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이테가 더 촘촘한 것처럼 겨울 승마의 기억들은 더 진하고 아름답게 남는다.”
“겨울 나이테가 더 촘촘한 것처럼 겨울 승마의 기억들은 더 진하고 아름답게 남는다.”


마지막 가을비가 내리고 나더니 곧장 한파다. 저녁의 빗줄기가 새벽의 눈발로 바뀌었다. 아침이 되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조금 과장하면 화이트아웃이 되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이 행성은 본격적인 겨울로 진입했다. 영하 10도다. 망설임 따위는 조금도 없다. 잭 프로스트(Jack Frost, 동장군)는 단호하게 직진한 것이다.

겨울철 승마는 상당히 힘들다. 일단 승마장까지 가는데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추운데, 방송에서는 연일 얼어 죽는다는데, 이불속에서 망설이다 보면 결국 가지 못한다. 나는 일단 잠자리를 박차고 승마장까지 와서 결정하라고 한다. 승마장에 오면 너무나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져 있다. 승마장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웃통을 걷어 부치고, 흑백 사진 속의 칼라 피사체가 되어 입김을 뿜어 댄다. 활기가 넘치는 것이다.

말들은 눈밭에 멈추어 서서 긴 콧김을 뿜어낸다. 앞발로 눈을 파고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겨울 속에서 생생하고 역동적인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핑계를 양산하는 따듯한 이불 속에서는 전혀 짐작조차 어려운 일이다. 일단 겨울 속으로 들어가야 겨울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이건 겨울 만큼 단호해야만 한다.

바람이 차다. 볼을 저며 내는 듯하다. 그러나 운동장의 바닥을 살피기 위한 평보와 말의 몸을 풀어주기 위한 속보를 하면 이내 온몸이 뜨거워진다. 말의 몸이 풀리고 기승자의 몸도 풀린다. 가벼운 구보를 시작하면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차가운 대기를 가르며 말과 함께 날아오른다. 어느새 추위는 까맣게 잊힌다. 겨울 승마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 승마는 의외로 덥다. 옷을 잔뜩 껴입은 승마인들은 중간에 말을 멈추고 두툼한 외투를 벗느라고 북새통이다. 처음부터 가볍게 옷을 입으라고 늘 잔소리해도 이렇다. 말은 사람보다 체온이 높다. 38도다. 게다가 무게가 500㎏ 이상이다. 말들이 걷거나 뛰면서 피어오르는 열기로 엉덩이와 하반신, 말안장 위는 뜨끈하다. 게다가 승마를 하면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니,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다만 손가락과 발가락이 시리다. 이것은 겨울용 승마부츠와 장갑으로 해결한다.

겨울 승마는 이게 끝이 아니다.

승마를 시작하기 전, 눈구덩이에 맥주 캔 한 팩을 넣어둔다. 숯불에는 군고구마를 넣어둔다. 차콜(charcoal) 불을 붙여 둔 웨버 그릴에는 비어 캔 치킨(맥주를 넣어 굽는 닭 요리)을 올려 두었다. 승마를 마치고 말들에게 당근을 나누어 주고 나면,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시간이다. 참나무 장작이 타는 눈밭의 임시 불 자리. 둥글게 모여 앉아 에스키모 놀이를 할 시간이다.

말을 타며 달아오른 몸속에 차가운 맥주 한잔을 넣어준다. 뜨거움과 차가움, 그리고 그 대류에서 오는 특유의 충족감.

탁탁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한겨울 눈밭의 대화는 끝이 없다. 간간이 섞이는 미소와 웃음소리들은 모든 장면을 완벽하게 갈무리해 준다. 겨울 나이테가 더 촘촘한 것처럼 겨울 승마의 기억들은 더 진하고 아름답게 남는다. 겨울을 피하기보다는 겨울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삶을 훨씬 더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어떤가? 올 겨울, 말을 타고 승마의 유혹에 빠져보는 것은.

김명기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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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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