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으로 경주를 지켜보는 재결위원들
강착·실격 제도 시행
한국경마 70년 사상 처음 시도된 강착·실격제는 경마제도의 대변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착·실격제는 1933년 마주제 전환과 동시에 시행된 것으로, 경마 선진화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였다. 이는 경마의 생명인 공정성 확보와 격렬한 순위 경쟁에서 예상되는 사고를 예방하고 경마 팬의 진정한 권익을 위해 마련됐기 때문이다.
단일마주제 하에서는 주행 중 방해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방해마의 기수 또는 마필에 대해 제재처분을 하였을 뿐 도착 순위는 변경하지 않았다. 따라서 강착·실격을 적용할 경우 경마팬의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우려하는 바가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강착·실격제를 수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개인마주제와 병행 시행
마사회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개인마주제 전환과 병행해 강착·실격제의 도입을 위해 세계 각국의 경마제도에 대한 비교 분석과 선진경마국의 재결전문위원을 초빙해 자문을 받는 한편 재결전문위원들의 해외연수를 통해 실제 적용사례를 수집하는 등 만반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울러 경마시행 규정 제100조의 재결 사항 공개 불가원칙 조항을 삭제하는 등 제규정 정비와 고객 홍보 등 철저한 사전준비를 했다. 또한 1992년 10월부터 강착·실격에 대한 개념 소개부터 시작해 마주, 조교사, 기수, 관리사 등 마필관계자와 본회 임직원부터 자회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반복 교육을 실시했고 경마 팬들에게도 꾸준히 홍보했다.
강착이란 착순이 확정되기 전에 결승선에 도달한 말이 다른 말의 착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주행을 방해했을 때 방해마의 착순을 피해마의 차순위로 변경하는 것으로, ‘착순 변경’이라고도 한다. 이때 다른 말의 주행 방해란 진로를 방해하거나 고성 또는 부당 채찍, 타마 압제, 또는 충돌했을 경우가 해당된다. 실격이란 경주 중에 어떤 말의 방해로 인해 방해당한 말(피해마)이 더 이상 경주를 하지 못하게 된 경우 방해한 말(가해마)을 제외(실격)하는 것이다.

실격·강착 사유
강착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다른 말의 진로를 방해한 말에게는 어떠한 착순도 부여하지 않는 이른바 실격제가 운영됐다. 심지어 기수가 다른 말의 방해로 넘어져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결승선 앞에서 다른 말의 진로를 막아도 방해한 기수에게 제재만 했지 착순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착순 결정에 있어서는 다른 말을 방해한 말은 피해를 당한 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실격제도를 보완한 착순변경제도가 등장한 것이다. 서울경마장에서는 실격제도가 있었지만 그나마 부분적으로 적용돼 강착제의 도입과 함께 전면적으로 시행됐다.
유럽에서는 1953년 독일에서 처음 이 제도를 도입했고 마사회의 경우 서울경마장은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하면서, 제주경마장은 1991년부터 시행해 왔다.

최초의 강착판정, 관중석도 평온
1994년 1월 15일 5경주에서 2착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10번마 도승지가 발주 후 150m 지점에서 내측사행으로 6번마와 5번마의 주행을 심하게 방해한 사례가 있었다. 재결에서 심의 결과 주행방해가 인정돼 10착으로 강착됐다. 도승지는 ‘방해당한 말보다 먼저 또는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한 경우에는 방해당한 말 다음 순위로 한다’는 규정에 따라 순위가 밀려난 것이다. 이에 따라 3착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5번마 우리별이 2착으로 판정돼 배당을 받게 됐다. 이날 착순 확정 전 복승식 유효마 강착의 예는 국내 경마 사상 처음이었고, 공정 경마 실현을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순위 변경에 따라 고객들의 항의나 소란이 우려됐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고객들의 한층 성숙한 관전 문화와 사전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홍보 덕분인 것으로 분석됐다.

3) 묶음제 및 강급제 폐지
1993년 후반부터 묶음번호제가 폐지되고 각개마번제가 시행됐다. 1990년 3월부터 시행된 묶음번호제는 출주 두수의 증가 요인에 반하는 제도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적중 확률을 높여 경마의 재미를 제공하고 경마가 도박 시 될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묶음번호란 동일 마주 또는 동일 조교사가 관리하는 말 2두 또는 3두가 같은 경주에 출주하는 경우 그 말들을 하나의 승마투표 단위로 묶는 것을 말한다. 2두를 하나의 묶음번호로 하기 때문에 각개번호로 투표하는 방식보다 적중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묶음번호제가 시행된 배경은 1989년 9월 과천경마장이 개장되면서 경주당 출주 두수가 종전 5년간 뚝섬경마장(평균 7.8두)에 비해 평균 9.9두(최대 12두)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출두수의 증가로 적중률 저하에 따른 제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묶음번호제가 등장하게 됐다. 묶음번호제는 보다 많은 경주마를 출주시켜 경주의 박진감을 배가하면서도 마권을 적중률을 어느 정도 유지해 많은 고객에게 골고루 적중의 기회를 부여, 경마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마권의 적중률이 높아짐으로써 상대적으로 베팅에 대한 안전도 덕분에 고액 베팅의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경마 과열 방지를 위해 도입된 묶음번호제는 고액 베팅의 부작용을 가져와 폐지에 이르게 됐다.

강급제 폐지로 공정 구현
이와 함께 1993년부터 ‘강급제’도 폐지됐다. 이는 1992년 경마 부정 사건의 여파로 마사회가 제시한 ‘건전 경마 정착 대책’ 가운데 하나였다.
강급제는 조교사의 마음먹기에 따라 하위군으로 내려올 수 있어 인위적인 능력 은폐나 승부 조작의 소지가 있었다. 당시 기수들은 상대가 강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순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말을 당기다(pull·경기 중 능력 있는 말을 누르고 고삐를 당겨 속도를 고의로 줄이는 행위)가 재결에 걸려 중징계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에 따라 우승 횟수와 수득 상금을 기준으로 해 등급 내 경주 1회 우승시 1개 등급 승급, 등급 내 1~3착 누적 상금이 등급 내 최하위 경주 거리 1착 상금 이상시 승급하는 것으로 했다. 다만 특별 경주는 1~3착 상금의 70%, 대상 경주는 50%를 승급 상금에 반영하도록 했다.
강급제가 존속한 이유는 원활한 경주마의 운용 때문이다. 실제로 강급제가 폐지되기 전인 1992년까지 이전 3년간 경주마 한 마리당 평균 사용기간이 45.6개월이었지만, 1993년에는 29.3개월로 급격히 떨어졌다.

4) 재결사항 공개
1992년 마사회는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8월 14일부터 재결사항을 공개한 것이다. 경마 시행 과정 중 마지막 비공개 사항이었던 기수 변경 사유, 경주 규칙 위반자에 대한 제재 내용 등의 공개는 상당히 위험 부담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결정이었다. 팬들이 경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경주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재결사항이란 경주 전후 또는 경주 중 경마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경주 규칙 위반 사례가 발행했을 때 재결위원이 취하는 조치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말에 대해서는 취소나 제외, 실격, 재검지시, 출주정지 등이 있고 사람에 대해서는 기수 변경, 제재 조치 등이 있다.
재결 조치와 관련, 이전까지는 경주 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 즉 기수변경, 마필의 취소, 제외 결과만을 공지했으나 1992년 8월부터 주요 관심 사항인 기수를 변경하는 사유, 제재, 마필 처분 내용 등을 공개하게 됐다.
새롭게 공개된 사항은 아래와 같다.

도표. 재결 사항 공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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