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마구 ‘보물’ 지정 추진 중인 김병천 고려방 대표 인터뷰

김병천 대표가 소장 중인 말 그림이 새겨진 ‘마형토기’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3월 전시회서 마구·청동말·말 토기·말 관련 고문서 등 출품
국가산업인 말산업 발전 위해 말 박물관 추진…투자·지원 절실

“한평생을 마구(馬具) 수집에 미쳐서 살아왔습니다. 팔도를 다 뒤지고 건강도 제대로 챙기지 못 할 정도였지만, 마구를 보면 흐뭇하고 기쁩니다. 여생도 마구와 말 관련 자료를 계속 수집해 말 박물관을 세우는 데 인생을 던져볼까 합니다.”

서울 한복판 인사동에 위치한 ‘고려방(高麗房)’은 인근 고미술전문점처럼 고미술품, 골동품을 취급하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즈넉하다 못해 마음이 차분해졌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아온 주요 문화재들, 관련 미술품과 골동품이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전시된 곳이니 그 삶의 무게와 흔적에 ‘이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서 ‘마구 전문 수집가’ 김병천 대표(62)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말과 동물을 유난히 좋아했고, 틈틈이 취미 삼아 고미술과 골동품을 모으더니 결국엔 직업도 바꾸고 재산까지 팔아 마구 수집에 ‘집착’한 김 대표의 열정 담긴 지난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특별한 애마인이자, ‘애마구인’이기도 한 김병천 대표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 한평생 마구 수집을 한 고미술전문가로 알려졌다.
“어릴 때부터 유독 말과 동물을 좋아했다. 대구가 고향인데 친척 중 한 분이 말을 키우고 있었다. 그곳 마구간에서 말을 보면 ‘참 멋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저 좋았다. 사람과 자연에 무해한 말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로 마구와 말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게 벌써 30년째다.”

- 왜 하필 마구인가?
“생물이기에 말도 결국 죽고 사라진다. 하지만 말이 남긴 마구, 장신구, 관련 자료는 영원히 남아 말과 함께했던 사람의 삶을 증명한다. 마구 등 유물은 기마민족인 우리 역사를 보여주고 오늘날에는 ‘국력’을 좌우할 중요한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구와 관련해서 국내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은 극히 적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 소장하고 있던 다른 유물을 처분하고 건물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조선 중대의 사어피 말안장과 조선 왕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말안장을 소유하고 있는 분을 찾아가 수차례 부탁해서 그 유물을 구입하게 됐다. 이후 말과 관련한 유물을 전반적으로 수집해 왔다.”

- 마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다.
“마구가 있다면 기후나 지리, 계절 여건 등 어떤 상황도 개의치 않고 직접 찾아간다. 전화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현장을 찾아 직접 봐야 마구 유품에 대한 구성과 감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유선 상의 설명과 다른 경우가 많다. 국적이 불분명하거나 형태 등이 손실된 경우가 허다해 30% 정도 마음에 들 정도다.”

- 사어피 말안장과 조선 왕의 말안장을 소개해 달라.
“그 전에 먼저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최문병(崔文炳) 의병장의 말안장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1983년 5월 보물 제747호로 지정된 이 안장은 등자, 배띠 등 부속구를 갖출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나무로 윤곽을 잡은 앞뒤 안교(鞍橋)의 바깥은 고슴도치 가죽을 씌우고 세 곳에 뼛조각으로 꽃 모양 무늬를 새겼다. 안장자리는 가죽으로 만들어 쇠로 고정시킨 것을 알 수 있다. 등자는 철제로 돼 있다.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희귀한 마구로 손꼽히고 최문병 의병장이 영천전투 때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사어피 가죽 안장을 보면 우선 전륜(안장머리·앞가리개) 안교는 상아뼈로 새겼는데 그 모양이 목숨수(壽)자다. 전투에 나가는 장군의 장수와 안녕을 기리며 새겨 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등자도 보존돼 있을 뿐 아니라 말다래(플랩)는 최문병 의병장의 말안장과 달리 무늬까지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중기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안장 전륜에 새겨진 모양을 보면 목숨수자가 더 선명하다. 게다가 안교 후륜 양 옆에 새겨진 무늬도 선명하고 고정된 쇠도 유실이 거의 없어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또 최문병 의병장의 말안장의 꽃모양 무늬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이 탄 말안장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안장의 전륜과 후륜 곳곳에 용무늬가 새겨졌다는 점이다. 9개의 용이 있는 ‘구룡’ 무늬가 발견된다. 이런 점들을 통틀어 보면 현재 보물로 지정된 최문병 의병장의 말안장과 비교해 보존 상태도 좋고 제작 재료가 거의 같아 손색 없는 유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국가 보물로 지정하기 위해 추진 중에 있으며 3월에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알릴 예정이다.”

- 마구와 말 관련 유물 전시회가 기대된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간 고려방에서는 스무 차례 넘게 소장 고미술과 유물을 일반 국민에게 소개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정확히 12년 전인 2002년 흑말 띠의 해에 마구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진행하지 못했었다. 12년을 기다려 올해 2014년 청말 띠의 해를 맞이했고, 3월 중순 즈음에 마구 전시회를 통해 온 국민에게 알리려고 준비 중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다.
소장하고 있는 마구 30점 외에도 삼국시대 출토된 마구 부속류, 고려시대의 청동말, 문서류, 전적(典籍)류, 토우말, 조선시대의 철마 등 말 관련 유물과 근현대의 유화, 민화 등을 출품할 예정이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 말산업은 국력을 좌우할 척도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말 관련 수집 유물을 널리 알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회의 의미가 있다. 특히 말산업에 관심이 많은 정부 부처 관계자와 각 지자체와 기관장님들을 초청, 우리 말 문화유산을 함께 보고 향후 말 박물관 설립을 위한 기반 논의를 하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 말산업육성법이 발효돼 올해로 4년 차를 맞았지만 우리 말 문화 복원, 유산 관리 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어 단절됐다는 평가다. 말 박물관 추진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된다.
“말산업은 국가가 추진하는 국가산업이다. 따라서 말 박물관도 국가가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정부 관계부처와 박물관 관계자들이 희귀 자료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재 추진도 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이런 차원에서 말 유물을 수집한 저라도 밀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박물관을 하는 일은 국내에서는 개인이 주도하는 것은 아마 최초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말 박물관이 있다’고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싶다. 하지만 지원이 부족하다. 이 뜻 깊은 일에 투자하고 함께할 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대학교 예술대학원 고미술감정학과 석사과정에서 말안장과 관련한 논문도 쓰고 있다. 말 유물 수집가로서 사회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기에, 이 분야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여생을 마구와 말 관련 자료 수집에 헌신할 것이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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