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는 1월, 제18회 말산업대상(大賞) 총 16개 부문 수상자·마를 발표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합양상을 보였던 최우수 수(거)말 부문에는 ‘볼드킹즈’가 영광을 차지했다. 2015년 당시 3세마였던 ‘볼드킹즈’는 7전 7승의 100% 승률을 기록했음은 물론, 별들의 전쟁 그랑프리(GⅠ) 트로피까지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외국인 조교사 최초로 그랑프리 트로피를 손에 넣은 울즐리 조교사를 만나 ‘볼드킹즈’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자 말


“볼드킹즈, 울즐리”

말산업대상 최우수 수(거)말의 자리를 두고 ‘볼드킹즈’를 향한 팬들의 투표는 뜨거웠다. 연도대표마 ‘트리플나인’과 동률의 득표수를 보이는가 하면, 경마블로거 “사랑과꿈”이 진행한 연도대표마 투표에서는 66.7%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마팬들이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워낙 열심히 뛰는 말이고, 좋은 말이기도 하니까. 제가 경마팬이라도 관심을 가져볼 가치가 있는 말이라 자부해요.” 울즐리 조교사는 ‘볼드킹즈’에 대한 기대치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팬들의 지지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말산업대상은 물론 한국마사회가 선정한 2015 연도대표마에는 ‘볼드킹즈’ 대신 ‘트리플나인’의 이름이 올랐다. 이에 대해 아쉬움이나 서운함은 없을까. “외산마들이 뛸 수 있는 경마대회는 매우 한정적입니다.” 울즐리 조교사는 ‘볼드킹즈’가 그간 뛰었던 경주들을 되짚으며 이야기했다. “100% 우승이긴 하지만 ‘볼드킹즈’가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그랑프리가 전부에요. 여러 경마대회에서 기량을 발휘해준 ‘트리플나인’이 연도대표마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볼드킹즈’가 자신의 전력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은 바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부터였다. 특히 한국 경마 역사상 3세마가 100%의 기록으로 그랑프리를 제패한 경우는 1990년 ‘가속도’외에는 ‘볼드킹즈’가 유일하다. 3세마 신분으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새강자’, ‘보헤미안버틀러’, ‘미스터파크’ 등은 모두 데뷔전에서 우승을 놓친 공통점이 있어 ‘볼드킹즈’의 승률 100%, 그랑프리 우승은 더욱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사실 우승할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했어요.” 그랑프리에 앞서 울즐리 조교사는 몇 번이고 편성을 살피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전개상 중간에 분명 기회는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고의 대회인 만큼 상대가 너무나 강해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상대는 강했지만 ‘볼드킹즈’ 역시 강했다. 강력한 라이벌들의 전개 운이 따르지 않는 틈을 타 ‘볼드킹즈’는 여유로운 선입전개 후 결승주로 구간에 들어섰다. 예상치 못한 ‘금포스카이’와의 경합에 잠시 지는 듯 보였으나 특유의 근성으로 결국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울즐리 조교사는 외국인 최초로 그랑프리의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울즐리 최고의 영광을 안겨준 ‘볼드킹즈’는 일반 경주마들과 비교해 다소 늦은 3세에 데뷔했다. “제가 2014년에 ‘볼드킹즈’를 처음 맡았는데 당시만 해도 막 성장하는 2세마 시절이었어요.” 울즐리 조교사 앞에 나타난 당시의 ‘볼드킹즈’는 체형도 좋고 잠재력도 충분했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망아지에 불과했다. “그대로 실전에 내보냈다가는 말에게도 무리가 갈 것이라 생각해 임용근 마주님께 양해를 구했어요. 데뷔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확실하게 전력을 다져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마주님께서 흔쾌히 시간을 주셨고 그 시간동안 출발부터 시작해 전반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울즐리 조교사의 계획은 딱 맞아들었다. “스테미너 부분이 다른말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평가합니다. 더불어 승부의지도 하늘을 찔러요.” 이는 그랑프리와, 그랑프리 직전에 치렀던 1등급 2200M 일반경주에서 잘 드러난다. 막판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경합 속에서 질듯 말듯 하면서도 끝까지 한 발의 걸음을 더 써주는 모습이 많은 경마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매번 출전할 때마다 3세마에게는 너무 센 레이스가 아닐까 걱정을 하고, 마주님께도 그렇게 전하곤 했어요. 그런데 그 강한 상대들을 결국엔 이겨버리니 저조차도 놀랄 때가 많아요.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말 스스로가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소위 조교사의 덕목 중 하나는 능력마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다. 보유한 경주마 한 마리를 1등급까지 승급시키는 것조차 진땀을 뺄 일인데, 7연승의 능력마를 만난 기분은 오죽할까. 하지만 울즐리 조교사의 답변은 다르다. “오히려 경주에 나설 때마다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에요. 연승을 계속 이어간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언젠가 ‘볼드킹즈’에게도 지는 날이 올 거거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할 거예요.”

그랑프리 이후 ‘볼드킹즈’는 곧바로 휴양을 가지 않고, 30조 마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상태회복에 임했다. 약 한 달가량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컨디션 회복에만 주력했으며, 그 후로부터 약 6주에 걸쳐 서서히 훈련 강도를 올리며 걸음을 살렸다고. 여전히 컨디션은 최상으로, 3월 중 복귀전을 노리고 있다. “7월 3일에 열리는 1800M 부산광역시장배를 노리고 있어요. 계속해서 얘기하는 부분이지만 현재 한국 경마 실정에서 외산마가, 그것도 수말이 나갈 수 있는 대회는 그리 많지 않아요. 차라리 암말은 퀸즈투어를 노려보면 되는데 말이죠.” 내내 긍정적이었던 울즐리 조교사가 처음으로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높아진 레이팅 탓에 일반경주에서 짊어져야할 높은 부담중량이 고스란히 장애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 경주마들의 능력치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어요. 특히 1등급은 대부분이 능력마이기에 훨씬 어려운 경주들이 될 거에요.”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지만 씨수말로서의 ‘볼드킹즈’에 대한 질문에도 울즐리 조교사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혈통도 좋고 마체도 나쁜 편이 아니지만 대형 씨수말들과는 외형상으로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호성적이 유지된다면 충분히 씨수말로서의 선전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은 마체가 큰 타입이 아니라 거세시킬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무리 준비해도 경주에 나설 때면 480kg이 겨우 넘는 정도거든요.”



“조교사 울즐리”

울즐리 조교사의 특징은 매년 1~3월, 즉 연초마다 승수 몰아치기를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도 벌써 2개월하고도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무려 17승을 쌓아올렸다. 하지만 이에 비해 중후반부의 성적은 생각만큼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마필 운영 사이클 때문이에요.” 울즐리 조교사도 자신의 승수 패턴을 파악하고 있었다. 30조의 특징은 2세마의 데뷔가 매우 늦다는 점이다. “2세마가 입사하고 나서 빠르게 실전에 투입시키기 위해 훈련을 하다보면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제가 데리고 있는 말들이 어느 정도 잘 영글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30조에 2세마가 입사하면 아주 낮은 강도의 훈련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천천히 완성도를 높여나가게 된다. 이렇게 전력을 다진 경주마들은 2세 12월이나 아예 3세 1,2,3월에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남들보다 오랜 기간 준비해온 비밀병기들은은 울즐리 조교사의 승수 쌓기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성장해간다. 하지만 7,8월이 되다보면 기존의 마필 중 각종 질환 및 노화로 경주가 불가능한 경주마가 반 정도 나간다. 출전두수에서도 반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울즐리 조교사의 01월 출전횟수는 31회였으나 7월의 출전횟수는 단 10회에 불과했다.

울즐리 조교사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김영관 조교사다. 매년 압도적인 승수로 정상을 달리고 있는 김영관 조교사.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인 이가 바로 울즐리 조교사다. 관계자들은 현재 김영관 조교사의 독주에 견제구를 던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항마로 울즐리 조교사를 꼽는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십니다. 19조 마방이 얼마나 매사에 열심히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마방 역시 최선을 다해 경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분명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저는 외국인인데다, 보유하고 있는 마필두수나 기타 부분에서 김영관 조교사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해 승수로는 김영관 조교사를 넘어서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도전해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경마대회가 아닐까 합니다. 경마대회는 각 마방을 대표하는 소수정예의 전력으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울즐리 조교사는 경마대회를 노려볼 다수의 기대주를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주마가 바로 ‘디퍼런트디멘션’이다. 데뷔전부터 시작해 거침없이 5연승을 기록하며 기대치를 입증한 ‘디퍼런트디멘션’은 강자들과의 대결을 통해 꾸준히 전력을 다지는 중이다. ‘디퍼런트디멘션’과 함께 나란히 GC 트로피 경주에서 선전을 펼친 ‘마천볼트’ 역시 최근 1등급 경주에서 2연승을 기록한 검증된 재원이다. 암말 중에서는 지난해 경상남도지사배(GⅢ)에서 준우승에 성공한 ‘미즈마고’를 빼놓을 수 없겠다. 5세임에도 꾸준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어 올해 암말대회에서 주목해볼 경주마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울즐리 조교사가 꿈꾸는 경마대회는 모든 경마관계자들의 로망, 더비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리안더비(GⅠ)는 삼관경주의 두 번째 관문으로 지정돼있으며, 울즐리 조교사는 2013, 2014년 출사표를 던져 모두 순위권 안착에 성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올해 울즐리 조교사가 삼관경주에 함께 출사표를 던질 경주마는 ‘반지의제왕’이 될 예정이다. ‘반지의제왕’은 2세마 당시 Breeders`Cup(GⅢ)에 출전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던 전력이 있다. 이후 치른 두 번의 경주에서 모두 우승을 거둔 ‘반지의제왕’이 울즐리 조교사의 간절한 염원을 이뤄줄 수 있을지, 다가오는 KRA컵 마일(GⅡ)에서 그 진가를 확인해볼 수 있을 듯하다.

울즐리 조교사가 한국에 발을 디딘지도 어느덧 9년째가 되어간다. 낯선 땅에 발을 딛고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두 명의 외국인 조교사가 더 영입됐고, 철옹성 같았던 서울에서도 첫 외국인 조교사가 마방을 개업하려 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존의 한국경마와 너무나 달랐던 제 시스템 탓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죠. 특히 훈련 시스템의 경우 지금까지도 한국 조교사와는 판이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여기에 거부감을 느끼셨던 분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응원해주시는 마주님들과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마방 식구들 덕분이에요.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트레드밀은 울즐리 조교사가 도입한 대표적인 장비다. 그밖에도 다양한 선진 장구와 장비들을 가져와 정착시키며 울즐리 조교사는 나름의 방향으로 한국경마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을 경주해왔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방 개업 후 5개월 동안은 아예 승수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어요. 압박감이랄까요? 하지만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해왔어요. 어쨌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말 옆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쌓은 경험들을 믿고 도전하던 것들을 계속해서 시도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나가며 결국 지금까지 올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 경마는 계속해서 변화의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경마장 간 벽이 허물어지고 영천 경마장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계속해서 변화될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동안 울즐리 조교사는 두려움보다는 도리어 눈을 빛내며 흥미를 드러냈다. 연고도 없는 한국에 맨 처음 발을 딛는 순간부터 울즐리 조교사는 도전의 연속이었을 터다. 거듭된 시행착오를 이겨내며 지금까지 걸어온 울즐리 조교사에게 ‘볼드킹즈’라는 건각의 연이 닿은 것은 단순히 운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인다. 울즐리 조교사와 ‘볼드킹즈’가 함께 써나갈 새로운 기적들을 응원해본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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