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을 전공하고 5년간의 독일 유학까지 마치고 온 성악가가 큰 무대를 포기하고 고향인 안성의 부모님 집 옆 고추밭에 집이 딸린 카페 겸 공연장을 짓고 정착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성악을 가르치고 함께 음악으로 호흡하는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내용의 <우리동네 파바로티>가 4월 첫 주의 KBS1 인간극장 방송으로 소개되었다. 서양음악의 본 고장인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당당히 주연까지 거머쥐었지만 불러주는 무대도 없고 빈약한 인맥에 아이 셋 딸린 아버지로서 현실은 냉혹하기만하다. 새벽 6시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방앗간으로 출근해 시급 만 원짜리 떡 포장과 배달일을 하고 방앗간 일이 끝나고 나면 70대의 막내 할머니부터 구순의 할아버지까지 동네 어르신들을 모아 합창단 지휘를 하고 유치원 교사 모임에서 초등학교 입학식까지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생계형 성악가이자 요즘 EBS 세계테마기행의 나레이터를 맡고 있는 고희전이 그 주인공이다.
기술을 배워 먹고 살라는 아버지의 엄명 때문에 공대에 진학했다가 자퇴하고 남들은 일찍부터 배우는 음악을 스물한 살에 시작, 스물다섯에 아내와 첫째 딸을 데리고 유학길에 올라 독일 만하임 음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극장에서 주역까지 맡았으나 오랜 타향살이에 지친 아내의 향수병으로 귀국한 후 작은 동네 무대를 돌며 다양한 사람들에 노래를 들려주고 음악을 펼친다는 내용인데 어쩌면 당연한 음악가로서의 본분이자 생활이다. 일반인들이야 고희전 성악가의 삶이 짠하고 안쓰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음악인들 관점에선 하나도 신기하거나 대단할거 없는 넘치고 넘치는 성악가 중 한명의 일상이자 어찌 보면 도리어 방향과 설계를 잘 잡은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던 사람이 한두 명인가!
인구 10만의 중소도시에서도 오페라 극장이 있어 밤마다 공연을 하고 성악가가 필요한 유럽의 음악과 문화풍토를 성악이란 그저 학교에서 배운 오 솔레미오 정도로만 알고 언어와 풍습,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성악으로 일거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유럽의 작은 동네에서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변호사, 굴뚝 청소부, 버스 운전사가 함께 오페라 공연을 즐기고 부르면서 격의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는 자기 나라 언어이고 자기 나라 음악이라서 그렇지 우리말로 된 가요나 트로트도 매년 5000여 종류의 신곡이 쏟아져 나오는 실태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노래를 감상할 인구가 그걸 부르겠다는 공급자의 수요에 비례해 압도적으로 적다. 몇 십억을 들여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따와도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한국 음악가들에 돈 많은 집안이야 그런 생계 걱정 없이 자기 자신을 위한 학위취득이 자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대학 운영시켜준 꼴 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늦은 나이에 음악이 좋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이 한두 명인가!
고희전 성악가는 현실인식도 못하고 자뻑에 취해 오페라 타령만 하고 자기 안 불러준다고 푸념하면서 다른 사람 시기하는 다른 이들보다 백배 날수도 있다. 가족들이 오붓하게 거주 할 집이 있고 동네 사랑방이 될 수 있는 카페와 홀이 있다고 하니 거기서 지금처럼 우리 동네 클래식 콘서트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부르고 싶은 노래 실컷 부르고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면 된다. 꼭 학교에 출강하고 적은 개런티로 오페라 무대에 서서 노래 불러야지 성공한 성악가인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게 음악가다. 그러다보면 분명 자신만의 영역이 생기겠고 하고 싶은 오페라 무대에도 설 수 있으며 후학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장담한다. 부디 지금처럼 소확행을 누리며 너무나 간절히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던 초심 그대로 고희전 성악가가 롱런하길 바란다.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
한국 가곡과 우리 노래 불러야 된다. 때와 장소에 맞는 선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