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혈통 번식제도 협의회
‘경주마 자급확대 중장기 기본계획’ 정부 승인 거쳐 본격 추진

경주마 생산 선진국 연수·전문 인력 양성 병행
농림수산부, 혈통·번식 등록제도 협의 거쳐 시행

목장사업의 역사가 60년이 넘었지만 본격적인 경주마 생산사업은 1991년 4월 ‘경주마 자급확대 중장기 기본계획’을 당시 마사회 감독부처인 농림수산부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으면서 시작됐다.

단계별 추진계획

중장기계획은 외국에서 수입된 마필을 이용한 경마시행 체계에서 벗어나 국산마에 의한 ‘국적있는 경마’와 ‘안정적인 경마’를 시행하는 한편 외국산 마필 수입으로 인한 외화낭비를 막고, 양축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을 개발한다는 취지로 수립됐다. 추진목표는 2003년까지 경주마 자급교체율을 75% 달성하고 국제공인 수준의 서러브레드의 질적 개량과 함께 경주마 자급교체율을 75% 달성하고 국제공인 수준의 서러브레드의 질적 개량과 함께 경주마 자급기반의 조기정착을 위해 정부와 마사회가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마필생산은 민간이 담당하되 마사회는 생산농가에 기술지원과 우수씨수말 교배 위주로 지원하며 생산마 육성체계의 정립과 마필 혈통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추진방향이었다.
2003년 연간 교체되는 경주마의 75%인 597두를 국산경주마로 충당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주마 자급확대 중장기 기본계획은 몇차례 수정을 거쳐 1992~2003년까지 12년간 진행됐다. 이는 총소요자금의 84%인 803억 원을 투입, 제주에 330만5800㎡(100만 평) 규모의 육성목장을 저성하는 등 경주마 자급을 위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당초 10개년계획이었지만 1997년 10월 당시 소관부서인 문화체육부의 정책의지를 반영해 수정작업을 했고, 2003년 11월에는 부산경남경마장 개장지연(2003→2005년)으로 당초 계획(1991~2005년)보다 추진기간을 1년 연장해 추진목표인 국내산마 자급충당률 75%를 2006년에 달성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추진기간 중에 1993년 개인마주제 전환, 1995년 제주육성목장 개장, 1998년 국산마 경마시행 및 자유거래 도입과 한국혈통서 국제공인, 2002년 국산마 자급률 75% 달성(서울경마장 기준) 등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이후 2004년 제주육성목장 민간개방, 2007년 장수경주마목장 개장 등 인프라의 구축으로 후속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국산마 자급을 위해 12년이란 긴 시간을 계획기간으로 책정한 것은 마필의 생산·육성·경주활용 등 경제적 사이클이 다른 가축보다 상당히 길고 양적인 확대와 안정적인 유통체계의 확립 못지 않게 우수혈통의 개량과 정립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마사회는 경주성적이 우수한 국제공인 순수 서러브레드을 씨수말로 한다는 방침하에 민간의 부담을 줄이고 생산량 조절과 혈통개량을 위해 외국산 우수마를 구입해 연차별로 교체키로 했다. 특히 씨수말의 경우 초기인 1단계(1992~ 1996)에 도입가 두단 1억 원 수준에서, 확대생산기인 2단계(1997~2002)에는 두당 3억 원, 3단계(2003년이후)에서는 5억 원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생산마의 육성 초기단계에서는 마사회가 전담하되 이후 민간 육성 위주로 전환한다는 계획 하에 제주지역은 6~17개월령 마필을 대상으로 초기단계 육성을 전담하고, 내륙지역은 18개월령 이상 마필을 대상으로 후기육성(재갈, 장안순치 및 기승순치)을 전담토록 했다.
이밖에 기술의 조기정착을 위해 말생산 선진국 현지 연수 및 외국전문가 초빙을 통해 자체 전문인력 양성과 민간목장 기술이전에 힘쓰고, 마필 혈통관리를 정립해 1996년부터 국산마의 국제경마대회 출전과 교류를 추진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 추진했다.

마필등록 실시

마사회는 종래 경주마 위주로 실시해온 마필등록의 미비점을 총체적으로 개선, 보완하고자 1991년 2월 ‘마필등록 체계 정립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기본계획의 골격은 1991년 4월 농림수산부로부터 승인된 ‘중장기 경주용마필 생산계획’에 반영됐고, 같은해 5월 농수산부 주관으로 개최된 ‘경주마 혈통 및 번식등록제도 시행을 위한 협의회’에서 개량마의 등록을 본회가 전담한다는 정부의 기본방침에 대해 유관기관이 동의해 세부계획이 수립됐다.
마필등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마필의 체계적인 혈통관리를 통한 유전적 형질개량이다. 효율적인 마정수행과 관련정보를 생산자·마주·고객 등에게 우수마 선택자료를 제공하고 마필 혈통서(Styd Book)의 국제공인 및 교류도 주 목적 중 하나였다.
등록대상은 경마와 직결되는 개량마(서러브레드)에 한정하고, 마필의 활용단계별로 등록 기능을 분화했다. 종전에 경주마명 위주에서 경주마명·혈통·번식등록 등 세분화한 것이다. 즉 등록절차를 생산자마(출생 및 개체식별→혈통등록), 경주마(혈통등록→경주마명등록), 번식마(혈통등록→번식등록)로 단계별로 적용해 종합한 정보를 유지관리하고 마필관계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이와 함께 제도의 시행을 위해 등록전담기관으로서의 본회 지정을 정부에 건의하고 마필등록규정의 제정을 정부에 의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1단계 세부계획을 추진했다. 혈통 및 번식등록제도 신설에 따라 경마시행규정 중 고나련조항의 수정이 필요했으나 1993년 시행 예정인 개인마주제 전환과 연계해 종합검토 후 조정키로 하고, 우선 동 규정의 개정없이도 개선이 가능한 경주마등록부문을 대폭 보완키로 했다. 1992년 초부터 기존 종마의 가계추적조사 및 비순수 서러브레드 계통의 조기도테를 유도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경부마 혈통등록은 1993년 7월 31일 완료돼 혈통등록증명서를 마주 339명에게 교부하게 됐다. 본회 등록과에서 1년여에 걸쳐 말등록 정보에 관한 종합전산망을 구축, 등록제반 절차를 수행한 결실이었다.
또한 혈통등록된 1262두로의 기본 마적사항을 수록한 ‘혈통등록 및 마명등록 경주마 자료집’을 경마관계자에게 배포했다. 이 책자에는 경주마의 등록번호, 마명, 품종, 생년월일, 가계, 마주, 조교사 등을 자세히 수록했으며 향후 번식마와 생산자마까지 포함된 ‘등록마 명부’로 확대키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1993년부터 혈액형 검정기술의 공식도입, 혈통서 창간 및 국제교환 공인, 국제경마기관회의 및 혈통관리위원회 가입, 국산마의 국제간 경마교류 등을 주요 추진과제로 삼았다.
등록의 정확성과 공신력 확보를 위해 등록신청자(생산자, 마주)와 등록기관(마사회) 간의 역할분담 등을 명확히 구분하고 마필의 경제적인 위치·용도·출생국 등에 따라 등록업무의 수속처리 방식을 분화하되 업무상 혼란방지와 능률화 도모를 위해 최대한 표준화, 단순화 했다.
또한 종합적인 등록업무는 등록전담부서에서 관장토록하고, 등록대상마필에 대한 현장 확인 및 1차 심사 기능은 생산자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종마목장에 부여했다. 이와 함께 1993년부터는 개체 식별의 정밀도를 높이고 공신력 확보를 위한 혈액형 검정기술의 도입 및 운영방안을 정립키로 했다.
한편 1998년 한국혈통서의 국제공인 획득으로 국내산마의 혈통이 공식 인정됨으로써 국내산마 생산 및 경마시행의 논리적 토대를 확보했고 국내산마의 국제진출 및 등록정보의 국제적 신뢰성 유지를 위해 ‘국제혈통서 공인요건’ 준수 노력이 필요하게 됐다.

계좌투표 실시

1993년 5월 15일부터 새로운 베팅방식 계좌투표(Accounting Betting)가 시행됐다. 계좌투표는 장외발매소 확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인발매방식에 의한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마권구입방식이 현금투표에서 계좌투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였고, 첨단 전자통신기술을 이용해 마권발매와 환급에 따른 고객의 불편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계좌토표는 전화투표의 전단계로 경마팬들에게 계좌개설과 계좌내 자동이체방식을 익숙하게 함을 목적으로 시행됐으며, 본장 5층 및 직영 장외 3곳에 설치된 무인발매기(SAM)와 탁상용발매기(Tiny-Tim)에 의해 발매됐다.
향후 경마장이나 지점에 가지 않고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전화투표·PC투표 등을 이용하려면 시행체에 일정한 계좌를 개설해 놓은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시행전 단계로 계좌투표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계좌투표란 고객이 마사회에 계좌를 개설해 마권을 구입하면 구매금액이 고객계좌에서 자동인출되고 적중시에는 환급금이 계좌에 자동입금되는 마권구매방식이다.
마사회는 계좌투표를 도입하기 위해 수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2년에는 시행을 위한 관계규정 정비, 발매기 기종선정, 시행국 견학, 세부운영계획 수립 등 여건을 조성했고 1993년 3~4월 시험운영 후 5월부터 본격 가동했다.
시행 첫해에는 고객의 새로운 제도에 대한 인식부족, 현금구매 선호의식과 전산기기(발매기) 이용기피 등으로 일일계좌 실적이 하루평균 300명 이내로 저조했다. 특히 실명발급만 가능한 영구계좌에 대한 기피는 더욱 심해 하루 평균 10건 미만이었다.
그러나 계좌투표 활성화를 위해 발매기를 추가 도입하고 본장 전층에 확산 배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94년 상반기엔 일일계좌 이용자가 2000여 명에 이르는 등 이용률이 증가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고객의 호응도 점차 증가해 5년 뒤인 1998년에는 271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체 매출의 1% 가까이 점유하는 주요 투표수단으로 자리잡아 장차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베팅을 할 수 있도록 한 원격지투표(재택투표)의 초석이 됐다.

>> 다음호에 계속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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