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인한 퇴사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하면서 한국판 ‘씨비스킷’이라고 불리는 ‘백광’이 최근 또다시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또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 여부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3월초 ‘백광’이 이전에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왼쪽 다리가 아닌 오른쪽 다리가 붓는 모습을 보이면서 또다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이수홍 마주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큰 질병이 아니고 가벼운 정도라 잘 될 것이다”고 밝히면서, ‘백광’이 2주전 오른쪽 앞다리에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현재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마주로서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고 심경을 나타냈다. ‘소백수’를 계기로 이수홍 마주와 인연을 맺게 된 ‘백광’은 2005년 9월 데뷔전에서 3위를 기록한 이후 쾌속의 상승세를 보였고, 2006년에는 ‘문화일보배 ’를 시작으로 ‘동아일보배’, ‘농림부장관배’를 휩쓸며 경마대회 3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새강자’의 뒤를 잇는 국산명마로 평가됐다. 그러나 2007년 무릎부상으로 공백을 가진 이후 5개월만인 2008년 9월 뚝섬배 경마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경주후 ‘좌중수부계인대염’으로 출전정지 처분을 받아 은퇴를 고민했다.

수의사와 조교사 등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경주마로 다시 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수홍 마주와 배대선 조교사는 줄기세포 치료 정보를 습득하여 마지막으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마주와 조교사의 노력에 힘입어 국내에선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를 시도했고 14개월만인 2009년 7월에 SBS배 경마대회에 출전해 4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이후 ‘백광’은 대통령배 2위를 포함해 다섯 번의 경주에서 2승과 2위 3회로 입상률 100%의 기량을 뽐냈고, 총전적에서 2009년 SBS배 4위를 제외하고는 22회의 경주에서 모두 3위내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수홍 마주는 지난해 연말 ‘백광’이 대통령배 경마대회에서 획득한 상금 중 4,000만원을 장애인 재활치료를 위해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백광’의 이름으로 기부하면서, 사람이 아닌 동물의 이름으로 기부한 최초의 사례를 남겨 세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미 두 번의 위기를 극복한 바 있는 ‘백광’의 사연은 1930년대 대공황의 경제위기를 맞은 미국에 희망을 안겨준 ‘씨비스킷’에 비유되기도 했다.

1929년 대공황을 맞은 미국대륙은 이후 10여년간 1930년대를 관통하면서 그야말로 암흑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이 속출했으며 자영업자며 사업가들도 부도로 내몰려 노숙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공황의 막바지였던 1938년 미국에서는 그해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씨비스킷’이라는 보잘것없는 외모의 적갈색 경주마였다. 1936년8월 디트로이트의 어느 여름날 실패한 기수 ‘폴라드’와 떠돌이 시인이던 조교사 ‘스미스’와 자동차업계 벤쳐 기업인으로 떠오른 마주 ‘하워드만’이 팀을 이뤄 서있기조차 힘겨워보이는 초라한 3세 경주마 ‘씨비스킷’을 소유하게 된다. 이들은 ‘씨비스킷’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세계적 명마로 일으켜 세운다. ‘씨비스킷’은 장장 5만마일이 넘는 철도여행을 강행하면서 미국의 최고 명마들을 차례로 무너뜨린다. 마지막으로 1938년 말 당대 최고의 명마 ‘워에드머럴’과의 맞대결에서 4마신차이로 이기면서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씨비스킷’을 통해 희망을 발견한 미국인들은 대공황의 어려움을 이겨냈다. 한국판 씨비스킷 ‘백광’이여 다시한번 재기하여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물들여라. 위대하게 질주하라.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날려버려라.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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