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적대국가 규정, 외교적 마찰과 전면전에 초당적 국민적 단합 필수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정령(시행령) 개정안을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처리했다. 이날 각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담당 장관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서한 뒤 공포 절차를 거쳐 21일 후 시행될 예정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일본 정부의 이날 결정에 맞서 한국 정부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을 검토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실상 양국의 전면전이 펼쳐지는 상황이 됐다. 특히 백색국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일본 기업이 수출할 때 일본 정부가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나라로,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 외에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 총 27개국이 지정돼 있었다. 2004년 지정된 한국은 이 리스트에서 배제되는 첫 국가로 기록됐으며, 이번 일본정부의 결정은 한국을 우방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신뢰할 수 없는 사실상의 적대국가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큰 외교적 마찰과 사실상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 끔찍했던 식민통치 시절 연상케 해

이번 결정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하루 앞두고 한-일 외교 수장이 1일 타이 방콕에서 만났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돌아선 데서 예견됐다. 일본을 방문 중인 국회 의원단은 집권 자민당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면담하려 했으나 끝내 무례하게 거절당한 것도 사실상 이같은 상황을 예상케했다.

그동안 일본이 과거 주변국에 대해 보여온 침략과 수탈은 악랄하고 잔혹하기 그지 없었다. 구한말 한국을 강점했던 일본제국주의는 사회·경제적 수탈의 극대화와 함께 한국민족을 지구 위에서 소멸시키려는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 등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이같은 잔혹하고 가혹한 식민국가의 역사와 문화 말살정책이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간접지배이든 직접지배이든 간에 사회·경제적 수탈을 기본목적으로 했기에 피지배민족의 민족보존은 당연한 것으로 인정했고, 정치적 독립운동이 아닌 한 방관적 정책을 취했다. 반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을 말살, 소멸시켜서 일본제국내의 공식·비공식적으로 차별받는 종속 천민신분층으로 만들 것을 목적으로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했다. 지구상에서 역사적으로 나타난 제국주의 식민지정책 중에서도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정책은 가장 폭압적이고 무단적이었으며 악랄한 것이었다. 거의 악마적 수준으로 천인공노할 만행과 끔찍한 탄압이 펼쳐졌기에 35년은 암흑기 그 자체였다.

그들의 식민통치는 잔인했다. 일제의 한민족 말살정책은 첫째,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강화, 둘째, 인력에 대한 강제 수탈, 셋째, 경제에 대한 수탈로 나타났다. 민족문화 말살정책은 가혹했다. 일제는 19319·18만주침략 이후부터 조선주둔 일본군을 2개사단에서 5개사단으로 증가시켜 탄압무력을 강화한 다음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한국민족말살정책을 적극적으로 강화했다. 이들은 한국어 교육과 한국어 사용을 엄금하고 일본어 사용만을 강제했으며, 심지어 철모르는 국민학교 학생들이 부지불식간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매질을 하고 벌칙을 적용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1940년과 1941년 모든 한국어 신문과 잡지를 폐간시켰고, 한국인의 성명을 말살하고 일본식 이름을 짓도록 하는 창씨개명1937년부터 본격적으로 강행했다.

인력의 강제수탈도 끔찍할 정도였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도발후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징용제도·징병제도·근로보국대제도·근로동원제도·여자정신대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의 인력을 강제수탈했다. 이들은 한국인들을 공사에 강제 투입한 뒤 공사가 끝난 후 징용당한 한국인 노무자들을 집단학살하기도 했다.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女子挺身隊勤務令)을 제정, 공포해 12세부터 20세까지의 한국인 처녀 수십만명을 강제 징집하여 일본과 한국내의 군수공장에서 사역시키고, 중국과 남양지방의 전선에 군대위안부로 내모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자행했다. 1931년 만주침략 이후 대륙침략정책에 맞춰 한국을 병참기지화한다면서 일본의 독점자본을 동원하여 북한일대에 군수공장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광산자원 약탈을 강행하는 등 경제 수탈도 참혹한 수준이었다. 특히 이들은 조세수탈만으로는 전비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자, 1939년부터 총동원물자사용수용령을 공포해 양곡, 송진기름, 놋그릇, 숟가락을 비롯한 모든 물자를 약탈하는 공출제(供出制)를 시행했다. 한국인들은 일제의 약탈정책으로 인해 광복의 날을 기약하며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삶을 근근히 지탱했다.

 

무수한 침략범죄, 패전 후 외교권 회복한 뒤 주변국에 억지 공세

일본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대해 무수한 침략과 전쟁, 갈등을 반복하면서 역사적 악연을 맺어 왔다. 조선조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켜 전 국토를 불태우고 수탈하는 무수한 만행과 참상을 저질렀고, 구한말 군사력으로 침략해 35년간 식민지 강점통치를 했던 가해자의 역사를 걸어왔다. 한국을 침략하고 온갖 비인도적 만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도리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국제법으로 합리화하는 등 두 얼굴을 가진 나라였지만, 한국은 이웃나라라는 점에서 가능한 양국간 상호협력에 기반한 선린우호정책을 펴왔다.

세계제패의 야욕을 꿈꾸던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후 패전국이 되면서 패망했고, 이후 주권 상실에 따라 외교 자주권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미·일 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외교권을 회복하고, 각국과의 배상·보상조약을 거쳐 외교관계를 새롭게 정비했다. 이 과정에서 정착한 일본의 외교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축으로 하여 서방 각 국가들과 긴밀히 제휴하는 반공주의, 경제중심주의 외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1957년 유엔 중심주의,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협조, 아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입장 견지라는 외교 3원칙을 발표했고, 이후 주변국과 갈등을 빚으며 일본 외교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수립됐다. 일본은 강대국인 미국에는 한없이 약하며 양보를 거듭하는 반면, 주변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압박과 갈등 국면을 통해 일본의 국력과 외교력을 과시함으로써 국익을 끌어올리는 패턴을 보여왔다. 일본은 상대를 압박해 자신들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는 강력한 협상 문화 탓에 국제사회에서 매우 힘든 협상 상대로 분류된다.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19년, 과거 침략국이었던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온 국민과 정치권, 경제계가 힘을 합쳐 맞서는 한편 치밀하고 강력한 외교전략으로 군사력으로 무장하려는 일본을 반성과 참회의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19년, 과거 침략국이었던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온 국민과 정치권, 경제계가 힘을 합쳐 맞서는 한편 치밀하고 강력한 외교전략으로 군사력으로 무장하려는 일본을 반성과 참회의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강력한 압박-탄압, 온 국민 초당적 단합해 극복해야

일본의 외교정책은 강대국인 미국과는 달리 주변국을 압박하는 거칠고 독선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일본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러시아 등 주변국과 영토 문제 및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과는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 등을 왜곡하며 사안마다 갈등을 빚고 있다. 과거 1995년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와 일제 종군위안부의 존재 및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1993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아베는 두 번째 총리가 된 이후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사를 부정하며 한국 때리기를 통해 반한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은 그 부정적 효과가 경제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 등 모든 분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끌고갈뿐 아니라 동북아와 지구촌의 안정까지 해치면서 벌이는 도발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해 굴복시키려는 일본의 시도는 양국관계를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끌고갈 것이고, 두 나라의 경제 전면전과 자칫 외교 및 국지전까지도 초래할 중대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이같은 외교적 갈등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도발과 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일본이 스스로 과거사 왜곡과 함께 최근의 터무니없는 경제보복 공세에 대한 반성과 성찰, 즉 피해국가와 국제사회에 대한 석고대죄에 나서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일본이 스스로 보여준 국제사회에 대한 침략과 도발을 스스로 참회하고, 다른 국가와 지구촌의 외교문법을 존중하지 않는 한 일본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갈등과 대립 상황은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진정 참회하고 반성하는 일본이 될 때 일본 역시 국제사회에서 동반국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결정에 따라 우리 정부도 대응 조치를 취하고, 침략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이 한국에 보복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한국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단결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외교측면에서는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 함께 일본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에 맞게 공조와 협력의 정치를 펼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등 강온전략을 병행한 치밀하고 정교한 외교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국제규범에 부합하는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일본을 설득하는 행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회의 초당적이고 협력적인 외교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에 따라 분열하는 것은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결국 외교전에 패배하는 최악의 패착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는 한편 양심적인 시민사회와 학계 등 일본 시민들과의 교류협력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갈수록 도발적이며 극우화하는 일본과 맞서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 경제계와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단합해 단호하지만 신중하고 지혜로운 초당적 협력과 실력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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