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복을 방불케 하는 똑같은 파자마를 입고서 우리는 안방 창틀에 매달려 밖을 내다 보았다. 밖에는 술래잡기를 하거나 전쟁놀이를 하면서 맘껏 뛰노는 동네 아이들이 있었다. 나가서 같이 놀고 싶었지만 뒷대문은 늘 잠겨 있었다.

ⓒ김홍성

 

아버지의 병원은 날마다 번창했다. 낮에는 물론 밤에도 급한 환자들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의 수입이 늘어 상차림이 풍성해지긴 했지만 환자들과 그들의 병실을 마주 보며 사는 일상은 불안했다.

병원은 급한 환자들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이다. 엑스레이를 찍느라고 갑자기 돌리는 발전기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으며,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울부짖기 예사였고 가끔 아버지의 고함 소리도 들려오곤 했다.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환자들은 온 식구들의 잠을 깨웠다. 조산원의 도움으로 출산하다가 출혈이 심해서 달려온 산모들과 급성맹장염 환자들, 그리고 술 취해서 격투를 벌이다가 칼에 찔려 피 흘리며 들이닥친 사내들과 경찰들, 음독한 미군 위안부와 그녀의 동료 위안부들...... 

 

그 속에서 우리 어린 형제들은 그런대로 잘 자랐지만 동네 아이들처럼 밤에도 밖에 나가 뛰놀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우리 넷을 마루 끝에 조르르 앉혀 놓고 한 명 씩 세수 시키고 발을 씻겼다. 당신 손수 재봉틀에 앉아 만든 파자마를 입혀서 방에 몰아 넣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뒷대문을 잠갔다. 

 

죄수복을 방불케 하는 똑같은 파자마를 입고서 우리는 안방 창틀에 매달려 밖을 내다 보았다. 밖에는 술래잡기를 하거나 전쟁놀이를 하면서 맘껏 뛰노는 동네 아이들이 있었다. 나가서 같이 놀고 싶었지만 뒷대문은 늘 잠겨 있었다. 기것해야 진찰실에 나가 보는 정도였는데 환자가 들이 닥치면 다시 안방으로 쫓겨 와서 우리끼리 놀았다. 그 때 아우는 1학년이었고 여동생 둘은 아직 학교에 다니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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