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여성기수가 ‘금녀(禁女)의 벽’으로 치부되던 역사가 있었지만 선진경마국에서는 여성기수의 활약은 보편화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도 지난 1975년 최초의 여성기수 이옥례씨가 있었지만 6개월 동안 활동하고 은퇴했다. 그러다가 2001년9월 이신영과 이금주 2명의 여성기수가 등장하면서 ‘금녀(禁女)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여성기수들의 맹활약은 그동안 보수적이면서도 도제방식에 길들여져 왔던 우리 경마역사에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일본 강점기에 태동한 우리나라의 경마는 남성우월의 유교전통과 사무라이 정신에 흡수된 일본경마가 접목되면서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서러브레드라는 단 한 가지 혈통의 경주마로 펼쳐지는 경마산업의 특성상 세계적 조류를 거스르기는 어렵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북미나 남미 나라들의 조교사며 기수 관리사 할 것 없이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새벽훈련 현장에 경주마를 훈련시키는 사람의 절반이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마산업의 특성상 글로벌산업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경마산업 전 분야에 걸쳐 여성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이같은 세계적 상황이 조우하듯 열정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이 이신영 기수(29)다. 그녀는 24일 조교사 면허시험에 최종 합격, 국내 경마사상 최초의 여자 조교사란 타이틀을 추가했다. 그것도 쟁쟁한 35명의 남자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홍일점으로 수석 합격했다. 기수시절 코뼈가 부러지는 등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얻어낸 성과물이어서 수석합격의 영예는 더욱더 빛을 발한다.

여성 조교사의 경우 경마 역사가 깊은 미국·호주·영국 등지에서는 많이 있지만 한국과 일본·홍콩 등 동양권 경마 시행국에서는 그 동안 여성 조교사가 배출되지 않았다. 경마란 종목 특성상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이었다. 이 기수는 사실상 동양권 최초의 여성 조교사가 된 셈이다.

이신영 기수는 부산 동아대 체육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99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금녀의 세계였던 기수직을 선택했다. 이어 2년간의 후보생 시절을 거쳐 2001년 7월 국내 두번째 여자기수로 데뷔했다. 아직 미혼인 이 기수는 "일과 결혼생활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일을 택할 것"이라며 "조교사는 기수보다 더 힘든 직업이어서 여성이란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최고가 되겠다"고 말했다.

여성 기수들의 맹활약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한국의 경마문화를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동안 경마부정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된 기수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지금까지 여성기수는 단 한명도 부정에 연루되어 경마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기수들의 선전은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의 편견을 해소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한국경마는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선진 경마시행국과는 달리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이신영, 이금주 기수 등 서울 뿐만아니라 부산과 제주에서도 여성 기수들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경마문화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 언론 시민단체들도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버려야 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를 두어 규제와 통제 만을 일삼는 행위는 세계의 변화를 모르는 무식한 행위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조롱거리 밖에 되지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마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여전사 이신영 기수여! 그대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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