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을 받은 말고기. 근내 지방도가 우수한 고품질 말고기 생산을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의 비육 기간이 필요하다.

제주도서 4년째 판정 등급제 시범 시행…전 세계 최초로 등급제 준비 중
소비자는 원산지·품질 중요시…농협·말산업중앙회, 마육산업 선점 경쟁
말고기 가치와 유통에 대한 인식 전환 통해 음식 문화로 자리 잡을지 기대

말산업이 육성되기 위해서는 생산·육성뿐 아니라 ‘소비’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소비 시장의 중심에는 바로 말고기가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말고기,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말산업 선진국과 국내 현황, 말고기에 관한 제도와 소비자의 인식, 향후 말고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산업계 동향을 정리했다.

‘말의 고장’ 제주도에 가야 말고기를 먹을 기회가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제주도에는 60여 개소의 말고기 전문 음식점이 있고 말고기는 연간 약 300톤이 소비되고 있는데, 이는 일본 소비량인 2만 톤의 1/67수준이다.

말고기는 아직 한우나 돼지, 닭처럼 축산물등급제도에 따라 등급 판정을 받지 않는다. 고기 품질에 따른 등급 기준을 매겨 품질을 차별화하면 소비자는 등급 구매지표를 통해 취사선별을 할 수 있고 생산자는 보다 좋은 품질을 생산할 수 있지만, 아직은 시범 사업에 그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원장 허영)은 2011년부터 제주도에서 ‘말고기 판정 시범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2009년 12월 제주도가 농림축산식품부에 제도 도입을 건의한 이후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말고기 등급 판정 기준을 마련하게 된 것. 말산업 선진국인 일본,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는 소나 돼지, 닭·오리에 대한 축산물 등급제를 1920년대부터 1980년대에 시작했지만, 말고기 등급제는 전무하다. 시험 사업이지만 말에 대한 등급 판정을 시도한 건 우리나라가 최초인 것.

등급 판정 과정은 출하에서 도축, 예냉 그리고 등급판정 후 가공과 판매 과정을 거친다. 말고기 등급제는 크게 육질등급과 육량등급으로 나뉜다. 육질등급은 근내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등으로 1+, 1, 2등급으로 구분하고 육량등급은 면적, 등지방두께, 도체중량을 측정해 A, B, C 등급으로 나눠 유통된다.

각종 평가를 거쳐 2012년부터 본 사업으로 도입하려고 했지만 난제도 많았다. 행정 및 재정적 지원 부족, 유통업체의 참여율과 공급량 미비,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4년째 시범 사업에 그치고 있는 것. 제주축협 축산물공판장에서 도축한 말은 축산물품질평가원 제주지원으로부터 말도체 등급 판정을 받은 후 확인서를 발급받아 농업회사법인에 신청하면 장려금도 지원되지만 그 금액이 적고 과정이 번거로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간 당일 도축 후 바로 시장에 유통되는 ‘온도체’ 유통 방식에 익숙한 말고기 유통업계는 사전 엄격한 위생 검사와 안전을 고려한 예냉 유통 방식(도축 후 24시간 냉동 과정을 거쳐 판정)을 번거롭게 느껴 등급 판정을 회피한다. 게다가 농가에서는 자가도축하는 일명 ‘추렴문화’가 성행해 정확한 도축 두수 추정도 어렵고, 도축한 뒤 등급 판정에 참여하는 비율이 50% 이하(2011년 38.3%)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말고기 등급제 도입은 말산업 영역을 확대시키고 고기 품질을 개선해 제주도 내 60여 개소 전문 음식점과 부가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에 따르면, 말고기 시범 등급제는 본 사업으로 추진되기 위한 활성화 근거가 아직 부족하고 음식 문화는 쉽게 바뀌기 어렵기에 시간이 필요한 사업으로 보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지난해 11월 축산물품질평가 업무 및 식육 관련 기초 자료 확보를 위해 관계 발표회를 갖고 말고기 소비 활성화를 위한 말 도체 등급기준 설정에 관한 연구를 보고하기도 했다. 1993년 도입된 한우 등급제 또한 위생과 시장 안정성 등을 고려하는 등 20년 넘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비교해 보면(일본의 한우 등급제는 1964년·미국은 1927년에 각각 시행), 정부의 말산업 육성 지침에 따라 말고기 등급제 도입은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 말고기, ‘너 낯설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말고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비리다’, ‘질기다’라는 편견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검증되지 않고 낯설기에 말고기의 위생을 고려한 원산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청장 이양호)이 지난 2010년 제주도 내 말고기 식당을 찾은 고객 1,126명을 대상으로 말고기의 품질과 관련된 소비자 의식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원산지 중시(25%), 가격 중시(20%), 품질 중시 등 선택 취향이 나타났다. 원산지를 중요시 하는 선택 취향은 가격에 상관 없이 제주산 말고기를 특히 선호하는 그룹에서 나타났다.

말고기의 원산지와 가격, 품질을 선호하는 성향은 마블링, 육색, 연도, 냄새 등의 요인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인데 이는 소고기(마블링·품질·가격)나 돼지고기(품질, 냄새) 등과 비교할 때 말고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고, 다른 고기를 대할 때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제주 말고기 업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2010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중국에서 수입한 말을 도축해 제주 토종 조랑말고기로 둔갑해 총 1억4000만원 상당을 판매한 업주가 경찰에 붙잡힌 것. 수입산 고기의 시세 차익을 노렸고, 말고기 등급제가 시험 사업이다 보니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규제하지 않는 점을 악용한 사건이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말기름, 말뼈를 활용한 상품 등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고, 말고기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식당이나 수요도 늘고 있기에 말 비육 표준화 지침 등 관련 제도 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말고기를 소비한 층에서 원산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고려할 때 등급제의 본 사업 추진을 통해 각종 규제를 적용해야 말고기 산업이 더 발달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난해 초 유럽 전역을 뒤흔들기도 했다. 유통 과정 중에 쇠고기에 말고기를 섞어 파는 이른바 ‘가짜 고기 스캔들’이 발생해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것. 전통적 승마 강국으로 말고기 소비가 적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햄버거 패티 및 파스타 소스 등 일부 제품에서 말고기 성분이 검출됐다.

이탈리아는 말의 내장 부위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고 프랑스도 최근 소비는 줄었지만 전통적으로 말고기를 먹는 국가다. 하지만 식품 성분을 속였을 뿐더러 유통 과정에서 비위생적인 문제와 말을 학대한 행위가 지적되었기에 이 문제는 전 유럽을 들썩이게 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의료 실험에 쓰인 말고기를 식용으로 유통한 축산업자와 수의사 일당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었다. 이들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수의사 서류를 위조해 유명 제약사들이 보유한 실험용 말 수백 마리를 도축장에 넘긴 혐의를 받았다. 이렇게 생산된 말고기는 스페인 등지로 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산업 선진국이라고 하나 축산물 등급제와 도축에 관한 법률적 제도가 미미하다보니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 말고기?! ‘느낌 아니까~’
말산업 선진국인 일본을 보자. 일본은 말 생산과 사육뿐 아니라 세계 최대 말고기 소비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트에서 말고기를 쉽게 살 수 있고, 시장 형성도 잘 돼 있으며 대중의 인식도 좋다. 특히 내장 소비가 많고 전골 요리가 인기인데다가 가정에서도 말을 이용한 요리를 즐겨 먹는다. 특히 일본 내에서는 구마모토현 소재의 ㈜센코팜이 말고기 분야의 독보적인 업체로 손꼽힌다.

말고기는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단백하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살코기가 많은 등심과 앞뒤다리 및 엉덩이 부위는 지방이 거의 없고 대부분 단백질로 구성돼 저칼로리 고단백 건강 웰빙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철분, 칼슘 등도 풍부하게 함유해 구이, 탕, 육회, 쌈밥, 초밥, 샤브샤브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농협중앙회가 정부의 말산업 육성 정책에 발맞춰 말고기 대중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2016년까지 제주지역을 우선으로 우수농가 100개소를 육성해 브랜드 조직화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 전문유통센터 3개소를 설치하고 전문 비육마의 혈통 관리를 통해 공급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특히 농협은 3월부터는 시중의 대형 매장에서도 말고기를 살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말산업육성법 시행 이후 말고기산업 특수를 기대하는 각 지자체와 관련 단체들은 이미 일본의 ㈜센코팜을 견학하기도 했었다. 마치 승마장을 하기 위해 일본의 크레인승마장을 찾는 것과도 같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라마생산자협회 이사이자 제주승마공원의 서명운 대표가 지난해 센코팜에 이은 일본 말고기 매출 2위의 모 업체와 국내 최초로 비육마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각 지자체장이나 단체장들이 찾아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서 대표는 단지 계약이나 따내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업체를 찾아가 직접 말똥도 치우고 일을 거들며 대표와 담판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성이 통하자 일본 측에서 직접 계약을 서둘렀다는 후문.

또 BBQ 치킨으로 유명한 ㈜제너시스그룹의 윤홍근 회장을 지난해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한 (사)한국말산업중앙회도 제너시스그룹의 치킨 사업 노하우를 통해 말고기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조선 중기 이후 말고기가 터부시된 후 국민이 말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로 인한 각종 편견만이 자리 잡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말을 사랑하는 승마인들은 어떻게 ‘말고기’를 먹을 수 있냐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세계 말 복지재단 주최 연례 컨퍼런스에 참석한 영국 왕실의 앤 공주가 “말고기를 팔 수 있게 되면 주인이 말을 보살피는 일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라며 말고기의 가치와 유통에 대한 영국인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고 말고기 식용을 옹호하고 나선 바 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말고기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앤 공주는 승마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기에 이 발언이 시사하는 점은 크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단일 축종인 말에 대한 법률 제정을 하고 등급제 시행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반면교사를 삼아 볼 말이기도 하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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