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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텔레비전에서는 공수부대가 폭도를 진압하고 있었다.” “지구라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인간을 끌어당기는 중력은 모든 두통거리의 원인인가.“

[박인 스마트 소설] 그날의 두통에 관한 소견

2019. 05. 10 by 박인 작가
▲그해 5월 20일, 그가 태어난 날, 최루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K시에서 편두통이 집단으로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 ⓒ박인
▲그해 5월 20일, 그가 태어난 날, 최루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K시에서 편두통이 집단으로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 ⓒ박인

성명: 박인

생년월일: 1980년 5월 20일

주소: 지구 행성 북위 36.7도 동경 127도

진단명: 중력 기원성 두통

상기인은 남성 신규환자로 금일 진료시 원인불명 두통을 호소하였다. 그가 처음 진료실에 들어설 때 그의 목은 바로 선 자세에서 열두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병력 청취와 진찰을 통하여 경추 기원성 두통으로 진단하였다. 경추는 목등뼈로 일곱 개가 있고 주요 신경은 여덟 개이다. 통증은 주로 척수에서 나오는 여덟 개 주요 신경과 갈라진 작은 신경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두통의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경우, 최근 집안 문제로 아내와 자주 다투었으며, 스마트 폰을 자주 들여다보는 중독에 가까운 습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구부정한 척추가 만곡된 형태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나쁜 자세가 두통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나쁜 자세는 뇌의 압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머리 내부 압력이 낮아지면 중력으로 인해 뇌가 움직이면서 두통이 발생하는 것이다.

무거운 머리 무게로 인한 중력이 자라목에 걸리고 이것이 두통의 역학적 기전일 것이다. 알다시피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은하계를 비롯한 우주 전역에 중력 법칙이란 거스를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중력과 싸워서 이긴 인간은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중력에 저항하는 자는 결국 아프다가 종내에는 영구히 드러눕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목등뼈에서 기원하는 두개골 통증은 중력에 대항하려는 어리석은 인간에게만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증상은 주로 목 주변 근육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심하면 편두통으로 이어진다. 그는 머리를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그해 5월 20일, 그가 태어난 날, 최루탄 연기가 피어오르는 K시에서 편두통이 집단으로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 계엄령 하인 그날, 시민들은 등화관제하고 불안에 떨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불 속에 누워 거북이처럼 머리를 몸통 앞으로 빼고 공영방송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 태중에 있었고 산달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공수부대가 폭도를 진압하고 있었다. 학생과 시민들이 곤봉에 맞아 넘어지고 머리가 깨졌다. 놀란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양수가 터졌고 산통이 왔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행방불명 상태였다. 전날 출근한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남편을 걱정하던 산모는 산통과 함께 그를 낳은 후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이 두통이 그의 어머니에게서 복중 태아인 그에게 전달될 수도 있음을 의심한다는 그의 진술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이런 의심이 생길 정도로 그의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그는 머리를 식혀야 했다.

그의 주관적 의견을 따르자면, 그의 두통은 두개골이 포용할 용량을 초과하는 온갖 정보와 지식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회사 동료들 모르게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서 사표를 상사 얼굴에 내던지고 떠날 생각이었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높은 이유는 회사는 망할 수 있어도 나라는 좀처럼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입시공부에 허덕이는 수험생에게 두통 발병률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인
▲알다시피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인

남자보다 신경이 예민한 여자가 뇌 신경계의 민감성이 고조되면서 발병빈도가 높을 수 있다. 아직 가설에 불과한 이 이론은 공부 시간이 길수록 무거워지는 앞머리를 지탱하는 목덜미가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두통을 호소하는 수험생들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상 모든 시험을 준비하는 입시생들은 묻는다. 돌처럼 무거운 머리를 가볍게 하는 약물은 없는가. 약이 있다면 꼭 알고 싶고 사고 싶다는 소비자 욕구가 넘치고 있다.

인간 뇌의 잠재적 능력이 발휘되면 언젠가 두통이라는 증세는 사라질 것이다. 현재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뇌의 무게는 언제나 목등뼈에 걸린다. 중력에 대항하려면 머리는 자꾸 써야 한다. 무거운 머리를 쓸 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밑에 손을 괴는 방법이 중요하다. 앉아서 잠을 잘 때조차 일곱 개 목등뼈를 조심하라. 생각이 달아나는 머리란 단두대에 목을 들이미는 꼴이랄까. 칼날이 목을 내리치는 순간 죽은 자는 두통을 느낄까.

그가 생각하는 사이 목 등에서 시작한 통증은 눈이 빠질 것처럼 눈두덩으로 옮겨간다. 동통은 이후 앞머리에서 머물며 지끈거리다가 옆머리로 퍼지는 편두통 양상을 보인다. 그는 하루빨리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사실 이것은 미봉책이다. 알다시피 그가 앞으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국가에서 치러야 할 시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겠는가.

회사에서도 그는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았다. 부하직원들은 만년 대리인 그의 지위를 늘 위협했다. 그가 야근해서 제출한 매출계획서를 과장이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 전반기 영업실적이 나빠진 이유는 그의 능력이 모자란 탓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세상으로 밀어내면서 폭도들이 선량한 시민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의 아버지처럼 착한 사람이 폭도들에 가담할 리가 있겠는가. 이런 어지러운 심리상태는 그대로 태아에게 전해진 게 틀림없었다. 무슨 세상 소식이 그리도 궁금했던지 그는 쏜살처럼 자궁을 빠져나왔다. 중력 때문에 간호사 라텍스 글러브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척추를 손상당한 그는 목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두통은 해부학적 손상을 당한 목등뼈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 있다. 중력을 거스르는 일은 무모한 짓이다. 그는 저세상으로 당장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물며 그의 아버지는 지금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목등뼈에 무리를 주는 생활습관도 문제였다. 어깨를 구부리고 목을 앞으로 빼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탓에 그는 앉은키가 줄어들었다. 그는 머리를 돌리지 않고 눈치로 사무실 돌아가는 풍경을 그릴 수 있었다. 부장과 과장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고개를 숙인 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하직원이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머리가 쑤셨다. 상사 동료 부하직원들은 그의 등뼈를 노트르담 꼽추처럼 휘게 했다. 그러므로 그의 두통은 스트레스가 준 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 폰이 준 병이라면 회사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걸까. 넘치는 수험정보와 참고서가 준 병이라면 그저 머리 아픈 생각에 불과할까. 외상과 관련이 없고 생활습관에도 문제가 없다면 정밀검사를 해야겠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며칠 전 벌어진 대대적인 부부싸움이 떠올랐다.

내가 소인가 풀만 먹게, 그는 반찬 투정을 했다.

과장 월급 좀 가져와 봐. 그놈의 고기 실컷 먹어보게, 그의 아내가 말했다.

고…. 공무원이 되면 게…. 게임 끝이야. 제기랄, 그는 갑자기 공무원이 된 것처럼 말했다.

벌써 몇 년째 공무원 타령이야. 공무원이 아무나 그렇게 쉽게 되나 보지, 아내가 싸움을 걸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눈알이 돌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게거품을 물고 시작한 아내와의 말싸움이 끝나자 그는 거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잤다. 태아처럼 웅크리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목이 뻐근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잔 것도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의자 팔걸이가 박달나무라서 밤새 머리통이 배겼다. 새벽에 깨어난 그는 다시는 아내와 싸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중력을 거슬러 미니 캡슐을 타고 그의 뇌 속으로 들어갈 볼 수 있을까. ⓒ박인
▲중력을 거슬러 미니 캡슐을 타고 그의 뇌 속으로 들어갈 볼 수 있을까. ⓒ박인

날씨가 후텁지근하다가 비가 내리고, 저기압이면 그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머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드러누웠다. 어디 계신 것일까. 아버지가 생각나면 이상하게도 강한 비린내가 그의 코를 찔렀다. 살아있는 물고기 머리를 자르고 회를 뜨면 풍기는 비리고 짠 바닷냄새가 났다. 편두통이 생겼다. 도대체 그의 머리는 왜 이리도 무거운 것일까. 그의 두통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향후 영상의학적 검사를 하여 그의 목등뼈 부위의 변화를 관측할 것이다. 약물 처방, 후두신경 차단술과 근막통 주사 등을 시행하여 통증을 조절하자 30% 이상 통증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이명, 어지럼증과 얼굴통 등이 남아있어 일상생활이 불편한 상태이다. 경추 물리치료도 시행하였다. 두통은 끈질기게 남아 그를 괴롭힌다. 수십 년이 넘도록 그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이 지구라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인간을 끌어당기는 중력은 모든 두통거리의 원인인가.

환자의 제반 증상들이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여 지속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통이 만성적으로 지속한다면…….

중력을 거슬러 미니 캡슐을 타고 그의 뇌 속으로 들어갈 볼 수 있을까.

20XX년 5월 18일 주치의

<끝>

박인 작가의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스마트 소설은 빠르게 변하는 일상에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초단편 분량의 소설을 말합니다. 『문학나무』 신인상을 수상한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한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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