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름, 태반 등을 활용한 말 부산물 산업의 첨병에는 ‘제주마산업주식회사’가 있다. 특히 마유 크림이 화상과 아토피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의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레이싱미디어

본지 은 갑오면 청마의 해를 맞아 승마용품·말 문화 및 유물·말고기·지자체 소식들을 기획으로 묶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간 1주년을 기념해 그간 소개했던 기획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각 연관 산업 시장의 근간, 경쟁력은 결국 ‘기마민족’이라는 우리 민족의 뿌리에서 나오는 힘과 철학에 기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계화와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나갈 힘은 다른 축산업에서 강조하는 ‘우리네 것’이 중요하지만, 그 안에 갇혀 있어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馬)이라는 세계 공통어(?)로 통하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경마산업에서 ‘국산마’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듯, 뿌리를 찾고 이를 각 분야에 적용 발전시키는 일은 현재 우리 말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업, 역사적 소명입니다.

“말(馬)은 한국인 뿌리가 어디 있는지 말해 줄 것”
청마의 해를 기념해 국립민속박물관은 ‘한·중·일 문화 속의 말’을 주제로 국제적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기조 강연에서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현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장)은 ‘정오의 햇빛 속에서 달리는 말갈기의 상징 속으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우리 말 문화는 한국인이 일본 땅을 개척하고 다스린 지배민족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마문화 전통이 사라지고, 유목에서 농경으로 문화가 급속히 바뀌는 가운데 “말은 한중일 문화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글로벌한 문화와 어울리고 섞이는 데 있어서 한국인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 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령 전 장관의 말에 대한 통찰, 뿌리를 강조하는 발표는 이제야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하는 우리나라 말산업에 있어 그간 잊혔던 말 역사·문화 복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했으며, 본지 의 전반적 기획에 하나의 아젠다를 제시한 사건이기도 했다. 또한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제주의 말’ 공동기획전 현장에서 만난 장덕지 제주마문화연구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말 관련 유물과 유적지, 문화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본지가 창간 기획특집으로 다룬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동상 건립이 추진되면서 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말갖춤 30년째·150만개 편자 수집…민간 테마 박물관 설립
이런 가운데 한평생 말안장과 마구 등 ‘말갖춤’ 수집을 해 온 마구연구수집가(馬具硏究蒐集家) 김병천 고려방 대표와 말 관련 골동품 및 편자 150만개를 수집하며 말 선물 문화 정착을 위해 애써온 더지엘(The GL) 이승룡 대표를 만난 것은 기자 입장에서도 ‘행운’이었다. 승마장이나 목장, 각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말산업계 종사자들과는 또 다른 면목을 볼 수 있었고 말 문화와 연관 산업의 발전은 이들의 숨겨진 애환과 노력에 비추어 보면 결국 ‘뿌리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확신했다.
반응도 뜨겁고, 신선했다. 김병천 대표는 30여 년간 수집해 온 말안장과 마구 등 국보급 유물들을 전시하는 ‘한국의 말안장과 마구 전시회’를 서울 운현궁에서 개최했으며, 전국 각지의 박물관마다 그를 초청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할 정도다. 더지엘(The GL)은 오는 7월 15일이면 창립 25년째를 맞게 된다.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갤러리 올댓홀슈는 말산업계뿐 아니라 스포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향후 기수들의 팬 미팅 장소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김병천 대표와 이승룡 대표는 한평생 열정을 갖고 수집해 온 유물들로 테마 박물관 설립을 공통으로 소망하고 있다. 특히 서동영 한국말학술연구회장은 “말 문화를 위해 헌신해 오신 분들이 이 문화를 세워가고, 이야기와 의미를 입히면 승마가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아 학문이 되고, 역사가 이뤄진다고 본다”며,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격려, 지원하고 있어 전국 각 현장에 있는 말산업계 종사자들의 기대가 크다.
반면, 고구려 기마문화 전통 복원을 통해 기마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고 각종 지역 축제와 행사에서 전통 기마 무예 공연 등을 20년 이상 주관해 온 고성규 마구간승마클럽 대표는 관련 법령과 말 뿐인 규제에 발목이 잡혀 양주시청으로부터 고발조치 되는 등 승마장 철퇴라는 악재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고성규 대표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몸이 다 부서지면서까지 우리 말 문화 전통을 살리고자 20년 이상 이 일을 해 왔는데 이제 이 업종을 떠나야 되는 건지 괴리감을 느낀다”며 근본적 대책 마련을 하소연하고 있다.

최고(最古)·순수 국내 브랜드로 세계 승마용품에 도전장 내밀어
2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KRA한국마사회의 ‘말산업박람회’(올해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개최 예정)를 앞두고 승마산업 가운데 용품(마구) 시장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국내 승마용품 시장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있고, 그 시장 규모는 집계된 적도 없다.
현재로서 유일한 자료는 2010년 KRA한국마사회가 ㈜아이알씨에 의뢰해 제작된 ‘국내승마산업 실태 조사 결과보고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승마관련 업체는 총 55곳으로 마구용품 1곳, 말 매매 11곳, 사료 관련 5곳, 수의 관련 4곳, 승마용품 24곳, 운송 관련 1곳, 장제 관련 8곳이다. 하지만 승마산업은 유독 관련 업체의 유동이 심한 곳이고 실태 조사 결과보고서도 부정확해 직접 눈으로 보고, 무작정 찾아가 담당자들을 만나는 식으로 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창업주 유봉종 선생의 57년 장인 정신으로 국내 최초 수제 승마화 제작으로 유명한 골든호스(대표 유경선·실장 유지선)를 주목할 만하다. 태국과 홍콩을 비롯해 아시아권 국가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수출도 하고 있어 국내 승마용품의 세계화도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크다.
승마에 패션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띈다. ㈜모드니에꿈(대표이사 박천석)은 승마용품 업계 사상 최초로 승마와 패션을 접목한 ‘페나코바스포츠’라는 국내 순수 브랜드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했다. 박천석 대표는 패션을 통해 승마 대중화와 업계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경영 방침을 내세웠으며, 우리 승마용품 업계 최초로 국내를 넘어서 글로벌 무대에 서겠다는 목표를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산물 산업 활성 기대…제라한, 말 오일·농협은 말고기 시장 공략
연관 산업 가운데 말기름과 뼈, 태반을 활용한 부산물 산업은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말산업 선진국에서는 부산물 관련 산업의 규모가 수조 원대일 정도로 시장 형성이 돼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업회사법인 제주마산업주식회사(제라한·대표이사 정길찬)가 초창기 시행착오를 겪은 뒤, 정길찬 대표와 이재승 기술이사 등을 영입하며 말기름을 활용한 마유 제품, 비누, 화장품 관련 제품을 내놓으며 최근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의학계의 반응이 뜨겁다. 마유를 활용한 크림과 오일 제품이 아토피 개선과 건선 그리고 화상에 매우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현재 임상 실험이 진행 중이다. 화상 전문 병원인 베스티안과 씨앤유의 아토피포럼 외에도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제라한의 마유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가 말고기 산업에 뛰어든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제1회 말고기 요리 경연대회를 주최한 후로 올해는 전문가 토론회, 유통업계 최초로 냉장 말고기 일반 마트 판매 등 다양한 말고기 사업을 펼쳐 가며 말고기 대중화와 조기 소비시장 조성 등을 통해 생산 농가의 소득 창출 기반 구축에 나섰다. 게다가 안성팜랜드에서 말 조각 공모전과 말 사진 촬영 대회, 말 그림 그리기 대회 등 말 관련 주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생활체육 승마계에서 활동하던 기반을 밑천삼아 ‘마앤피플(馬&People)’을 창립, 전국 각지 승마장과 승마인들의 필요한 곳을 긁어주는 이상선 대표의 향후 관련 업계의 행보도 관심이 간다. 이상선 대표는 현재 경영이 열악하고 지리적 위치가 좋지 않은 승마장에 사료와 건초, 톱밥, 보험 등 필요한 사업 아이템 분야의 효율적 판매 활로를 개척·개발해 승마산업 전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재목이라는 게 업계 대부분의 평가이자 기대도 크다.
‘발굽이 없으면 말도 없다(No hoof, no horse)’는 서양 속담처럼 장제산업 성장 없이는 말산업 육성은 어렵다. 세간에 ‘억대 연봉’으로 알려진 장제사(말발굽관리사)의 현실적 수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지적. 특히 선진 기술 습득과 정보 공유, 후학 양성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한국말발굽기술자협회(회장 김동수)가 향후 우리 장제산업을 어떻게 진보시킬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반면 ‘2012말산업박람회’에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승마운동기(실내 승마기·시뮬레이터)’와 스크린 실내 승마장 관련 사업은 꽃도 펴보지도 못하고 하향길로 접어든 추세다. 지난해와 달리 홈쇼핑, 신문 지면상 홍보도 미약해졌고 일부 업체는 문을 닫기도 했다. 승마 운동기가 실제 기승 전 승마 자세를 잡아주고, 어느 정도 운동 효과는 있더라도 승마 고유의 장점인 말과의 교감을 대신할 수 없다는 데 실패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쟁만 치열…실제 수익은 아직 ‘미미’, 롤모델 찾아 정립 필요
1999년부터 승마용품 관련 업체에서 활동하며 전 세계적 시장 흐름과 트렌드, 국내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해 온 로이스타의 정재호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말 연관 산업이 ‘이도저도 아닌’ 상황으로 진단했다. 정재호 대표는 현재 승마용품 어플리케이션도 제작하고 해외에 지사를 두고 승마바지를 직접 수제로 제작하고, 광고의 필요성도 적극 인지하는 등 업체 활동의 선두에 서서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지만, 전체 시장이 커지며 경쟁만 치열해질 뿐 실제 수익이 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 말 연관 산업, 승마용품 시장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지만, 브랜드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세계 시장 가운데 특히 독일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술력과 생산성, 인력 투자를 하고 유명한 선수가 나와야 말 연관 산업이 더 활성화되고 대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6월 27일부터 열흘간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리는 민간 주도의 첫 말 관련 축제, 제1회코리아승마페스티벌의 성공 여부가 승마뿐 아니라 관련 업체와 대중의 말산업 인식 제고에 큰 영향을 줄 것이며, 국내 말산업 발전에 큰 획을 그을 사건이 될 것이기에 전체 말산업계 종사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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