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말산업대상 최우수 마주 부문에는 정영식 마주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팬투표 결과 정영식 마주는 최다 득표율과 득표수를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정영식 마주는 올 시즌 ‘록밴드’와 ‘일등항해사’로 대표되는 보유마들의 활약으로 총 수득상금 1,354,755,000원을 벌어들였다. 그는 경매 현장을 방문해 좋은 경주마를 고르는 것을 넘어서 교배 부문에도 끝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수년간의 혈통공부를 바탕으로 직접 해외에서 우수한 씨수말과 씨암말을 도입하여 최상의 배합을 찾아내는 수고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정영식 마주의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5년 연말, 정영식 마주는 2013년 연도대표마이자 효자마로 꼽혔던 ‘인디밴드’의 은퇴식 자리에서 불우이웃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고, 베푸는 과정에 마주가 나아가야할 참된 길이 있음을 증명한 정영식 마주. 최근 몇 년간 마주자격을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신규 마주 지원률이 감소하는 현 시점에서 “마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한국경마의 대표마주로 거듭난 정영식 마주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 말산업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한국경마의 정서상 마주가 이처럼 높은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팬 투표 결과가 제일 기쁘다. 말 그대로 한국경마에서 마주는 언론에도 잘 노출이 되지 않고, 가려져있는 부분이 많아 존재를 알리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신 것은, 우리말들이 좋은 성적을 내주어 언론매체에 자주 오르내린 덕분이라 생각한다. 마주로서 팬들의 기억에 남는 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주신 사랑을 다시 돌려드릴 수 있는 것이 내게 남겨진 숙제인 것 같다.

-최근 몇 년 간 마주로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주변의 부러움뿐만 아니라 견제도 치열했을 것 같은데?

내가 속한 부경은 마주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 가운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짐을 떨쳐내기 위해 고민도 많이 하고 스스로와의 대화도 많이 나누며 노력해왔다.



-2015년을 돌아보면 효자마 ‘록밴드’를 빼놓을 수 없겠다. 혈통 때문에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었는데?

전형제마가 ‘인디밴드’였기에 혈통적 기대치는 충분했고, 생긴 것만 보면 형보다 체구도 크고 잘생겨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과연 걸음도 생각만큼 만족스러웠고 성적도 기대에 부합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록밴드’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되나? 해외 시장에 대한 도전을 기대 해봐도 좋은가?

마주가 전적으로 결정할 부분은 아니기에 김영관 조교사와 상의하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레이팅이 있다보니 고부중을 피할 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말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말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마주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말의 상태가 충분히 괜찮은지가 최우선이 될 것이다.



-마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정영식 마주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마주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경매시장에서 좋은 말을 고르는 데 그치지 않고 씨수말과 씨암말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일인지?

내가 막 마주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생산시장에 많은 문제점이 산재해 있었다. 씨암말은 미국에서 도태 직전의 말들을 데려다 투입했고, 그 자마들 중에서 소위 말해 “얻어걸리면 좋다”는 주의가 팽배했다. 씨수말 역시 마사회에서 제공하는 좋은 씨수말에만 의지하고 있어 다양한 혈통의 배합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주들이 경주마를 구매하는 것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큰 결심을 하고 투자를 하는 것인데 “얻어걸리면 좋은” 말 밖에 선택기회가 없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다른 마주들처럼 좋은 말을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발로 뛰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직접 좋은 혈통의 암말을 도입해 한국 경마에 새로운 혈통을 소개하는 것도 좋은 도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생산자분들은 재정상태가 여유롭지 못했고, 농림부 정책에 의해 생산농가가 보호되고 있었기에 무리한 도전을 할 필요가 없던 상태였다. 크게 일을 벌릴 수는 없지만 소규모로 시험절차를 거치며 도전해보자고 생각해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

-이시돌목장의 ‘엑톤파크’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2006-7년 서울에서 유명한 암말 ‘서미트파티’가 있었는데 그 부마가 ‘엑톤파크’였다. ‘서미트파티’가 뛰는 모습을 보니 근성도 좋고 혈통상 ‘포티나이너’ 계열이 우리 모래주로에 딱 맞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 이시돌목장에서도 ‘엑톤파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적극 찬성을 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분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엑톤파크’가 들어온 후부터 내가 도입한 씨암말들은 모두 ‘엑톤파크’와의 배합을 염두에 두고 들여온 친구들이다.

-현재까지 들여온 씨암말은 어느 정도인가?

지금 15두 정도를 들여온 것 같다. 아직 데뷔하지 않은 말들도 있는데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2015 연도대표마인 ‘트리플나인’의 모마 ‘어리틀포크’와 ‘인디밴드’·‘록맨드’의 모마 ‘플리에’
모두 직접 데려온 씨암말이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어리틀포크’는 미국 목장을 직접 찾아 살펴보고 구입했다. 당시 서울에서 ‘어리틀포크’의 반형제마인 ‘밸류플레이’가 선전하고 있어 생산계에서는 ‘어리틀포크’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하지만 인기가 있는 만큼 금액도 상당했고 내가 과감히 투자를 하게 됐다.
‘플리에’는 경매에서 구입했다. ‘플리에’의 부마인 ‘딕시랜드밴드’는 그 당시 자마들이 한국에서 상위 랭킹을 휩쓸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씨수말이다. 씨수말로 활동하던 시절 워낙 그 혈통을 좋아해 직접 목장을 찾아가서 보았는데 말이 너무나 작고 볼품없이 생겨 충격을 받았다. 씨수말은 무조건 덩치가 좋고 잘생겨야 한다는 편견을 모두 깨주었던 순간이었다. 씨수말이 자마에게 물려주는 형질은 다양하지만 특히 ‘딕시랜드밴드’는 높은 정신력을 물려주고 있었다.
‘플리에’ 역시 그 점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어쩌면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경매에 임했다. 그런데 운좋게도, 당시 ‘플리에’는 제엽을 앓고 있었고, 또 마침 그해 미국의 경기가 급속도로 침체되면서 경매가 역시 폭락을 거듭하며 얼어붙어있던 상황이었다. 10만불에 상장됐던 ‘플리에’였지만 결국 팔리지 않았고 7만불에 나와 함께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구매한 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수학 문제에서 정답을 맞춘 기분과 비슷할까?

생명의 배합에서 정답은 없겠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확실하다. 내 선택에 대한 결과가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것, 내가 생각한 것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면 뿌듯하기도 하고.


-마주는 주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많은 말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렵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 혈통공부를 할 수 있었나?

성격상 하나에 빠지면 깊게 빠져드는 편이다. 처음에는 말에 확 빠져들어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심취했다. 거의 3,4년간은 본업이 뭔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 많이 알지 못한다. 어쩌다보니 결과가 좋아 좋게 봐주시는 것이지 다른 마주분들도 나만큼 많이 아신다. 생산자분들은 현장에서 훨씬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지식의 깊이도 상당하다.

-정영식 마주하면 늘 성공사례만 이야기되지만, 이면에 감춰진 실패도 있었을텐데?

당연하다. 첫해 마주 데뷔를 한 후로 1년은 겨우 2승을 거두며 마무리했고 그 다음해도 겨우겨우 3승을 거뒀다. 승률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게 어쩌면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승부욕을 자극했다고 해야할까.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은 내 평생동안 해온 일이고 앞으로도 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소위 말해 잘나가는 선배 마주들의 조언도 많이 받고 여기저기 묻기도 많이 물으며 내실을 다지고자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말을 자꾸 마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말 자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됐다. 내가 애정을 가졌던 말이 경주로에서 전력을 다해 경주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내가 직접 뛰고 있는 것처럼 희열이 느껴지더라. 그때부터 마주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기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당대불패’는 물론이고 ‘인디밴드’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경주마의 이름으로 기부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우선 기부 자체는 마주를 떠나서 기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해오던 일이었다. 기부 활성화는 우리나라 사회의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국민의 도움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사회공헌에 대한 책임은 꼭 져야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경주마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은 말에 대한 애정의 연장선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걸출한 명마가 경주로 위에서는 화려한 업적을 쌓았는데, 은퇴 후에는 그 이름이 흐릿해져버리고 나중에는 기억에서 지워져버린다는 사실인 너무나 안타까웠다. 고맙게도 내게 와줘서 큰 기쁨을 안겨주었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던 경주마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주마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보았는데 그게 또 반응이 너무 좋더라. 보람도 있고. 지금은 를 통해 기부하고 있지만 그 외적으로도 기부처를 물색해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어떤 좋은 말과 인연이 닿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분 좋은 기부는 계속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마카오에서도 마주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서의 마주 문화와 우리의 그것을 비교했을 때는 어떠한지?

한국과 마카오에서의 마주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마카오의 경우 말 그대로 경마를 즐기며 여유가 있다. 마주실과 같은 시스템도 잘 되어있고, 국민들에게 마주는 문화적으로 존경의 대상이다. 자연히 경마 역시 인식이 나쁘지 않고.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주들이 오랜 시간 사회 공헌 등의 존경받을만한 활동을 해왔기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결과일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행체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당대불패’는 잘 지내고 있나?

물론이다. 은퇴한지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군살이 하나도 없이 경주마 시절 체형을 그대로 갖고 있고, 힘이 넘쳐서 마구 뛰어다니곤 한다. 유병복 조교사는 웃는 소리로 은퇴를 괜히 시킨게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다. 이시돌목장의 리차드 목장장 역시 한국에서는 은퇴해버렸으니 외국에 나가서 데뷔하는게 어떻겠냐고 농담을 하더라. 물론 내가 지금 봐도 너무나 멋진 말이지만 여전히 은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물론 은퇴하지 않았더라도 일반경주에서는 충분히 능력을 보여줄 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경마대회를 주름잡던 명마가 일반경주에서 우승을 거두며 체면치레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것은 명마의 명예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솔직히 너무나 운 좋게도 마주로서 소망했던 것들은 다 이루었다. 제일 바랐던 것이 대통령배(GⅠ)와 그랑프리(GⅠ) 우승이었다. 대부분의 마주에게는 경마대회 우승이 꿈 아니겠나. 나는 감사히도 그 영광을 누려보았으니 이제는 좋은 말을 생산해내는 것에 주력할 생각이다. 씨암말은 매년 꾸준하게 1~2두씩 도입하고 있고 씨수말은 한국에서 활동하다 은퇴한 경주마를 생산환류에 성공시키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우리 한국 씨수말과 씨암말 사이에서 나온 자마가 해외 시장에 나가 우승해오는 것. 그것이 내 남은 꿈이다. 기왕 태극기를 달고 해외 대회에 나간다면, 꼭 우승을 거둬 지금도 피땀흘리며 노력하는 한국 경마 종사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다.

-앞으로도 말과는 계속 함께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평생 그럴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영식 마주가 갖고 있는 마주로서의 소신이 있다면?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우리 모두 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경마가 너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바로잡는 것. 인식 전환에 마주가 앞장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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