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하루우라라’(春うらら= うららな春의 강조 표현, 화창한 봄)라는 경주마를 놓고 일본열도가 들끓었던 적이 있다. 일본열도를 열광시켰던 ‘하루우라라’(당시 암말 8세)는 1996년 홋카이도 미쯔이시지역의 조그만 목장에서 부마 ‘닛뽀데이오’와 모마 ‘히로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루우라라’는 전혀 관심권 밖에 있는 경주마였다. 경마장의 저속한 표현으로 하자면 소위 ‘덩말’ 범주에 속한 ‘하루우라라’는 그래서 중앙경마장에서는 활동하지 못하고 시코쿠 고우치겐(高知縣)에 있는 지방경마장 고우치경마장에서 활동했다. ‘하루우라라’는 113회 경주에 출전하면서도 단 한차례의 우승도 하지 못했다. 이때까지 최고의 성적은 준우승 5회, 3위 7회가 고작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 경주마를 놓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승을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출전할 때마다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달리는 ‘하루우라라’의 모습을 통해 일본인들은 스스로 위안받고 새로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루우라라’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114전 만에 우승을 차지해 전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달리는 모습을 통해서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일본은 10년 넘게 이어진 경기불황의 터널을 뚫고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하루우라라’의 우승이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이다.
현역 최고참(정규 4기) 김귀배 기수(47세)가 2010년 첫 승을 달성했다.

지난 일요일(4월25일) 제5경주, 국산5군 ‘용호약진’에 기승했던 김귀배 기수는 게이트 이탈과 함께 강한 추진으로 선행에 나섰고, 결승주로에서는 문세영 기수의 ‘강호탄생’이 만만치 않게 따라 붙었으나 밀리지 않는 추진과 함께 3/4마신 차이의 우승을 거뒀다. 이날 ‘용호약진’은 단승식 28.7배로 인기 순위 7위권을 기록했고, 이른바 복병마의 선전으로 복승식은 20.7배에 그쳤으나 쌍승식의 경우 73.5배의 고배당이 나왔다. 올해 마수걸이 첫 승이자 지난 2008년 11월 우승을 차지한 ‘차트데임’ 이후 무려 17개월 만에 맛본 감격적인 우승이었다. 국내 최고령 우승을 기록한 김귀배 기수의 공식나이는 마흔일곱. 하지만 호적상 나이가 아닌 실제 출생년도(61년)를 감안하면 마흔여덟이다. 작년에 데뷔한 27기 3인방(김혜선, 박상우, 이기웅 기수)들이 88년생이니 이들과는 무려 27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난다. 현재 프로스포츠에서 최고참인 선수들이 대개 40세 전후인 점을 감안한다면, 김 기수의 현역 질주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1승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지만 1980년대의 그는 잘나가던 기수였다. 1986년, 뉴질랜드산 명마 ‘포경선’에 올라 기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랑프리(GI)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에게 허락된 경마대회의 운은 그 뿐이었다. 1989년 뚝섬에서 과천으로 경마장이 옮겨오면서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슬럼프 속에서도 김귀배 기수는 말이 좋아 말을 탔고, 2남 3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에 고삐를 더욱 세게 쥐고 말 등에 올라 내달렸다. 세월은 말보다도 빠르게 지나가 어느덧 그를 한국경마 최고령 기수로 만들었다.

한국경마의 역사속에서 김귀배 기수는 단순한 의미의 최고령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프로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고 있다.

아쉬움이 있지만 인간승리의 한 예가 되고 있는 김귀배 기수가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는 노장투혼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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