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대표.
“승마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 지금도 이미 늦었다”

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가을이 깊어지다 보니 창밖 풍경엔 겨울이 어슬렁거린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어야할 시기다. ‘린덴바움(보리수).’ 그 나직한 소리를 듣다보면 어느덧 나는 겨울로 되돌아와 있다. 나는 수많은 겨울 속에 존재했고 겨울은 매번 비슷한 미소로 나를 반긴다. 나는 눈 쌓인 검은 자작나무 숲을, 말을 타고 달린 기억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뇌에 남겨진 상처처럼 평생 잊히지 않는 날카로운 기억이다.

“그래서 말 운반 트럭으로 좋은 외승 장소에 말을 가져다 두고, 승마인들에게 산악이나 해변 외승을 즐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죠. 요즘 외승이 인기랍니다.”

오랜만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열정과 힘이 넘쳤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랬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나 역시 그와 함께 몇 가지 일을 해 보았다. 꿈과 현실은 달랐다. 이해를 해줘야 할 곳에서는 욕을 했고, 노력은 어리석은 공상으로 치부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 일은 서서히 잠을 깨고 있었다. 처음 그 일을 주장한 사람들은 욕을 먹고 잊혀졌다. 그게 현실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외승 좋지요.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승마장 사망사고에 대한 판결을 들었나요?”

승마장 주인이 9억 원 넘는 배상 판결을 받았는데, 그중 보험에서 1억 원, 피해자 책임도 일부 공제해서 6억여 원이 넘는 배상 결정이다. 우리 영세한 승마장들이 과연 이것을 감당해낼 수 있겠냐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승마 사고는 승마인들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고, 보험도 승마인들 개개인이 직접 들어서 승마장 주인에게 사본을 제출한다. 승마인 스스로 판단하고 원해서 승마를 한 것이므로 승마장 주인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면책각서’도 쓰고 승마를 한다.

“그럼, 우리도 면책각서 쓰면 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면책각서라는 것이 거의 휴지에 가깝다. 몇 개의 사고를 조사해 보니, 10%도 면책이 안 됐다. 말이든, 시설이든, 장소든, 어떤 것이라도 꼬투리를 잡아 승마장 주인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니 평생 열심히 일해서 사고 한 방에 다 날리고 거지가 되는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런 사고를 남의 일로만 보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승마장 주인들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라고 나는 그 의욕에 찬 지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마음속으로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사실을 말하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승마협회든, 문광부건, 농림부건, 책임 있는 부서에서 나서야 한다. ‘승마 안하면 승마사고 없다. 승마는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승마대중화와 승마 부흥을 앞세워 홍보만 할 것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승마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평생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승마장을 하는 것이 곧바로 ‘승마 사고에 대한 예비 죄인’이 되는 구조는 곤란하다.

승마인들에게 승마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승마 보험의 현실화 또는 지원. 승마 사고의 책임이 각자에게 있으니, 안전 원칙을 확실히 지키라는 안전교육. 승마장 주인들에 대한 안전교육, 승마지도 보수교육 등을 선행해야만 한다. 기존의 안전의식과 시스템으로는 승마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수록 정비례해 승마 사고도 늘어날 것이다. 승마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 지금도 이미 늦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김명기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대표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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