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오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장
김종식 생산자 겸 마주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조교사입니다. 말과 함께 40년 풍상을 헤쳐 왔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만큼이나 경마도 빠른 성장을 해왔고, 소득 2만불 근처에서 주춤하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경마의 외형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매출이든, 생산이든, 경마 이미지이든 우리 경마와 관계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뭐든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우리의 다음 세대에는 여러 경마선진국 못지않은 우호적 환경과 명실상부한 king of sports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절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국/외산마 산지통합과 외산마 구매가격 자율화의 의제와 관련하여 저희 경마계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생산된 경주마를 훈련시켜 경주에 내보내는 조교사인지라 사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는 아닙니다. 또한 시행체의 정책을 무턱대고 비판하거나 또는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 이미 여러 번 겪었던 내분을 왜 우리는 이렇게 지겹도록 반복하면서 우리가 가진 역량을 쓸데없이 소모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극히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몇 자 쓰고자 합니다.

경마의 본질은 클래식입니다. 긴 호흡으로 큰 강물같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경마의 속성은 아마 그 뿌리를 생산에 대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생산이나 경마에서 단기 전략보다는 장기적 방향성이 더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김종식’ 생산자 겸 마주님의 글에서도 언급 되었듯 여러 경마선진국과 특히 가까운 일본이 극명한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전통이 밥까지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경마시행 역사가 오래되거나 part 1, 2 국가 중에서도 매출이 없어 쇠락했거나, 시들어가고 있는 나라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지통합과 외산마 구매자율화가 이 시점에서 왜 필요하고, 그것이 이해 당사자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말 절실히 추진되어야할 당위성이 무엇인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저까지 나서서 이 논쟁에 불쏘시개를 더하는 일은 피하고 싶을뿐더러, 이 주제를 엄밀히 분석해서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많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말은 하고 싶었습니다.

1. 제 짧은 소견으로 파트 2 진입은 목표가 아닌, 방향성을 갖고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해온 과정의 결과물이어야 비로소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생산과 육성의 베이스가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이것이 제도와 경마의 모양을 만들고 나아가 그 틀에 맞는 경마상금이 모세혈관까지 깊이 흘러들어 궁극적으로 하나의 생명체로서 그리고 기간 정책으로서 완성되어, 그 자연스런 귀결이 파트2가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희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부진한 매출실적과 이런저런 규제로 힘들어했고, 비상경영이니 위기니 하는 말을 무수히 들어왔으며 같이 허리띠 졸라매고 같이 싸웠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조금이라도 호전되었다거나 그런 징후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감위로 힘들어하고, 매출부진으로 마음이 무겁고, 뭉텅뭉텅 저희 살을 베어 먹고 있는 사설경마에 대한 묘책은 없는 상태이며, 경마 이미지는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용산을 비롯한 지점 문제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 주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높이 내어 걸은 파트 2 진입과 산지통합의 깃발은 뜬금없고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 화력의 탄착점이 왜 갑자기 이 지점으로 옮겨졌는지에 대해 의아하고 속된말로 필이 오지 않습니다.
물론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미래를 위한 투자나 앞으로 가기위한 조치들을 묶어 둘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시점에 꼭 이렇게 전투하듯이 돌격적으로, 그것도 내부 이해당사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야 할 만큼 절실한 의제인가 하는 대목에서는 의문입니다.
더욱이 산지통합은 국산마의 개량 수준에 맞춰 조금씩이나마 그 방향으로 지금 이행되는 과정에 있고, 외산마 구매 자율화 또한 과거에 이미 시도했다 부작용으로 접었던 정책일뿐더러 상당한 경마상금의 증액이 수반되어야한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히 접근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2. 아마 이런 느낌은 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행체 내부는 물론 많은 경마계 종사자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이는 전자에 언급한 방향성의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생산을 위해서 나아가 강한 말 육성을 위해서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을 해온 결과 “우리도 이제 해볼만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 시점에 내 걸어야할 깃발을 너무 조급하고 다소간 거칠게 내 걸었다는데서 오는 거부감이고 뜬금없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어제 일본 오이에서 개최된 2차 한일전과 과거 여러 차례에 걸친 외국 원정경주 결과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이를 편안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산역사는 그만큼 짧았고 투자나 특히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결코 자조적 표현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에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다 맥이 빠지는 것 보다는, 긴 호흡으로 일관성 있게 가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생산과 육성이 없으면 경마가 없고, 경마(매출)가 없으면 말산업도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말 산업은 아직 인큐베이터 속에 있는 미숙아일 따름입니다. 뼈와 근육이 튼튼한 생명체로 자라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 한국경마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따듯하게 품고 젖을 먹여 살을 붙게 만드는 일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동안에 많은 노력을 하여 생산은 이제 필요한 두수를 충당하고 기록도 조금씩이나마 단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성분야는 아직도 열악하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전혀 그 기반이 갖춰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솔직히 이 분야에 대한 정책의지 즉 방향성을 갖고 일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한 흔적도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목표, 파트 2 / 확보 교두보, 산지통합과 외산마 자율구매 / 돌격 앞으로” 이런 정책이 나왔고, 공감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생산과 육성은 자본과 머리똑똑한 사람 몇몇이면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을 저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방향성 없이, 평지풍파식으로 튀어나오는 정책과 그 이면의 단기 성과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경마계 내부의 반목과 갈등을 만드는 일은 이제 정말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뭉쳐 헤쳐가기도 버거운 환경에서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이고 소모입니까. 적어도 시행체가 생산자를 포함한 유관단체를 진정한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앞으로 나아가기위한 의제를 선정하는 일부터 같이 머리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이 어렵더라도 그렇게 조율된 정책이어야 힘과 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이러한 방향성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모두가 안고 있 는 고질적 묵은 과제들이 있습니다. ‘경마 이미지 개선’, ‘공정성 확보’, ‘경주 질’, ‘사감위’, ‘지점문제를 포함한 매출’, ‘사설경마’, ‘서울의 열악한 마사환경’...등등입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대부분 최소 10년 이상은 절실히 부둥켜안고 꾸준히 노력해야 겨우 작은 결실을 볼 수 있는 과제들입니다. 난제일뿐더러, 경마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어찌 보면 파트 2보다 더 중요하게 보듬어 안고 반드시 넘어서야할 높은 고개입니다.
돌이켜보면 위의 주제들은 그때그때의 분위기와 경영진의 우선 순위 판단에 의해 잠깐 반짝했을 뿐 오랜 기간 절박하게 부둥켜안고 깊이 고민해 본적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의 기억만 떠올리더라도, 우리 화력의 탄착점이 마권세율과 사감위에 있었다가, 갑자기 말산업과 신규지점 개설로 옮겨가고, 다시 매출과 신규수익원 창출에 집중되었다가 이제는 파트2로 또 옮겨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전히 경마의 기본 골격이 되어야하는 의제들은 그냥 저냥 꾸려오면서 아직 기본도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니지 싶고, 그 여파로 주력사업인 경마를 홀대하는 분위기는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제가 고민해야 될 일은 아니지만 안타깝고 또 창피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지금의 탄착점이 나중에 또 어디로 옮겨갈지는 또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파트 2와 산지통합에 전혀 공감이 없고 마음이 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어제 한/중 FTA 타결 소식을 들었습니다. 철저한 득실을 따져 개방과 보호의 상반된 가치를 다루어야하는 어려운 국가간의 협상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듣기로 한국의 농/축산 분야는 대부분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쟁력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마사회의 이번 대책 또한 저변에는 개방과 경쟁의 논리가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산과 경마시장을 아직 더 보호해야 하는가, 개방하고 경쟁하면서 몸을 만들어 갈 것인가는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아직 이르다”는 김종식 생산자 겸 마주님과 제 의견은 같습니다.
아직 우리의 기초체력은 많이 미약하고, 여러 분야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마만이 가진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단일마주제에서 개인마주제로 전환한 역사가 있고, 경마가 먼저 있었고 생산은 뒤에 시작한 유일한 국가이며, 사감위라는 황당무계한 통제기구가 누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마이미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정부를 포함한 사회전체가 여전히 심한 불신과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저희같이 외롭게 투쟁하며 경마를 하는 국가는 이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맷집과 체력을 좀 더 길러야 합니다. 일관성 있고 꾸준하게...
그때까지는 참고 견뎌내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야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변함없는 소신입니다.
2014년 11월 12일
서울경마장에서 김점오



작 성 자 : 권순옥 margo@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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