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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수필]
어둑해진 거리의 상점들은 전등을 켜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여전히 흙탕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분뇨와 쓰레기가 마구 뒤섞인 흙탕물은 거리의 불빛에 의해 바람이 흔드는 꽃밭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칠월칠석날의 캘커타와 후글리강
2019. 10. 26 by 김홍성 시인

 

델리에서 캘커타까지 이어지는 광범위한 지역에 지속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199583일은 음력으로 칠월칠석이었다. 견우직녀가 하늘나라 오작교 위에서 만나 흘리는 눈물이 비가 되어 쏟아진다는 전설은 혹시 인도 땅에서 비롯된 것이나 아닐까 싶었다. 1992년 칠석날에도 히말라야 북부 사막 지대인 라다크의 라마유르라는 곳에서 비를 만났다. 허름한 로지의 발코니에서 황량한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매캐한 냄새가 났다. 반시간 쯤 지난 후, 소나기는 그치고 무지개가 피었다. 선명한 쌍무지개였다. 대산맥 히말라야에 막혀서 비구름이 넘어오지 못하는 산중 사막에서 비와 쌍무지개를 만난 것은 축복이며 은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캘커타에 내린 칠석날 비는 재앙에 가까웠다.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특히 도심 교통이 마비되어 버렸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승용차들이 길가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도로 가운데서 시동이 꺼진 차를 여럿이 밀어내고 있기도 했다. 행인들은 바지와 신을 벗어 들고 허리까지 오는 물을 헤치며 걸었다. 집 안으로 넘쳐 들어온 물을 양동이로 퍼내는 사람들, 러닝셔츠 차림으로 우산을 들고 교통 정리하는 순경들도 보였다. 이런 물난리 속에서도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은 대목을 만났다. 그들 릭샤왈라들은 승용차에서 내린 손님을 받아 싣고 신나게 달렸다. 부잣집 딸들로 보이는 아리따운 여학생 둘을 실은 릭샤왈라는 그중 행복해 보였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비도 그쳤고, 이미 3시간 동안 차 안에 갇혀 있었기에 갑갑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지도에 의하면 호텔까지 약 2킬로미터. 그러나 델리와 캘커타 공항의 화물 적재 벨트 위에서 비를 흠뻑 맞은 배낭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거리에 범람한 물은 무릎 위까지 차올랐다. 인력거를 불러 탈 수도 있었지만 그냥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온 몸으로 캘커타의 칠석날 물난리를 겪어 보기로 했던 것이다. 한 시간 쯤 더듬더듬 물속을 걸어서 수데르 거리의 마리아 호텔에 도착했다. 빗물은 호텔 현관 문지방 앞까지 차 있었다. 마침 이층에 빈 방이 하나 있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감옥을 연상케 하는 퀴퀴한 방이었다. 변소 소독용 소석회 냄새가 났다. 높다란 천정에 큼직한 프로펠러 선풍기가 달려 있었다. 화장실에는 좌대가 따로 없는 변기와 꼭지 떨어진 샤워기가 외설스럽게 달려 있었다. 그래도 침대와 베개 시트는 깨끗해 보였다. 빨랫줄을 매고 배낭 속의 젖은 옷가지를 방안 가득 널고 나니 배가 고팠다. 어둑해진 거리의 상점들은 전등을 켜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여전히 흙탕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분뇨와 쓰레기가 마구 뒤섞인 흙탕물은 거리의 불빛에 의해 바람이 흔드는 꽃밭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물 빠지는 양과 비례해서 사람과 차와 인력거들이 서서히 늘어나는 거리에는 아직 숙소를 못 구해서 배낭을 맨 채 호텔을 뒤지고 다니는 여행자들도 많이 보였다. 또 그런 여행자들을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적선을 요구하는 거지들도 보였다. 갓난아이를 안고 다니며 아이에게 우유 사 줄 돈을 달라는 여인네들도 여럿 보였다.

이튿날 아침에는 우선 호텔 마리아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더욱 우중충해 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캘커타 시가지가 제법 멀리까지 내다 보였다. 물속에서 솟아난 중세 도시를 보는 느낌이었다. 곰팡이나 이끼, 또는 녹이나 물때 같은 것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축축한 건물들은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죽음의 도시, 망각의 도시...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건물 밑 골목에서 꼼지락거리며 서서히 크게 울려 나오는 소음들은 이 도시가 아직 살아있는 도시라는 걸 일깨워 주고 있었다. 자동차 소리, 릭샤왈라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딱딱이 치는 소리, 이웃 건물의 변기에서 물 빠지는 소리. 앞 건물 옥상 난간에는 예쁜 꽃이 핀 진흙 화분이 서너 개 쯤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화분 뒤에서 한 소녀의 얼굴이 쑥 올라왔다. 소매 없는 얇은 셔츠 차림의 소녀는 흰 치약 거품을 물고서 윗니를 닦고 있었다. 빨래 너는 옥상들도 많았다. 아침 햇살 속에 내걸린 각양각색의 빨래들은 하나하나가 무슨 깃발 같았다. 그곳에서 사람의 삶이 영위 되고 있음을 알리는 깃발들…….

기차를 타고 북쪽 히말라야를 향해 떠나기까지 23일을 묵는 동안 제법 많은 구경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캘커타 한 가운데를 흐르는 후글리 강의 풍광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칠석날 내린 폭우로 인해서 강물은 넘실넘실 힘차게 흘렀다. 고깃배도 보이고 짐배도 보였지만 가장 많은 배는 대중교통 수단으로서의 커다란 나룻배였다. 페리라고 부르는 이 나룻배에는 벤치 같은 좌석도 있고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들이 죽 매달려 있었다. 시민들이 페리에 앉거나 서서 학교나 직장 또는 일터를 왕래하는 모습이 참 이채로웠다. 물론 후글리 강에도 현대식 대형 교량이 있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우리나라 한강 다리들만큼이나 혼잡이 심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물 위에 서서 유유하게 통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낭만적이냐. 통근하다가 남몰래 눈 맞아 연애하는 남녀도 수두룩하리라.

  • 땅콩 장수도 탔고, 맹인 가수 부부도 탔고, 앵벌이 하는 장애인들도 타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강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고, 강가에서 빨래하고 설거지도 하는 아낙네들이 있었으며, 물속에 들어가 합장한 손을 치켜들고 신에게 기도하는 남자들도 보였다. 저녁 무렵에는 한 노인도 만났다. 대도시의 거대한 혼잡을 등지고서 후글리 강의 한 풍경처럼 앉아서 뭔지 모를 조용한 노래를 읊조리던 그 노인은 유행(流行)하는 힌두 수행자. 자리를 펴 놓은 것으로 보아 거기서 노숙할 작정이었나 보았다. 그는 힌두의 관습에 따라 집을 떠나서 성지를 순례하며 걷는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 종착지를 물었을 때 그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가리키고 저만치 흘러가는 강물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다시 흥얼흥얼 염불 같은 노래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느린가 하면 빠르고, 빠른가 싶으면 느린 노인의 노래는 후글리 강의 힘찬 물결에 실려서 멀리멀리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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