트를 해왔다. 그들이 정보도 줬고 돈도 줬고 쾌락도 줬고 그리고 배신감과 상실감도 줬다. 마돈걸은, 지난 여름 쌍승식 150배당이 터졌을 때 마권을 쥐고 돈을 찾으러 갔던 남자가 영원히 떠나버린 기억을 떠올렸다. 운은 왔지만 남자는 갔다. 돈이 뭔데 남자는 사랑을 걷어차나? 당나귀 오빠, 당신이 한 번 대답해봐!
- 다음주에 계속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