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마구간승마클럽 대표.
요즘 현대인의 몸에서 항상 떨어지지 않고 늘 붙어 다니는 물건이 하나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다. 기존 전화기의 용도에서 벗어나 모든 정보 서비스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이동 중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시대를 열어준 것이 스마트폰이다.

이런 스마트폰을 현대인은 부모, 형제, 친구보다 더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 길거리, 음식점, 심지어 이불 속에서까지 시도 때도 없이 개인의 사생활 속으로 사정없이 침범하고 있다.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수족 일부분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매우 편리하고 정보 전달 능력이 뛰어나지만 단점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독될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현대인의 생활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가져다주는 것도 사실이다. 상호간의 인간관계 형성에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 단절은 물론 사회나 가정생활에 상당한 문제점을 돌출 시키고 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스마트폰이 없어지거나 장가간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마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멘붕’이 올 것이다. 이토록 전화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세상은 현대인의 인성 근본을 뒤흔들 만큼 우리의 사생활로 파고든 것은 불과 수년 전 부터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지만 그만큼 두뇌를 쓰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필자역시 전화번호 하나를 외우지 못하는 폐해를 겪고 있다.

이토록 최첨단 통신망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마음 것 얻을 수 있었던 계기와 기초를 다지게 된 것은 바로 말이란 동물이 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요즘 젊은이에게 현재 당신이 가장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시작이 말이란 동물을 이용한 통신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수천 년 전 빠르게 달리는 말을 이용한 초고속 통신은 그 시대의 역참(驛站)이다. 즉 파발은 지금의 광케이블 통신망이고 역참은 우체국과 기지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그 시대 역시 빠른 통신을 이용해 정보 전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말 뿐이었고 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보로 갈 수 있는 보발(步撥)보다 말을 타고 가는 기발(騎撥)의 차이를 계산해 본다면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걸어서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100리(40km) 라고 한다면 조랑말이나 몽골말로 하루 100~200km까지 갈 수 있음을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한 승마인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말을 타고 요란한 방울 소리와 함께 역참을 향해 달려가면 역참에 있던 파발꾼이 말과 함께 달려오는 방울 소리를 듣고 미리 말 등에 올라 대기함과 동시에 전통을 인수받아 들고 다시 다음의 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전달하는 릴레이 방식이 바로 역참제인 것이다.

이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의 기능과 정보 전달은 세계사의 문명과 통신 체계를 빠른 시간 안에 바꿔놓고 말았다. 그토록 빠르게 전달되는 통신의 정보력은 세계 역사의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현세인으로 볼 때 약 20만 년 전이라고 본다면 인류가 말을 가축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4000년, 지금까지 불과 6000년 정도의 시간으로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말을 이용한 빠른 통신과 정보력의 발달이 없었다면 과연 그 짧은 시간에 현재의 IT기술이 가능했을까.

그렇다면 세계 역사에서 언제부터 말이 통신을 담당하게 되었을까. 통신 목적으로 사용한 흔적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때부터 이미 활용되었다고 하며, 우리 역사에는 삼국시대 역시 발달된 역참이 운영되었음을 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했던 통신은 군사 기밀에 필요한 빠른 정보전달이 가장 우선이었음은 물론이고 군사와 국가경영을 위한 문서전달의 목적으로 빠른 수단이 필요했으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말이다.

우리는 사극에서 가끔 암행어사 출두를 할 때 마패를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마패에 그려져 있는 말의 수를 통하여 그 사람의 신분을 가늠할 수 있고, 마패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과 통행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으로 본다면 국가 공무수행의 무임승차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패 역시 여러 종류가 있었다. 마패의 형태는 둥근 원형이며 손바닥으로 감싸 안을 수 있었으며 초창기에는 나무 재료로 만든 목조마패였으나 잦은 파손으로 인하여 철제와 구리로 다시 계랑되기도 했다.

마패는 양면을 다르게 새겼는데 당시 공무원(관원)의 등급에 따라 한 면은 마필의 수를 새기고 뒷면은 마패 일렬번호와 만든 시기 연, 월, 상서원의 인(尙瑞院印)이 새겨졌다. 반면 왕족의 경우는 산유자나무로 만든 둥근 원패이며 각각 말의 수와 ‘馬’ 자만 새겨 사용했다. 마패가 구체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고려 원종 때이며, 한때 고려 역마는 몽골 침략시기 내정 간섭으로 다루가치(達魯花赤)라고 하는 원나라에서 파견한 공무원의 규제를 받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의 마패발급 절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마패발급 초기 때를 보면 최고행정기관인 의정부에서 공문을 병조로 보내 병조에서 각 역마에서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식음을 제공 받을 수 있는 명령서를 들고 승정원에 가서 마패를 받아 공무 수행을 떠났다.

이런 절차는 여러 번의 변화가 있었고 군사적으로 긴급을 요구할 경우 긴급사라고 새겨진 마패를 사용했으며 2필의 말을 번갈아 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야로 달려갔고 한다. 그러나 그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마패를 훔쳐 팔아먹는 경우도 있고 만약 마패를 파손하게 되면 곤장 80대 또는 2년의 중노동, 공무의 중요함에 따라 최고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는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다.

이런 역참을 세계적으로 가장 잘 발달하고 활발하였던 시기는 원나라였다. 몽골군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군사적 수단과 역할에 있어서 가장 빠른 정보 통신이 요구되는 시기에 역참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잘 제도화된 역참으로 인해 동서양의 영토 경영이 효율적으로 용이해졌고 모든 상황 판단을 빠르게 대쳐 할 수 있어 다양한 문화교류는 물론 교역까지 활발한 결과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역참의 역할은 쿠빌라이시대에 와서 비로소 완성됐다.

마르코 폴로가 베네치아에서 중국 북경까지 여행하고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을 집필한 사실은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 역시 이 역참을 따라 파미르고원을 넘어 천산 남로 돈황을 지나 원나라 수도인 북경까지 방문하여 쿠빌라이를 비로서 알현 할 수 있었다.

역참의 발달은 오늘날 동서양의 문화와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수단이 됐고 유라시아를 잇는 철도와 도로망이 기초였으며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거미줄 같은 도로 교통망과 통신의 발달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발맞추어 더욱더 빠른 IT 정보통신의 기술로 발전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 시대로 이어오게 됐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편리한 부분도 있지만 불필요한 정보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상의 현대인들은 오늘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더욱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서비스를 끝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빠르고 편리한 IT 정보 통신의 해택을 받을 수 있도록 스마트폰 시대의 초석이 되어준 말이란 동물의 공적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마술감독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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