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천~1만7천년의 ‘라스코벽화’의 말 그림
말(馬)은 우리 인류의 오랜 친구로 우리들의 주변에서 긴 시간동안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늘 함께 해 왔다.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 시대부터 말의 가축화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오랜시간 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자동차가 이세상에 나오기전에는 중요한 교통의 수단으로, 전쟁에서는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원으로 쓰여졌던 말(馬). 교통수단과 전쟁의 중요 자원으로 활용도가 거의 없어진 현재지만 말들의 숫자는 줄어 들었는가? 그렇지 않다. 말의 본연의 기능은 상실되었으나 그 숫자는 그 어느때 많아지며 경마, 승마, 마술(馬術)경기를 통해 혹은 시를 읊는 시문,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조각, 또한 우리의 일상도구에서도 밀접하게 숨을 쉬고 있는 산업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적극 활용되며 하나의 예술(藝術)형식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본지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경마외적으로 예술과 문화적으로 적극 활용되며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는 말(馬)의 예술적 가치를 들여다 보며 말(馬)의 또 다른 이면을 조명코자 한다.
윤정훈 기자 waggu@krj.co.kr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예술품속의 말(馬)

인류의 역사 기록에 처음으로 말(馬)이 나타난 것은 약 1만5천 내지 1만7천년전의 벽화로 추정되고 있는 ‘라스코벽화’ 다. 프랑스의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의 몽티냐크 마을에 있는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1940년 호기심많은 소년들에 의해 발견 되었다.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이 라스코 벽화는 현존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로 예술사에서는 미술의 기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동굴안에는 말, 소, 염소, 사슴등 600여개의 동물 그림과 1500여개의 암각화(바위를 도구로 긁거나 파서 그린 그림)가 그려져있다. 선사시대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표현과 다양한 채색, 또한 울퉁불퉁한 벽면을 사용해 표현된 입체감으로 그 뛰어난 예술성은 현대미술에 비해 결코 부족함이 없다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 라스코벽화는 동물의 그림을 벽면에 그려 창을 던지며 사냥에서의 많은 수확을 바라는 다분히 주술적인 요소가 강했던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인류에게 최초로 다가온 말(馬)은 식(食=먹을거리)이 였음을 알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중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馬) 연구

한사람이 한가지 일도 특별히 잘하기도 어렵기에 한 우물을 파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는 예술가인 동시에 과학자,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가 그린 그림으로 남아있는 회화작품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을 포함한 17점에 불과 하지만 그는 유례없는 미술, 예술사에 남긴 발자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의 회화작품은 비록 적으나 그 작품을 위한 습작연구의 방대한 기록들과 다양하고 깊은 사물의 관찰에서 과학적, 철학적 사고까지 묻어나고 있어 더욱 그의 높은 예술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다룬 주된 작품 소재는 물론 인간 이였다. 인간에 대한 내면적인 깊은 사고와 탐구 외에도 해부학적인 면밀한 분석은 그의 습작에도 잘 나타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간외에 많은 공을 들여 연구에 몰두한 또 하나의 생명체가 바로 말(馬)이다. 그가 말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는 거대한 조각계획의 일환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치밀한 조각계획에 앞서 살아있는 말에 대한 해부학적인 연구를 통한 정확히 표현된 소묘들은 그의 예술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한 예가 되며, 그의 연구 개념에 대해서는 추후 기마상(騎馬像)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그림은 현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다 빈치의 미완성 대장 ‘동방박사 경배’를 위한 습작으로 제작된 것인데 세로 12cm, 가로 7.8cm 의 손바닥만한 작품이지만 몇해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810파운드(약 145억원)에 판매 되었다.


피카소의 회화에 표현된 말(馬)의 의미

뜨거운 정열을 폭발시키며 예술의 길을 걸어온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피카소의 생애는 20세기 예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시대의 그 어떤 예술가도 그만한 영향력을 지닌 적이 없으며 그만큼 많은 작품(피카소가 생전에 남긴 작품수는 약 5만점으로 알려지고 있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걸작으로 알져지고 있는 작품은 1937년에 그려진 ‘게르니카’다. 1937년 독일 공군이 스페인 북쪽 도시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했다. 그 폭격으로 당시 게르니카 인구 5000명중 1/3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고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다. 피카소는 자신의 모국에서 벌어진 이 일에 분노했고 가로 7.8m, 세로 3.5m인 이 커다란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는 “그림이란 집안을 장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라며 이 게르니카에 담긴 의미심장함을 전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괴로움에 울부짖는 말, 부러진 칼을 쥐고 있는 남성, 공포에 반응하는 여인, 힘없이 걷고 있는 여인 등 전쟁의 참혹함이 담겨져 있다. 이 그림의 중앙에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말(馬)은 ‘민중’(民衆)을 뜻하고 있다. 이렇듯 세기의 예술가 피카소도 말(馬)을 인간과 동일한 상징물로 표한할 만큼 친근하고 깊은 인연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작가들의 회화에 담긴 친근한 말(馬)

언젠가 한국마사회에서 전해 받은 달력에 실려진 웃는 말그림을 통해 자유로움과 행복함과 따스함을 느끼며 잠시나마 즐거움을 느껴 본적이 있다. 바로 평생 말을 그려온 화가 김전선의 그림이 바로 그거다. 화가 김점선은 말했다. “나는 말위에서 죽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나를 태운 채 말은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말과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내 자신인지 내가 말인지 ...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었다. 말을 그린다.” 그도 예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馬)과의 일체감을 표현한 것이다.
초현실 작가 이석주의 작품에도 늘 함께하는 소재는 말(馬)이다. 달리고픈 욕망을 간직한 맑고 순수한 말의 눈동자를 통해 관객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관객과의 말없는 소통을 말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했다고도 해석이 되어 지는데 그만큼 말과 인간의 내면적인 깊은 친밀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담긴 작품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화의 거장 김기창 화백은 자신의 작품 활동 후반기에 군마도(群馬圖)를 통해 말(馬)을 표현했다 . 당시 83세의 노인이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힘있는 역동감의 표현으로 청각 장애를 가진 자신의 욕망을 대신하는 대상으로 말(馬)을 소재로 선택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공포와 죽음으로도 해석된 말(馬)

늘 인간에게 친근함의 상징으로 보여 졌던 말(馬)을 공포와 죽음으로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2000년도 상영된 외화 ‘더 셀’(The Cell, 2000, 감독: 탈셈 싱, 주연: 제니퍼 로페즈)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영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공포의 재료로 다뤄지는 요소가 바로 `말(馬)`이다. 이 영화에서 말(馬)은 뇌사에 빠진 환자들의 꿈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해 `억압`과 `장애물`의 함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동양에서 말은 한자 `馬`로 표기, 발음상([ma]) 귀신/마귀를 의미하는 마(麻)와 같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A.H 크라프가 만들어 낸 `악몽`이란 단어 카루체마(Cauchemar)에서 유래되어 영어의 나이트메어(nightmare), 독일어의 마흐트(macht=말), 러시아어의 모라(mora=유령), 라틴어의 모스(mors=죽음)과 같은 어원들을 이루고 있다. 어원에서 살펴보았듯이 말(馬)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동물이지만 오랫동안 `상상 속의 가장 깊이 뿌리박혀 있는 공포의 대상`의 의미로서도 사용되어 왔다. 이는 여러 문화 예증들과 예술작품들이 증명해 준다. 포세이돈의 수마, 하데스의 검은 준마에서는 말은 망령을 이끄는 영물로 표현 되었다. 또한 고삐를 풀어 버리면 영영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말은 ‘슈베르트’의 수많은 가곡들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왕’에서도 초원의 한없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운명의 종말을 맞이하는 이미지로 그려졌다.


생활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말(馬)

말의 매끈하게 빠진 체형과 이상적인 비례는 예술품을 넘어 우리의 일상 생활도구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말 형태를 응용한 생활용품은 생동감 있고 럭셔리한 이미지가 강해 소비자들이 많이 선호하고 있다. 또한 세계 유명 자동차의 엠블럼에도 말(馬)이 표현되고 있어 브랜드의 고급이미지가 고취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렇듯 말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기쁨과 슬픔, 고통과 죽음까지도 표현되어지는 생명체로 긴 세월동안 인간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오며 스포츠, 예술, 문화, 생활도구에 이르기 까지 무수한 인연을 함께 해 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경마와 승마 외에는 일반인들에게 그저 우화적으로만 비춰지고 있는 말(馬). 그 말(馬)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해석이 뒤따라야 우리가 바라는 선진 마(馬)문화와 선진경마로 가는 길도 더욱 탄탄히 다져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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