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들이닥친 봄의 어느 날이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황사를 걷어내긴커녕 오히려 쌀쌀함만을 더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맑고 더웠다. 나는 하루 만에 얼굴을 바꾸는 날씨에 의문을 표하고 황사 너머로 뿌옇고 흐릿한 관악산을 보며 예시장으로 향했다.

바깥공기가 좋지 않더라도 재빨리 예시장으로 가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경마 팬들이 예시장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부경의 다섯 번째 경주가 채 끝나기도 전에 예시장의 가장 낮고 가까운 자리로 갔다.

부경의 경주가 끝나자 팬들이 몰려들어 예시장을 가득 채웠다. 그 모두가 서울의 7경주, 헤럴드경제배의 예시를 보기 위함이었다. 출전하는 마필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의 편자가 예시장 바닥에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와 예상지가 펄럭이는 소리, 웅성거림과 더불어 개인의 판단을 피력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최현성 전문기자
ⓒ최현성 전문기자
해럴드경제배(G3)에서 14번의 번호로 출전한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해럴드경제배(G3)에서 14번의 번호로 출전한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나는 글로벌히트의 우승을 점쳤다. 모두가 예상하는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나는 글로벌히트의 2023년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와 대통령배, 그리고 그랑프리를 지켜봤다. 그의 달리기는 압도적이었다. 결국 위너스맨의 그것에는 닿지 못했지만, 정말 근소한 차이로 결승선을 넘을 만큼 바짝 따라붙었으며 그것은 위너스맨을 제외한다면 어떤 말도 쉽게 대적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글로벌히트에게 주어진 14번의 인기 1위와 가장 낮은 배당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내 주관적인 판단을 따라 예상한 글로벌히트의 뒤를 쫓는 말들은 투혼의반석과 스피드영, 너트플레이, 그리고 심장의고동이었다. 투혼의반석은 그 이름처럼 굳세게 버틸 줄 아는 말이었고, 스피드영과 너트플레이는 글로벌히트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으며, 심장의고동은 경험이 가장 많은 말이었고 근래 큰 주목을 받는 씨씨웡 기수가 기승했다.

해럴드경제배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수들은 당당하지만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예시장이 달아올랐다. 예시장을 둥글게 감싼 여러 쌍의 호흡들이 지나갈 때마다 팬들은 그들의 이름을 외쳤다. 팬들이 보내는 응원과 기대가 그들의 어깨에 고스란히 지어졌다. 예시장에서의 시간은 정말 짧았고, 그들이 지하마도로 사라지자 나는 결승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에 입장하는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주로에 입장하는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긴 거리의 대상경주의 주로 입장은 역시 그 템포가 빠르다. 재빠르게 발주대로 향하는 주자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어 올려 사진을 촬영했다. 하지만 셔터박스가 바쁜 건 잠깐이었다. 모두 결승선 앞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렀고, 마권 발매 마감 알림음이 울렸다. 2000미터의 더트의 세계를 앞두고 모두 발주대 안에 들어섰다. 경마 팬들은 모두 한 곳을 주시했다. 

 

선행으로 앞서나가는 빅스고와 이동하 기수, 심장의고동과 씨씨웡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선행으로 앞서나가는 빅스고와 이동하 기수, 심장의고동과 씨씨웡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그리고 발주대가 열렸다. 가자! 내가 외쳤다. 빅스고와 그를 곧바로 뒤따라 옆에 나란히 선 심장의고동의 선행 질주가 앞을 지나쳤다. 빅스고에 기승한 이동하 기수가 크게 고개를 돌려 씨씨웡 기수를 주시했다. 열다섯 두의 말들이 길게 늘어지더니 첫 번째와 두 번째 코너를 통과했다. 경주의 중반에 다다를 때 선두 그룹은 정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심장의고동과 투혼의반석, 스피드영, 빅스고가 맨 앞을 달려나갔고, 글로벌히트는 그 뒤의 중단보다 조금 앞선 곳에서 전개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트플레이는 글로벌히트의 뒤에서 그 움직임을 마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세 번째 코너를 건너 네 번째 코너에 들어섰을 때조차도 선두 접전은 이어지고 있었다. 심장의고동, 투혼의반석, 스피드영 셋이 나란히 코너를 돌았다. 글로벌히트가 빅스고의 바로 옆으로 올라왔고, 너트플레이는 그 뒤를 따랐으며 티즈바로우즈도 대열을 따라 달렸다. 마지막 코너를 벗어나면서 마군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최현성 전문기자
ⓒ최현성 전문기자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 ⓒ최현성 전문기자
해럴드경제배(G3) 시상식(사진=최현성)
해럴드경제배(G3) 시상식 ⓒ최현성 전문기자

 

선행그룹의 싸움은 그대로 이어졌고, 후발주자들이 매섭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장의고동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여 뒤로 밀려났으며, 글로벌히트를 따라 너트플레이와 티즈바로우즈가 다리를 뻗었다.

글로벌히트는, 김혜선 기수의 독려에 맞추어 매섭게 치고 나왔다. 아무도 막지 못했고, 누구도 붙을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조재로 기수로부터 신호를 받은 너트플레이가 굉장한 탄력으로 초반 선행그룹을 떨쳐내고 바짝 쫓았지만 차이를 좁히기에는 너무 늦었다. 응원과 기대와 함성이 탄식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14번의 글로벌히트와 김혜선 기수가 가장 빠른 달리기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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