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엘의 이승룡 대표는 갤러리 올댓홀스슈가 마주와 조교사, 기수들의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레이싱미디어
20년간 150만개 편자 수집 열정…‘더지엘(The GL)’ 이승룡 대표
말 상품 선물 제작 통해 문화 정착·말 테마 박물관 조성 목표
오는 7월 15일 창립 25주년 맞아…갤러리 올댓홀스슈는 사랑방 역할 기대

승마산업은 승마장과 관련한 다양한 업종, 부대시설 및 용품, 전문 인력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본지 말산업저널은 국내 승마용품 전문점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업계 동향과 시장성, 문제점 등을 시리즈 기획으로 다루고자 한다. 지난 첫 번째 기획에서는 국내 최고(最古) 승마용품점 ‘골든호스’를 다뤘으며, 이번 호에서는 편자 수집과 말 관련 상품 제작 등으로 유명한 더지엘(The GL, 구 지엘무역) 편을 준비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나는…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라고 ‘가지 않은 길’에서 말한다.

말산업계에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 있다. 고난의 길이었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길이다. 심지어 ‘미쳤다’고도 했다. 멀쩡한 전자제품 제조업체로 동남아 등에 수출하며 사업을 키워가던 무역업체 사장이 인도의 한 부띠그 샵에서 우연히 마주한 편자에 ‘꽂혀’ 편자 150만 개를 수집했다. 본업 대신 본격적으로 말 관련 상품 수집에 나선지 25년째. 편자뿐 아니라 말 관련 사료, 골동품, 안장 등도 3만여 점이나 된다.

가깝게는 경주마 ‘지금이순간’이 은퇴식을 할 때 입었던 잭킹부터 지난해 전국 국토종주를 한 팀들의 편자, 88년 서울올림픽 때 승마 국가대표팀의 태극기가 그려진 잭킹, 이신영(현 서울 조교사)·박태종 등 당대 기수들의 기수복, 영화 챔프와 각설탕에서 사용된 소품, 뚝섬경마장에서 사용됐던 발주기까지…….

그 주인공은 더지엘(The GL)의 이승룡(55) 대표다. 이승룡 대표는 “생계를 목적으로 했다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직 승마용품이나 관련 시장이 미약해 단일 비즈니스로 사업을 시작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승마용품·장구 업계에는 ‘디자인’조차 없다. 사실 이승룡 대표는 편자나 상품 수집 외에도 편자를 이용한 액자, 각종 액세서리, 벽걸이, 벨트, 카우보이 모자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장인으로도 유명하다. 이태리에서 고급 가죽을 수입해 직접 디자인을 고안,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만들지만 아직 말 관련 상품 시장은 조성조차 돼 있지 않다.

“사실 승마용품이나 상품 판매보다는 말 테마 박물관을 조성하는 일이 제 최종 목표입니다. 국내에서 말을 매개로 한 문화가 정착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도 많이 겪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집하고 디자인을 하다 보니 저만의 특별한 영역이 생겼다고 할까요. 매출 문제를 떠나서 그간 해온 일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확신을 갖습니다.”

말산업 전담 육성 기관인 KRA한국마사회와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부터 말 문화 조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그간 명맥을 이어온 승마용품이나 장구 업계에 대한 지원책은 빠져 있다. 게다가 그간 승마 및 용품 관련 업계에는 ‘꾼’들과 ‘한탕치기’식 업체들이 많았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만 번지르르 하고 수완 좋고 말 그대로 비지니스만 하고 눈먼 돈 타 먹을 기회나 엿보다 제 몫만 챙겨 달아나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이 바닥의 관행이었다.

그러니 정작 제 한 길 가고 제 우물 파는 사람들, 업계도 피해가 많았다. 실제 전문가들 또는 장인들은 기획이나 수완을 부리지 못해 도태된 경우도 많다. 이승룡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고자 심사를 할 때 정확한 선별 절차, 심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게 돌아갈 지원이 조직과 돈이 있는 ‘꾼’들에게 가서는 말산업 발전이 요원하다는 것. 밑바닥부터 정열을 바쳐 사업을 일궈내고 전 재산을 바쳐 온 전문가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문화가 시급하다. 진정성을 가지고 뿌리가 있는 사람들을 찾는 ‘옥석 가리기’가 필요할 때다.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 그 논리는 단순하지만 돈에 좌우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말 관련 상품 선물하는 ‘문화’ 조성도 필요
상품이 소비되어야 업계도 활발해지고, 관련 문화도 정착되기 마련이다. 진정성과 예술혼이 담긴 상품보다 로비와 대량 구매로 업계를 뒤흔드는 곳이 여럿 있었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 하는 모습을 봤다. 이승룡 대표는 직접 손으로 모든 기념품과 물품을 제작하고, 실용신안 등록을 할 정도로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장인이다. 이 대표는 “이 시장은 돈 있는 사람이 해도 한계가 있는 시장”이라고도 했다.

그 한계는 바로 ‘이름’을 걸고 직접 정성들여 수제하는 고집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이승룡 대표는 말 관련 상품을 제작하는 건 ‘생산’ 개념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대량 생산을 하는 곳에서 싸게 주문을 해도 질이 떨어지니 선물하는 측에서는 한번 쓰고는 다시 그를 찾는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소문을 타고 개인 마니아들이 이승룡 대표의 상품을 찾는 일이 늘고 있다.

이승룡 대표에게 최근 반가운 일이 생겼다. 이 대표는 승마 뿐 아니라 마라톤, 스킨스쿠버 등 운동 마니아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추신수 선수의 후원자들이 올해 시즌 개막식에서 추 선수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면서 이 대표가 만든 편자 액자를 선물하게 된 것. 이승룡 대표는 “추신수 선수는 대한민국의 애국자”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더 지엘의 홈그라운드이자 갤러리, 모임 장소인 ‘올댓홀스슈’에서 추신수 선수 후원 모임이 이뤄지며 맞은 겹경사다.

편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행운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승룡 대표는 “편자 액자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히나 반갑고 좋은 선물”이라고 했다. 특히 마주들이 경주에서 우승한 후 편자를 가져오면 말 이름과 프로필을 적어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는데 그만한 보람이 없다. 미스터파크의 경우 3번이나 그렇게 작업했다. 자신의 신발, 편자를 통해 행운이 깃드니 또 우승을 하게 되는 셈이다.

초창기에는 KRA한국마사회 직원들조차 편자가 행운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이 적었다. 이승룡 대표가 발품을 팔며 편자를 수집할 때 그 의미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기에,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편자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

“밥도 안 되고 돈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 일을 좋아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계속 하게 됐습니다. 행운을 가져다주고 액운을 막아준다는 편자 때문인지 매출이 반 이상 줄고 돈을 못 벌어도 지금은 참 행복합니다. 물건을 팔아도 기분이 좋고, 사가는 분들도 기분이 좋습니다. 10년이 두 번 반 지나니까 이 일이 저에게 필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고비를 어느 정도 넘기니 이 일을 완성하는 건 제 책임이자 의무라고 여겨집니다.”

■ 갤러리 올댓홀스슈서 모임…향후 테마 박물관을 발전시킬 터
오는 7월 15일은 더 지엘이 탄생한 지 만 25년째다. 홈페이지도 체계적으로 개편하고, 상호도 지엘무역에서 더 지엘(The GL)로 변경했다. GL은 Green Life의 약자. CI도 새로 만들었다.

“그간 주변 사람들이 왜 이 좋은 일, 좋은 장소, 그간의 업적을 알리지 않느냐고 조언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전투적으로 나서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갤러리를 기수들의 팬 미팅 장소로 개방하는 등 바람직한 문화 정착에 일조하기 위해 할 일이 더 많다는 걸 깨달은 거죠.”

서울경마공원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갤러리 올댓홀스슈(All That Horseshoe)에는 다양한 동아리, 친목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승마인들도 많이 찾아 서로 인맥을 쌓고 교제를 나눈다. 이승룡 대표가 승마에 입문 시킨 사람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유독 경마와 관련된 기수, 조교사, 마주들은 찾지 않는다.

이승룡 대표는 “기수는 우리 경마산업계에 있어 위대한 스포츠 스타”라고 했다. 스포츠 스타인 기수들이 카페에서 모임을 하는 것보다 가까운 이곳 올댓홀스슈를 찾아 음악과 삶을 나누고 파티도 하며 교제하면 좋겠다는 것. 이 대표는 기수와 조교사들, 마주들을 더 빛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모임을 위해 “무료로 개방할 테니 언제든 찾아 주시라”고도 했다. 모임을 통해 문화가 조성되면 경마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도 호의적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그 진정성 하나로 이 일을 하겠다는 것. 말산업계의 사랑방 역할이 톡톡히 기대된다.

이승룡 대표는 직접 그린 그림과 디자인한 편자 액자, 그간 수집한 물품들을 테마 박물관에 전시해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차 한잔하며 관람하고 아이들은 승마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 바로 지금의 갤러리 올댓홀스슈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운영한 뒤에 본격적으로 테마 박물관으로 꾸미고자 하는 것. 편자로 건물을 세울 계획이다. 뚝섬경마장의 발주기는 기능과 생산연도 등을 적어 테마 박물관의 출입구로 활용할 예정이다. 말의 입장에서 체험 교육을 하려는 것.

또 순회 전시회도 준비 중이며 영화 챔프나 각설탕 등에서 사용한 소품들을 활용해 각 방마다 테마가 있는 ‘챔프방’, ‘지금이순간방’ 등으로 만들고자 구상 중에 있다. 수만 점에 달하는 소품들을 세계 기네스에 등록할 예정이다. 지자체나 단체가 할 수 없는 일을 한 개인이 오랜 시간 진정성 하나로 이뤄낸 국내 말산업계의 또 하나의 역작이자 역사가 될 것이다.

“미스터파크부터 지금이순간까지, 그리고 영화에서 사용한 소품이나 기수들의 물품까지… 모두가 이들의 흔적과 체취가 뭍은 귀중한 사료라고 봅니다. 뚝섬경마장에서 사용하다 폐기된 발주기를 직접 가져오기까지 했습니다. 편자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지만 전체가 모이면 또 다른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이 사료들은 절대 버려서는 안 될, 우리 말 문화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더지엘(대표: 이승룡)
갤러리 가는 길: 과천시 대공원로 26호, T: 3679-5144
홈페이지: www.horseshoe.co.kr

첨언 – 본지 말산업저널에서는 올해 예정된 2014 말산업박람회를 앞두고 승마용품 업계의 동향 파악 및 현장의 문제, 시장성 등에 대한 취재를 시리즈 기획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심 있고 홍보가 필요한 업체는 편집국으로 문의바랍니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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