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팅의 음식은 내 입맛에도 맞았다. 쌀밥과 녹두죽, (갓 비슷한 토종 푸성귀)과 감자를 함께 볶은 떨꺼리(반찬의 총칭)는 정성이 깃든 것이어서 그만하면 흡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집 여자들이 빚은 술(창과 락시)에 토속적인 향취가 진하게 배어있어 좋았다.

주막집 타파팅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청년들 가운데 서넛은 네팔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고향으로 주민등록을 내러 가는 길이었다. 앙 도로지의 고향 친구라는 중년 사내 나왕 초상 셰르파도 타파팅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와 같은 버스로 여러 가지 물건을 사오는 길이었는데, 물건 중에는 텔레비전 위성 안테나와 수력발전기의 부속품도 있었다.

전에는 트레킹 가이드 생활을 했으나,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그에게 총누리는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유난히 깍듯이 대했다. 카트만두에서 타고 왔던 버스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그는 내가 카트만두에 개업한 식당의 주방장인 앙 마야 셰르파의 동생이 교장으로 있는 히말라야 부디스트 스쿨 교사인데, 볼일이 있어 카트만두에 나올 때마다 우리 식당에 들러 앙 마야의 친정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그런데 그는 셰르파가 아니라 체뜨리였다. 인도·아리안 혈통의 눈 크고 코가 큰 체뜨리들은 네팔 사회의 지배 계급이어서 몽골리언 혈통의 셰르파, 특히 총누리 같은 산골 촌사람에게는 안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래서 그런지 총누리는 체뜨리가 나를 엉클이라 부르며 살갑게 구는 것을 마뜩치 않게 생각하고 은근히 차단했기에, 지리에 도착하여 버스 지붕에서 짐을 내리는 북새통에 인사도 못한 채 헤어졌다.

풍만한 가슴을 강조한 인도 여배우들 사진이 벽에 붙어있는 주막집 타파팅의 칸델라 불빛 아래서 빠쁘레 셰르파들의 술잔이 거듭거듭 비워지면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셰르파말로 대화하고 있었기에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대화를 이끄는 사람은 나왕 초상 셰르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연장자로서의 경험담, 무용담, 덕담 그리고 네팔 정치 현안에 관한 자신의 견해 등을 피력하는 것 같았는데, 젊은이들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간혹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셰르파들은 이방인인 나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주었다. 흔히 있을 법한 호기심 어린 질문도 삼가고 있었다. 다만 내 잔의 술이 비면, 더 마시라고 권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비운 술이 어느 정도 오를 무렵 나는 밖에 나가 잠시 찬바람을 쐬고 돌아왔다. 밖은 어느새 캄캄해져있었고 휑뎅그렁해진 거리에는 통행하는 차는 물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돌아오자 타파팅의 안주인은 기다렸다는 듯 도로변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었다.

2층에 마련된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부엌에 있는 나무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나무 침대 세 개가 있고, 그중 하나는 엉성한 솜이불과 베개들이 쌓여있는 침침한 방이었다. 변소는 부엌 뒷문 밖에 있기 때문에 밤중에 소변을 보려면 나무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사람들이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침대 맡을 지나서 소변보러 가는 길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이날 총누리는 다른 방에서 잤다. 방에 침대가 세 개나 있으니 같이 자자고 했으나, 총누리는 나에게 방해가 될 거라며 사양했다. 뒷날, 방 사정에 따라 같이 자면서 알았지만 총누리는 이를 심하게 갈았다. 그런데 총누리는 내가 코를 심하게 곤다고 했다. 이전에 나는 술에 취해서 자도 코를 골지 않았다. 쉰 살 이후부터 가끔 코를 곤다는 것은 알았지만, 옆 사람 수면을 방해할 정도로 심하게 코를 고는지는 몰랐다.

허름한 주막집에서 잘 때는 침낭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의 피를 빠는 벌레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몸과 침낭 입구에 산초를 바르는 일이다. 산초는 네팔의 유명한 허브 식물에서 추출한 물약의 상품명으로,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유리병에 담긴 제품이다. 이 약은 카트만두의 약국은 물론 솔루쿰부의 구멍가게에서도 간혹 구할 수 있으며 값도 싸다.

네팔 사람들에게 산초는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 두통이 있으면 머리에, 기침이 날 때는 목에, 배탈이 났을 때는 배에 바른다. 냄새는 자극적이지만 느낌은 신선하다. 벌레들은 이 산초 냄새를 아주 싫어한다. 이 약을 머리, , , ,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 온몸에 바르고 잤기에 순례 도중 벌레 때문에 애먹은 일은 거의 없었다. 순례 마지막 날, 너무 취해서 약 바르는 걸 잊어버려 대여섯 군데를 물리기는 했지만.<계속>

큰 짐들은 대부분 버스의 지붕에 올린다. 지리 마을 버스 종점에 도착한 버스의 지붕 위에서 짐을 내리는 광경이다. 총누리도 올라가서 내 배낭을 내려왔다. ⓒ김홍성   
네팔 제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에서 마오이스트 파티를 지지해 달라는 벽보.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한 타원형 속의 인물은 마오이스트 파티의 총수 프라찬다 씨. ⓒ김홍성
지리는 아주 큰 시장이다. 공산품은 들어오고 농산품은 실려 나간다. 트랙터는 밭을 갈기도 하지만 물류나 인원을 수송하는 교통 수단이기도 하다. ⓒ김홍성 
타파팅의 부엌 찬장. ⓒ김홍성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