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부터 하늘이 점점 컴컴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새벽하늘에 붉은 노을이 지면 비가 올 징조라는 속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곳 히말라야에도 들어맞는 말인가 싶었다. 나는 배낭에서 판초 우의를 꺼내 입었으나, 총누리는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길은 산비탈로 이어지다가, 산모롱이를 에돌다가 계곡 아래로 내려서고 조그만 나무다리를 건너 다시 비탈로 이어졌는데, 그사이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이날 목적지인 킹쿠르딩 곰파까지 가려면 비탈길을 두 시간 이상 올라야 하는데 빗줄기 속에서 미끄러운 비탈길을 걷는 건 무리였다. 

 


총누리를 따라 들어간 길가의 2층집은 늙수그레한 부인이 어린이들과 사는 집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객이 둘 있었다. 그들은 지리 시장에서 오컬둥가 지방의 주막이나 가게로 등짐을 져주는 쿨리들이었다. 한 명은 아직 스무 살이 안 된 총각이고, 다른 한 명은 이미 중년에 접어든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화덕가에서 불을 쬐며 소찌아(버터 티)를 마시고 있었다.

 

2층에 마련된 이 집 부엌은 낮에 점심 먹은 집과는 달리 부뚜막이 따로 없었다. 맨땅에 큼직한 쇠틀을 하나 놓고 그 위에 솥을 걸었을 뿐이었다. 이 집은 지붕에 채광창이 있는 게 특이했다. 장작 때는 연기에 새까맣게 그을린 서까래 사이에 낸 채광창의 유리는 연기에 누렇게 그을려 있었지만, 제법 구실은 하고 있었다.

 

소찌아를 마시며 이 집 식구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옷이 아주 남루하고 더러웠다. 손발은 물론 얼굴과 목도 때가 시커멓게 껴있었다. 막내 딸 님이 셰르파는 그래도 세수는 한 얼굴이었지만 발은 오빠 겔부 셰르파나 네 살 먹은 조카 치링 덴지 셰르파 그리고 어머니처럼 때가 덕지덕지 앉아있었다.

 

이 집 주인 양반은 육 년 전에 16녀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위로 세 딸은 출가했고, 두 딸은 객지에 돈 벌러 가있다는데, 무슨 사연인지 셋째 딸이 낳은 손자 치링은 할머니가 맡아서 기르고 있었다. 이 집의 외아들인 겔부 셰르파는 5학년까지 다니다 말고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일손을 놓고 병들어 눕고부터였다. 막내 딸 님이 셰르파도 집안 일손이 모자라 학교를 2학년까지만 다녔다고 했다.

 

차는 다 마셨지만 너와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더욱 커졌다. 배도 출출하고 하여 감자를 삶아먹기로 했다. 님이 셰르파가 부엌 한쪽에서 커다란 소쿠리에 감자를 가득 담아 와서는, 부엌 바닥에 놓고 커다란 칼로 썩썩 잘라 화덕에 올린 엉성한 솥에 넣었다. 그리고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 왔는데, 그 사이 밭에 가서 마늘을 한 묶음 캐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님이 셰르파는 그 마늘을 대충 다듬어 물에 씻은 후 조그만 나무절구에 넣고 공이로 콩콩 찧었다. 소금도 약간 뿌렸다. 뭘 만드나 했더니 삶은 감자를 먹을 때 찍어 먹을 소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소스에 뜨거운 감자를 쿡 찍어 한입 먹자니 어린것의 정성이 어찌나 갸륵한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잠시 보이지 않던 이 집 외아들 겔부 셰르파가 나타났는데, 그는 손에 큼직한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마을에 내려가서 락시를 받아온 것이었다. 옥수수로 빚은 것이며 금방 내린 것이라 아직 뜨뜻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촉이 좋았다. 주인 식구와 객들을 합쳐서 여덟 사람이 화덕에 둘러앉아 말없이 감자를 까먹는데 너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왜 그리 크게 들리던지…….

 

님이 셰르파는 화덕 위의 솥에 뜨물을 붓고 거기다가 우리가 벗겨낸 감자 껍질을 모아 넣었다. 소찌아를 마신 컵을 헹군 물도 그 솥에 부었다. 마늘 다듬을 때 벗겨낸 푸성귀도 그 솥에 들어갔다. 그리고 귀퉁이를 꿰맨 헌 자루에서 옥수수 껍질을 한 움큼 꺼내어 일일이 손으로 찢어 넣고는 또 다른 자루에서 보릿겨 같은 것을 한 움큼 꺼내 솥에 털어 넣었다. 작은 손에 묻은 보릿겨도 탁탁 털어 넣었다. 외양간의 소들에게 먹일 쇠죽이었다.

 

남매가 그 쇠죽솥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기에 따라 내려갔다. 마당 한쪽에 엉성한 외양간이 있었다. 남매는 그 외양간에 있는 소 세 마리에게 쇠죽을 퍼주는 것이었다. 외양간에서 나오니 금세 컴컴해진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언제 눈이 왔는지 주변의 산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있었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화덕 앞에 모여 앉았다. 남은 락시를 비우기 시작했고, 그 많던 감자가 바닥났다. 겔부 셰르파가 씨알이 작은 감자들을 다시 한 바가지 가져다 화덕의 재 밑에 묻었는데, 그것도 다 먹고 나니 채광창이 깜깜해졌다. 나는 화덕 옆에서 자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객들은 아래층의 침대를 사용해야 했다. 아래층에는 부처님을 모신 불단이 있고 불단 좌우로 나무 침대가 네 개 있었다. <계속> 

 

감자 먹는 식구들 
남매와 조카 
차를 만드는 부인.

길게 세워진 화살통 같은 물건은 차와 버터를 잘 섞기 위한 연장이다. 막대기를 아래위로 천천히 펌프질 하면 버터가 차에 우유처럼 섞인다.

벽에 기대앉은 두 사람은 등짐으로 산간벽지 곳곳으로 물건을 운반해 주는 일을 한다.

천정의 채광창.
소들이 여물을 먹고 있다
우사. 소여물을 주러왔다. 언제 눈이 왔는지 주변의 산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있었다.
남매와 조카.
소여물이 끓는 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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