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전시 공간 마련돼야 그들의 155년 오랜 유랑도 멈춰 설 것

▲1937년 강제 이주 직전에 등록한 한 고려인의 출생증명서. 러시아어와 한글을 병기한 점이 눈길을 끈다. 고려인역사박물관이 건립되면 이 같은 귀중한 자료들이 대거 일반에 선보일 예정이다. [자료 제공=김병학]
▲1937년 강제 이주 직전에 등록한 한 고려인의 출생증명서. 러시아어와 한글을 병기한 점이 눈길을 끈다. 고려인역사박물관이 건립되면 이 같은 귀중한 자료들이 대거 일반에 선보일 예정이다. [자료 제공=김병학]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방문을 전후로 광주광역시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이어졌다. 먼저 4월 10일부터 17일까지 광주시청 1층 로비에서는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전시회’가 개최됐다. 이어 4월 30일에는 광주 고려인마을에 '고려인 항일투쟁 역사유물전시관'이 개관됐다.

시청에서 열린 행사에는 1904~1905 ‘고려인항일무장투쟁’, 1909 ‘고려인 안중근 의사 하얼빈역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19년 ‘연해주 3.1독립만세운동’, 1923~1935 ‘고려인 문화의 개화기’, 1937 ‘고려인 강제이주’, 1939~1957 ‘시련과 개척’, 2001~현재 ‘다시 돌아온 한민족 고려인’ 등의 구성을 통해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됐다.

또 이어 오픈한 ‘고려인마을 역사유물 전시관’에는 고려인 선조들의 항일운동 관련 사진과 서적, 육필원고 등이 상설 전시됐다. 이들 전시 자료를 통해서는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경천 장군 부부 사진과 일기장인 '경천아일록'을 볼 수 있다. 또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활약상 등 독립지사의 사진과 유물들도 볼 수 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해달라며 그의 손녀가 1994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중앙묘역 관리소장에게 보낸 청원서 사본과 사진첩도 전시됐다.

 

▲지난 4월 말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있었던 고려인역사박물관 개관식 모습. [자료 제공=고려인마을]
▲지난 4월 말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있었던 고려인역사박물관 개관식 모습. [자료 제공=고려인마을]

 

이들 자료 모두가 <고려아리랑>을 작사한 김병학 시인의 수집품들이다. 그가 25년 동안 현지에서 수집한 자료는 2만점가량이다. 하지만 현재 일반에 공개된 자료는 고작 100여점이다. 이들 자료 모두를 전시할 공간이 없어서다. 따라서 고려인마을과 광주 광산구청, 그리고 고려인 단체 대표들은 지난 연초 '고려인 역사박물관건립추진위'를 구성했다. 그러나 아직은 난항이다. 예산 마련이 쉽지 않아서다.

김 시인이 들여온 고려인 유물들은 지난 2017년 9월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처음 공개됐다. ‘1만 5,000km 점, 선, 면 유랑의 역사’라는 타이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된 이 특별전은 고려인 역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전시관을 둘러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험난했던 디아스포라 역사를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990년대 초반 한글학교 교사를 자원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난 뒤 25년 동안 현지에 머물며 고려인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돌아온 김병학 시인이 광주의 한 행사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유적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최희영
▲1990년대 초반 한글학교 교사를 자원해 카자흐스탄으로 떠난 뒤 25년 동안 현지에 머물며 고려인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돌아온 김병학 시인이 광주의 한 행사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유적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최희영

 

이후 2018년 2월에는 100여점의 사진만을 선별해 ‘나는 코레예츠 4세’라는 타이틀로 일반에게 다시 공개됐다. 전남일보 창사 30주년 기념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이 특별전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은 기록과 수집의 중요성, 고려인들의 수난사를 동시에 느끼며 지금껏 자료를 모으고 한국까지 들여온 김병학 시인을 격려했다.

“정말 중요한 자료들입니다. 고려인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았으며 어떤 문화적 유산을 남겼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행사 때 많은 사람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유물들 때문에라도 한국에 들어온 중앙아시아 노동자들을 잘해줘야 하겠다고요. 우리 고려인들이 많이 힘들어할 때 중앙아시아 국민이 그들을 품어주었어요. 그런데 이 유물들을 소장하고 전시할 박물관 하나를 마련하지 못해 김병학 선생은 물론 우리 고려인마을 사람들 모두가 몹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두 차례의 특별전을 누구보다 반겼던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당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50년 유랑의 역사조차 여전히 유랑 중이라며 고려인역사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김 시인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 다음은 지난해 5월 김 시인과 나눈 대화 일부다.

 

고려인역사박물관 추진 상황은 어떤가?

여러 곳을 타진해왔다. 인천의 이민사박물관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 지자체들과도 논의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재는 광주 고려인마을의 일부 공간을 활용해 사진 50점 정도를 전시하며 고려인역사박물관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노력 중이니 제대로 되지 않겠는가, 기대하는 중이다.

 

자료는 어떻게 보관 중인가?

사실 그 점이 가장 걱정이다. 수장고 마련이 시급하다. 자료를 잘 보관해야 기록을 남긴 분들에게 죄송하지 않은 건데 창고에 그냥 쌓아놓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희귀본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잘 보관해야 그 가치가 오래 남을 수 있는데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개인적인 보관 방법으로는 한계가 많다.

 

고려인마을을 품은 광주시가 적극 나서면 좋지 않겠는가?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와 박용수 동행위원장 등이 많이 노력 중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청년 시절을 보낸 광주에 박물관이 건립되면 가장 좋겠다. 카자흐스탄에 처음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한국의 지명 중 서울과 광주를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서울은 올림픽 때문에 유명했고 광주는 5.18 때문에 익숙했다. 특히 구소련 유학 시절 망명해 카자흐스탄에서 활동 중이던 북한 출신의 한진 선생이 1986년 광주의 아픔을 그린 <폭발>이란 작품을 고려극장 무대에 올려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중앙아시아에 한글학교를 처음 세운 곳도 광주다. 그런 점에서 고려인역사박물관이 광주에 건립되길 바라는 마음 나 역시 크다.

 

▲2017년 9월 고려인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을 맞아 일반에 처음 전시된 고려인 역사 유물들을 임시로 옮겨 놓은 전남 담양의 달뫼미술관 모습. ⓒ최희영
▲2017년 9월 고려인중앙아시아 정주 80주년을 맞아 일반에 처음 전시된 고려인 역사 유물들을 임시로 옮겨 놓은 전남 담양의 달뫼미술관 모습. ⓒ최희영

 

이와 관련 지난 4월 광주광역시청 전시장에서 만난 김삼호 광산구청장은 “사업비를 마련해 금년 중으로 설계에 들어가고 내년에는 고려인마을에 상설전시관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또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역시 “고려인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독립 정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 깊은 전시관이 마련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반색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반갑다. 차제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줄을 이으면 더욱 뜻 깊겠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늘 시민들의 ‘동행’을 기다린다. 이 공동체의 대표 전화번호는 062-961-1925번이다. 이들의 155년 디아스포라를 멈추도록 해야 한다. 독자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참고로, 광주 고려인마을은 2000년대 초반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인 신조야 대표가 만든 공동체 마을이다. 광산구 월곡동에 둥지를 튼 이 마을에는 현재 4,000명가량의 고려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천영 목사와 박용수 동행위원장, 김윤세 한국능력개발원 이사장, 김명군 금호주택 사장 등 광주 지역의 많은 인사들이 이 마을의 발전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중앙아시아 국가 유력 인사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어 한국 다문화 사회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평가 받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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