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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내가 맞는 일을 시작한 것은 한 여자 때문이다. 서열 4위쯤 되는 나는 자칭 서열 1위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어딜 쳐다봐? 여자 엉덩이에 뭐가 묻었어!”

[박인 스마트 소설] 매일 맞는 남자

2019. 06. 21 by 박인 작가

나는 맞는 일이 좋다. 그냥 헛발질이나 허공을 가르는 주먹질이 아니라 제대로 선수들에게 맞는 걸 선호한다. 원하는 부위를 정통으로 맞아야 돈이 된다. 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빠지고 살이 찢어져야 견적이 잘 나온다. 빗맞으면 아프기만 하고 멍이나 들 정도면 정말 껌값이다.

내가 맞는 일을 시작한 것은 한 여자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한 그녀를 원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 행복, 꿈이나 가족이 내겐 없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지막 사랑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알고 있다. 그런 행복이나 꿈은 언제나 '헛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음을. 사랑이란 헛되고 또 헛되며 얼마나 무지개처럼 멀리 있는지!

내가 그토록 갈망한 그녀라는 실체는 처음부터 내 생각과는 달랐다.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아직도 떠벌리는 인간이 싫다. 그놈 사랑은 아무리 짜내도 늘 부족했다. 열정을 다 주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그녀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썼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돈이 없는 나는 그녀의 유일한 남자가 아니었다. 다른 남자들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녀 주위를 맴도는 수많은 남자 중 하나에 불과했다.

▲『MandalaⅠ』 1600×1600㎜, Mixed media ⓒ박인
▲『MandalaⅠ』 1600×1600㎜, Mixed media ⓒ박인

그 남자 중 한 명에게 죽도록 맞았다. 자신이 서열 1위라고 믿는 그놈도 실제 서열 3위일 뿐이었다. 서열 4위쯤 되는 나는 자칭 서열 1위를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놈이 합의를 원하자 고소를 취하했다. 허리는 욱신거렸지만, 대가로 받은 합의금이 짭짤했다. 이쯤 나는 사랑에 대해 정의를 하나 내려야 한다. 사랑은 돈을 벌어서 바치는 일이라고. 아니라고 말하는 인간은 더 맵게 살아봐야 안다. 한 남자가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일생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나는 소아병적 시선으로 남녀관계를 바라보았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면일 것이다. 질투를 불러오지 않는 사랑은 속 빈 강정이라 여겼다. 나는 매일 먹잇감을 찾았다. 이번엔 아주 튼튼한 놈으로 골라야 했다. 어느 정도 맷집도 있고 스포츠카를 타며 늘씬한 애인을 가진 놈을 찾아다녔다.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놈이 걸려들었다.

강남 호텔 바에서 황소만 한 덩치를 가진 사내가 주먹다짐을 할 태세로 말라깽이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라깽이는 시간제 대리기사였다.

“어딜 쳐다봐? 여자 엉덩이에 뭐가 묻었어!”

덩치는 제 애인의 튼실한 엉덩이를 뚫어지라 쳐다본 말라깽이 웃는 얼굴에 한방 먹일 태세였다. 사내 곁에는 늘씬한 모델이 잘록한 허리를 감싼 투피스 차림으로 서 있었다. 덩치의 기사도 정신에 모델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허공에다 흔들어대는 사내 팔뚝을 잡아채며 콧소리를 냈다.

“자기야 이러지 마. 난 괜찮은데.”

말라깽이는 남의 여자 그림자나 좇는 한심한 작자로 보였다.

“예뻐서 나도 모르게 얼핏 봤을 뿐 그게 뭔 대수라고.”

어깨를 제법 꼿꼿한 세운 말라깽이가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질투에 눈먼 덩치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야 이 눈깔이 삔 새끼야. 둘만 있었으면 넌 즉시 골로 갔어.”

덩치가 쇠몽둥이처럼 생긴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말라깽이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내가 끼어들 차례였다.

“아 참, 몸이 정말 예술작품이시던데. 아름다운 여신을 보는 게 무슨 죄인가.”

모델이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뭐야, 뜨악한 표정으로 덩치가 나를 째려보았다.

“다른 남자가 바라볼 정도로 내 여자가 미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눈길을 받는다고 형씨가 애인을 덜 사랑하겠는가 말이야. 바에 왔으면 서로 즐겁게 지내야지. 좋은 친구도 만나고 적당히 마시고 방에 가서 질투를 벗고 몸을 불사르던지.”

이번에는 모델이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나는 위스키 몇 잔을 마신 후였다. 맞을 각오는 되어있었다. 이미 일주일 전 돌려차기로 맞은 갈빗대는 금이 가 있었다. 그제 맞은 이빨은 좌우로 한 개씩 흔들렸다. 이제 덩치와 여자는 서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거다. 서로에게 이별을 물어볼 시간이 온 것이다. 의사소통과 신뢰의 문제를 서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람 관계는 늘 정산이 필요하며 진정성에 관한 문제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참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흔한 일이지 않은가. 이제까지 버티고 살아온 세월이 살아나갈 여정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것이다. 나는 맞아야 산다.

“형씨 나이가 몇 개인데 이리도 재수가 없으실까?”

나는 덩치의 염장을 지른다.

“네가 알아서 뭐하게 이 새끼야?”

덩치 주먹이 날아온다. 피한다. 약을 좀 더 올려야 한다.

“네 여자 국 끓여 먹으려고 그런다. 좀 제대로 때려봐. 이 병신새끼야.”

덩치는 눈이 풀리고 이성을 잃었다. 무시무시한 덩치의 주먹이 내 안면을 강타했다. 정통으로 맞은 나는 코뼈가 부러졌나 보다. 숨쉬기 곤란하고 보혈이 흘러내린다. 최소 백만 원짜리 펀치였다. 이번에도 덩치는 졌다.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동업자 말라깽이를 찾는다.

“어이, 말라깽이. 봤지? 경찰 좀 불러. 아니 구급차 불러. 제일 가까운 병원이 어디지?”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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