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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 통신]

8월13일 화요일 오후8시, 롯데콘서트홀

[성용원 음악통신 30] Critique: 최수열과 조진주의 Russian Night

2019. 08. 14 by 성용원 작곡가

 음악이라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 다르겠지만 <조화>는 빼놓지 못할 것이다. 음악만큼 개인의 기량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한데 어울려서 협동과 약속을 지켜야 하는 유희가 또 있을까? 악보는 제각각과 산발적을 방지하기 위해 그려진 조합이자 약속의 결과물이고 표기되지 못한 음표 너머의 뭔가를 건드리고 끄집어 내는 게 음악의 심원함이자 넓고 광대한 세계이다. 음들의 조합(Composition: 작곡이라는 단어의 서양에서의 유래)말고도 사람끼리의 궁합으로도 조합의 일종이다. 아무리 대가라도 유난히 잘 맞지 않는 연주 파트너가 있고 반대로 상생이 통하는 파트너가 있다. 그럼 오늘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와 부산시향의 차이코프스키는 어떠했을까?

부산시립교향악단 서울 롯데콘서트홀의 연주회
부산시립교향악단 서울 롯데콘서트홀의 연주회

 독주(獨走)하는 독주(獨奏)자와 맞춰주는 오케스트라

 조진주는 개성이 강하고 자신만의 색채가 뚜렷했다. 섬세한 프레이징과 극도의 강약 조절 범위는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콘체르토의 독주(獨奏)자가 독주(獨走)를 한다면 솔리스트의 역량은 마음껏 드러나겠지만 콘체르토의 본질인 대립과 조화가 어긋날 수도 있다. 단어에 혼자라는 홀로 독(獨)자가 들어간 건 같다. 다른 바이올린 협주곡도 아닌 차이코프스키에서 유난히 독주자가 부각되려고 하고 독주자가 오케스트라를 주도하려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건 곡 자체가 가진 화려함에 기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여러 연주가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조화적인 측면보단 솔리스트의 현란한 기교와 퍼포먼스적인 면이 충족되고 빛난다. 2악장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첫 선율에 한 음씩 찍어주며 반주를 해야 하는 1호른 주자는 더욱더 여리게 음을 불어야 했다. 조진주의 피아니시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고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악기 음량상 대비로 바이올린과 호른이 정가로 밸런스를 맞춘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왜 호른은 두 대 밖에 없어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가 그리 많은지 생각해보면 얼추 짐작이 될 정도로 악기 간의 밸런스는 악기 재질 차이만큼이나 맞추기가 힘들고 특별한 음향기기 도움 없이 연주되는 실연 시는 더욱 어렵다. 정경인 바이올린이 100의 섬세함이면 배경인 호른은 200의 여림을 발휘해야 되니 얼마나 애를 먹었을지 쉬 공감이 되었다. 그건 중간부에 대선율과 셋잇단음표로 반주를 해야 하는 클라리넷도 마찬가지였다. 2악장에선 모든 단원들이 합심해서 어떻게라도 밸런스를 유지하고 맞추려는 노력과 집중이 피부로 와닿으며 합주(Ensemble)보단 최대한 맞춰주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조진주의 차이코프스키는 현란한 퍼포밍(Performing)이 돋보이는 스타 가수의 무대였다. 기회가 된다면 조진주가 소규모 밴드와 연주하는 피아졸라나 집시, 월드 뮤직 등을 감상해보고 싶다.

부산시향과 차이코프스키를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부산시향과 차이코프스키를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인도하는 꿈과 환상의 아라비안나이트

 2부의 림스키 코르사코프에서는 봉인이 풀렸다. 오케스트라는 이제 램프에서 풀려난 지니다. 이제 맞춰 줄 필요가 없다. 지휘자 최수열과 오케스트라가 배의 키를 쥐고 망망대해로 힘차게 여행을 떠난다. 1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남자 호른 주자가 제3호른으로 자리를 옮기고 1호른 주자는 여자로 바뀌었다. 목관악기들은 이제 신나게 자신들의 색채를 뽐내었다. 클라리넷 수석주자도 조진주 못지않게 섬세함과 폭넓은 강약을 들려줬다. <세헤라자데>는 그런 작품이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음악은 영상매체가 없었던 시대, 최상의 비주얼 스토리텔러다. 바이올린 독주는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술탄을 유혹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필사적인 삶의 의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세헤라자데의 교태는 관능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이다.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첫 번째 이야기 함차게 오케스트라의 튜티로 출항한다. 배가 떠나면서 6/4박자의 넓게 도약하는 첼로와 베이스의 음형은 노 젓는 모습이다. 플루트, 오보에로, 클라리넷, 바순 등 정말 악기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적의 소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절묘한 매칭으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끔은 달콤함에 빠져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도 안겨보고 어쩔 때는 죽을 고비도 간신히 넘기고 한 번은 또 악당들과 신나게 싸우면서 감상자가 꿈과 환상의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으로 동화된다. 음악으로만 오감만족을 충족시켜주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작품은 놀랍고 경이로웠다. 음악만으로도 모든 게 가능했다. 말 한마디 없지만 음악이 모든 걸 표현하고 있다. 역시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관현악의 마술사다. 마지막 목관악기의 여운과 함께 일장춘몽이었던가.... 한여름밤의 꿈도 이렇게 깨어나 보니 옆자리의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의 손에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스코어가 꼬옥 들려 있었다. 이렇게 음악은 꿈과 환상, 현실과 미래를 종횡무진한다. 그 소년에게 오늘 세헤라자데는 어땠을까?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았다. 같이 여행을 한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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