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3월 30일)에는 경마팬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서울경마 전경주가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여러 이유로 경마가 중단된 적이 있었지만 이날처럼 황당한 결정이 내려진 적은 없었다. 이유인즉 경주로가 불량하여 경주마와 기수의 안전 확보 및 경주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의 기후상태와 비교할 때 이를 인정하는 경마팬은 거의 없었다. 특히 이 날은 구름이 다소 오락가락했지만 비교적 화창한 봄 날씨를 보였고 경마를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필자가 경마장을 출입한지 23년이 지났지만 이런 날 큰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고는 인위적으로 경마가 중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경마팬들이 입장할 때는 모든 상황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정상적인 흐름이었다. 그래서 본장의 관람대에 일찍 자리를 잡았던 팬들은 너나없이 각종 자료들을 펼쳐놓고 경주분석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날 내리던 비도 멈추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 상쾌한 마음까지 드는 기후상태로는 경마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어느 누구도 경주가 취소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1경주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도 기수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경마방송은 1경주 예시가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관람대에 미리 입장해 있던 경마팬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느닷없이 한국마사회는 서울경마 전경주를 취소한다는 안내문을 내보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불만과 불평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이상기류가 흘렀다. 적게는 10만, 많게는 20여만 명을 헤아리는 경마팬을 본장과 지점의 객장에서 항의소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수와 한국마사회에 대한 배신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모두 외국 기수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기수들이 배에 기름이 끼어 그렇다” “경마팬을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는 성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경마팬들은 이보다 더한 악조건에서도 경마는 시행이 됐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행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장대비가 억수같이 퍼부었고 장마로 철벅철벅 흙탕물이 튀었던 장마철엔 그렇게도 위험한 조건을 무릅쓰고 경주를 시행했고 출전을 했으며 모든 기수들은 목숨을 내걸고 저마다 경마기수로서 레이스를 펼치지 않았던가. 세계 120여 경마시행국가 중 경마 창출, 시행 주역들이 수많은 자신의 고객들을 객장에 붙들어 놓고 경주 당일 제1경주 발주시간이 지나서 전경주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곳이 있는가. 물론 외국에서도 천재지변이나 갑작스런 악천후로 경주가 취소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3월30일 적어도 서울경마공원과 같은 날씨에서 경주가 취소된 예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기수협회와 한국마사회는 경마를 레저라고 주장하는 명분을 잃고 말았다. ‘기수는 경마의 꽃`이라고 주장해도 수긍할 팬조차 잃어버렸다. 경마 창출과 시행 주역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부정했다. 그 어떤 환경과 악조건도 극복하며 국민과 관전자, 마권구입자의 사랑과 기대에 적극 부응하며 진함 감동과 기쁨을 선사하는 막중한 임무를 내던져 버렸다. 어떤 경마팬은 이날을 마치일(馬恥日)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이날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 숨길 수 없는 표현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가령 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고 운전사는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 존재하고 공장의 노동자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존재한다. 위험한 환자라고 하여 병을 치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의사이며 자동차사고의 위험이 있더라도 운전을 해야하는 것이 운전사이고 가뭄이 예상되더라도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 농부이고 공장의 화재 위험이 있더라도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 노동자다.

전국의 경마장 중에서 가장 날씨 상태가 좋았던 상황을 위험으로 규정하여 말타기를 거부한 기수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수들의 주장대로 정말로 위험한 경주로 상태였다면 이를 방치한 한국마사회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기수는 말을 타기 위해 존재하고 한국마사회는 원활한 경마시행을 통해 마사진흥과 축산발전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모두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부정했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행위로 인해 그 피해는 참혹할 만큼 컸다.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경마팬의 손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마권매출액의 손해며 경마상금을 벌지 못한 마주와 조교사 기수의 손해는 얼마인가. 또한 경마전문지며 부대산업 종사자들의 손해도 이만저만 아니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행위는 결국 공멸을 부를 뿐이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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