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관리사 고용 구조 개선안 합의·도출
세계 경마 추세도 ‘경쟁’
일본경마, 개별 고용제 채택
‘경쟁’ 요소 배제 시, 전체 경마산업에 악영향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올해 연이어 발생한 말 관리사의 죽음의 원인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불안전한 고용 구조로 꼽고 있다.

한국마사회와 양대 노총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한 협의체는 지난 12월 6일 3개월간의 협상을 거친 끝에 말 관리사의 고용 구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현재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이하 ‘부경 경마’)에서 시행되고 있는 조교사 개인별 말 관리사 개별 고용 형태에 변화를 줘 렛츠런파크 서울(이하 ‘서울 경마’)과 비슷한 협회 차원의 집단 고용 방식을 택하겠다는 게 합의의 골자이다.

발표된 합의 내용을 놓고 ‘한국경마의 퇴행이다’, ‘국제적인 경마 추세와는 다르다’란 비판들도 있다. 경마의 본질을 고수해야 하는 한국마사회가 정치계와 여론의 눈치를 보며, 본분의 자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공기업으로 공익성을 갖고 있는 한국마사회는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나 전체 말산업의 공익보다 일부 집단의 의견만을 고려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물론, 여러 차례에 걸친 갈등 봉합을 위해 공을 들인 만큼 한국마사회는 이번에 도출된 합의안을 전면적으로 뒤집을 순 없다. 근로감독 결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말 관리사들의 강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일부 변화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마사회가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경마의 본질인 ‘경쟁’이다. ‘競馬’란 단어 자체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듯이 경마에서 ‘경쟁’을 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태생부터 ‘경쟁’
‘경마’는 태생적으로 경쟁을 목적으로 태어났으며, 경쟁하면서 지금의 현대 경마까지 빌전할 수 있었다. 인간은 말을 가축화하기 시작한 고대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말의 속도를 경쟁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고대부터 전 세계 다양한 문명에서 경마와 비슷한 행태들이 행해졌다는 기록들도 발견돼 이를 입증하고 있다.

고대 경마가 영국에 전래된 이후 12세기경에는 사람이 말 등위에 타는 기승경마의 형태를 갖추고,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경마가 유행히기 시작했다. ‘왕들의 스포츠(Sport of Kings)로 불리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이며, 자신이 소유한 말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매치 경주를 자주 열었다.

1791년에는 영국 자키클럽의 사무총장인 ‘제임스 웨더비’가 체계적인 경주마의 혈통서 발간을 목표로 ‘제너럴 스터드 북’을 발행해 혈통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경쟁 체제 정립을 위한 기초적인 자료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근대 경마에 들어서면서 대규모 관중이 등장하고 베팅 시스템이 도입됐다. 실질적으로 경마가 하나의 산업으로 기반을 다진 시기로 ‘경쟁’을 통한 본격적인 경마의 발전이 일어난 때이다. 20세기에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들을 중심으로 경마가 전 세계에 확산됐고, 말을 키우는 산업과 더불어 정교화 된 경마운영시스템으로 하나의 대중 레저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경마는 세계적인 추세와 동일하게 조교사가 말 관리사를 개별 고용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노동조합은 결성돼 있지만 전반적인 말 관리사의 노동환경 및 조건 등에 대한 교섭을 진행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의 경마 시스템.

국제 경마도 ‘경쟁’
세계적인 경마 추세는 ‘경쟁’이 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140여 년을 넘긴 미국의 ‘켄터키 더비’를 비롯해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는 영국 애스콧 경마축제, 오일머니를 앞세워 세계 최고 상금을 놓고 벌이는 두바이 월드컵 등 세계적인 경마대회에는 매년 발전된 기량의 말들이 출전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경쟁’을 통한 뛰어난 말 생산 및 육성·조련 기술을 집약돼 있으며, 우수한 말을 생산한 각국의 말산업에 큰 경제적인 이득도 가져다주고 있다.

또한, 한국경마와 가장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일본경마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정체된 말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경주마, 기수, 조교사 뿐 아니라 마주까지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해 자연스러운 경쟁 유도를 통해 세계 경마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일본경마는 세계적인 추세와 동일하게 조교사가 말 관리사를 개별 고용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으나, 노동조합은 조교사들과 집단고용을 체결하는 역할은 하고 있지 않으며, 말 관리사의 노동환경 및 조건 등에 대한 교섭을 진행한다. 조교사협회와는 협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건전한 경마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서울 vs 부경

더러브레드로 경마를 시행하는 서울과 부경을 단순 비교하더라도 ‘경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서울·부경 간의 통합 경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것을 통해 볼 때, 부경이 훨씬 앞서가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용 구조상 서울이 부경에 비해 우승에 대한 경쟁 고취 의지가 낮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서울에서는 경주에서 얻게 되는 3위, 4위의 상금의 수득 비율이 높아 소득 불균형 해소에는 좋으나, 경쟁심은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협회의 집단고용으로 인해 조교사의 말 관리사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된다는 점도 문제이다. 프로 스포츠의 감독 격인 조교사의 진두지휘 아래 경쟁력 있고 건설적인 경주마 육성 및 조련이 이뤄져야 하는데 집단고용 형태로 인해 조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말 관리사들을 적절히 통제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의 경우지만, 나름의 노하우를 쌓은 말 관리사들은 오히려 이런 이점을 악용해 태업을 하면서 말이 거의 없는 마방, 일이 없는 마방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울 소속 말들의 전략적인 육성과 조련은 상대적으로 뒷전일 수밖에 없다.


‘경쟁’ 배제 시 말산업 전체에도 악영향

부경 시스템 중 문제가 있는 일부에 변화를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현재 경쟁 체제를 비경쟁 체제로 돌리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만약 ‘경쟁’이란 요소가 배제될 경우 전체 경마산업의 위축도 불가피하다. 매년 급격한 경마팬의 감소로 인한 경마매출이 감소하는 있는 상황에서 제반비용의 과도한 증가는 경마 상금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경마 상금이 줄어들면 좋은 말을 사고 육성·조련을 통해 우승하려는 마주들의 의지도 함께 감소하게 되고, 이는 경마의 질 하락 및 경마시장의 축소로 직결된다. 이런 경마산업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최종적으로는 경마산업의 몰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협의체를 통해 개선안이 도출된 만큼 결정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고용 구조 변화 과정 속에서 말 관리사의 불합리한 고용 구조는 개선하고, ‘경쟁’ 요소는 고수해야 한다. 전반적인 한국경마의 방향성의 수정이 필요하다면 공론화를 통해 한국경마 발전 방안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관련부처를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도움도 필요하다. 다사다난했던 정유년에 이어 다가올 무술년에도 한국마사회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다.

▲경마의 본질인 ‘경쟁’이다. ‘競馬’란 단어 자체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듯이 경마에서 ‘경쟁’을 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한국마사회가 ‘경쟁’이란 화두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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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 관리사 자살 및 고용구조 개선 사건일지]

△1월11일 = 렛츠런파크 서울 소속 말 관리사 K씨 자살.

△5월 27일 =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소속 말 관리사 P씨 마방에서 자살.

△8월 2일 =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소속 말 관리사 L씨 창원 한 농장 앞 승용차서 자살.

△8월 5일 = 렛츠런파크 부경 본부장 등 직위 해제.

△8월 16일 = 말 관리사 근로 조건 개선 대책 합의문 도출.

△8월 19일 = 두 말 관리사 공동 장례식 치러.

△9월 8일 = ‘말관리사 직접고용 구조개선 협의체’ 협약식 개최.

△9월 27일 = 한국마사회, ‘경마산업 현장 고용·산업안전보건 개선 대책’ 발표.

△11월 23일 = 부산경남마필관리사노동조합, 최종 파업 결정.

△11월 24일 = 부산경남마주협회, ‘직접 고용 우려 표명’ 성명서 발표.

△12월 6일 = 말관리사직접고용구조개선협의체, ‘협회 집단고용 방식’ 합의안 도출.

△12월 20일 = 부산경남마필관리사노동조합, 새벽 훈련 불참…파업 돌입.

△12월 21일 = 부경조교사협회·부경마필관리사노조, 극적 협상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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