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한라문화제 및 제10회 조랑말경주대회 모습
88서울올림픽 ‘과천경마시대’ 화려한 서막에 일대 전기

국제 규격 승마장, 경마장과 연계 건설 한국경마 새로운 도약
조랑말 지원·마주 실태 파악 등 위한 준비 목적 제주경마시행

제주도는 1982년 5월 감소일로에 있는 제주재래마의 혈통보존책을 각계에 건의하면서 마사회에는 조랑말경마와 제주농가와의 경주마 계약사육을 요청했다.

제주 조랑말경주 시행

제주도의 이같은 요청에 마사회는 서울경마장에서 조랑말경주를 시행하는 방안과 제주도 내에 경마장을 설치하고 제주에서만 시행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를 계속한 끝에 후자에 중지를 모았으나, 과천올림픽승마경기장과 원당종마목장 건설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어 제주에까지 손을 뻗칠 여력이 없는데다 제주의 시장성 취약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소극적인 자세로 방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화재보호 측면에서의 제주경마시행의 필요성에 의해 경마장 건설에 착수하게 된 마사회는 1987년 7월 4일, 본 경마장의 착공에 앞서 최초의 조랑말경주를 제주공설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시행하게 된다.
정규경마 시행전의 분위기 조성이나 조랑말자원과 마주의 실태파악, 개인마주제 실시를 위한 준비 등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던 조랑말경주는, 월 1회 7~8두 편성으로 10~13경주씩 시행되어 출주보조금, 착순상금 외에 관람자에게 경품을 추첨하는 등 경마팬들도 조랑말경마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조랑말경주대회는 1990년 10월, 본 경마장이 개장할 때까지 계속됐다.

마필관리의 개선

마사회는 마필 보건관리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마필의 질병 예방과 진찰기술의 개발을 위해 1982년 3월 24일 한국마사회 부속 동물병원을 개설했다.
동물병원의 개설은 마필보건분야의 연구개발과 진료예방 등의 적극적 측면에도 설립목적이 있었으나, 그보다는 마필의 폐사 등을 자체 처리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데 더 절실한 목적이 있었다.
마사회는 경주마, 승용마 등 방대한 마필을 보유하고 자체 수의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폐사의 경우 가축전염병예방법, 축산물가공처리법, 수의사법 등의 법령에 묶여 방역관 또는 외부 수의사의 진단을 거쳐야 처리할 수 있는 불편을 겪어왔기 때문에 이를 동물병원 개설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마사회는 1976년에도 이 같은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농수산부에 가축 방역관 위촉을 의뢰했으나, 농림수산부에서는 방역업무는 마필보건소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폐사처리 등은 지역담당관이나 개업수의사에게 의뢰할 수 있는 것이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81년 12월 10일, 악벽마 영차호가 기수후보생들의 발주연습 도중 넘어져 폐사한 것을 계기로 병원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또한 마사회는 마필의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1983년에는 60두 수용 규모의 마필휴양소를 금곡(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용정리)에 설치했다.
약 1만 3223㎡ 규모(4000평)의 사유임야를 임대해 1983년 4월 21일 개장한 마필휴양소는 당장 경주에 이용하기 어려운 경주마를 옮겨다가 200여 평의 운동장에서 마음대로 뛰놀게 하여 원기를 회복하면 다시 경주마로 활용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실제 15.5%였던 마필불용률이 설치 이후 12.6%로 감소하는 등 휴양소의 개설은 큰 효과가 있었다.
이후 금곡휴양소는 마필 보유두수의 증가에 따라 90두 마사와 140두 마사를 주로외곽(3~4코너 뒤)에 신설하여 마필수용시설을 대폭 보강하게 됐다.

승마경기장의 건설
마사회는 제23회 하계올림픽대회가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기회에 올림픽 승마경기장 건설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과천에 국제수준의 새 경마장을 건설, 과천시대를 열었다.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을 경마발전의 계기로 최대한 활용한 과천올림픽승마경기장 건설사업은 서울경마장 건설로 연계되어 마사회가 한국경마를 새로운 도약대에 올려놓은 1980년대 최대의 의욕적인 사업이었다.
1983년 2월 올림픽승마경기장 건설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후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한 마사회는 1983년 6월초에 동원토질과 예정지의 지질 및 지하수원 조사 실시 계약을 체결하여 7월 중순까지 조사를 완료했으며, 6월에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환경영향평가, 현황측량, 기본설계 및 토목실시설계 계약을 체결해 11월 중순까지 작업을 완료했다.
이와 함께 마사회는 조경설계를 자체적으로 설계해 1983년 10월부터 1984년 3월까지 조경 1차지역 설계를 완료하고 1984년 9월부터 1985년 2월까지 조경 2차지역 설계를 마침으로써 조정설계를 완료했다.
이와 함께 1983년 7월 서울시의 도시계획시설승인 및 승마경기장 건설을 위한 경기도의 개발제한구역내 행위 허가(토질형질부문)등의 인허가를 받아, 1984년 4월 24일 토목 및 조경공사를 착공했으며, 5월 16일에는 농림수산부장관과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위원장 등 관계인사 참석하에 올림픽승마경기장 기공식을 거행했다.
또한 마사회는 1983년 9월 정림건축과 금성건축에 건축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맡겨 1984년 8월에 주경기장 관람대 설계(정림건축)를, 1984년 9월에 실내마장외 22건의 설계(금성건축)를 끝낸 후, 1985년 2월 8일 경기도의 개발제한구역내 행위허가(건축무분)와 함께 건축 및 전기통신공사를 착공했다.
이들 공사는 1988년 7월 4일 시설 및 건축물을, 12월 10일 토목·조경·전기통신공사를 마무리지어 올림픽승마경기장을 완성했다.
올림픽 승마경기장과 서울경마장 건설의 경위와 내용은 3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뚝섬경마장의 폐장

6·25 직후인 1954년 5월 8일 전쟁의 재난 혼란기에 어렵게 개장해 우리나라의 단일 경마장으로서 경마의 맥을 이어온 뚝섬경마장은 1989년 8월 6일의 일요경마를 끝으로 만 35년 3개월간의 대단원의막을 내렸다.
과천 새 경마장건설의 주재원이 되기까지 그 몫을 다한 뚝섬경마장은 당초의 약속대로 서울시에 무상양도되어 시민의 체육공원으로 조성되어 새 주인을 맞게 됐다.
뚝섬경마장은 1983년 2월 정부방침으로 서울시에 기부채납과 동시에 마권세를 감면, 올림픽 승마경기장의 건설재원에 충당키로 했으나 경마장 토지사정(소송계류)으로 기부채납이 늦어져 1986년 4월에야 기부채납 수속이 끝났다.
기부채납시의 자산평가액은 725억 8000만 원으로 기부채납 후에 발생하는 법인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산재평가와 4년간(1986~1989)의 이연손비처리 등 정부의 많은 행정지원이 뒤따랐다.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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