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에세이
우리는 말(馬)을 인류의 오랜 친구라고 말하고 있으나 교통수단의 기능, 전쟁의 중요 자원으로의 기능을 상실한 현대에는 말(馬)을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말(馬)들의 개체수가 적어진 것이 아닌 말(馬)들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일상과는 다소 멀다는 데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말(馬)은 본연의 습성을 승화시켜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도구에서 또는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취시키며 우리의 일상으로 녹아들고 있다. 본지는 창간 13주년을 맞아 기자의 일상에서 비춰지는 말(馬)을 통해 우리 모두의 곁에서 문화적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었던 마(馬)문화를 들여다본다.
윤정훈 기자 waggu@krj.co.kr



윤정훈 기자
1999년 동국대학교 미술학부 졸업
2000년~2002년 한국 사이버박함회 사원재직
2003~2005년 HOW 프로덕션 PD(아리랑 TV `한국의 국립공원`, MBC `죄와벌` 등 다수 연출)
2006~2007년 (주)폰테 디자인사(社)과장 재직
2008년~ 경마문화신문 기자 재직중


이른 새벽, 몽롱한 정신에 거실의 불을 켠다. 암중에 켜진 밝은 불빛에 적응 되지 않아 게슴치레하게 뜬 가느다란 눈 사이로 들어오는 건 거실 한켠에 자리 잡은 다름 아닌 빙그레 웃고 있는 말(馬)이다. 몇해전 인사동 거리를 거닐며 한가로운 휴일을 즐기다 어느 조그마한 화랑에 웃고 있는 여러 점의 말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진 故 김점선 화백의 판화작품임을 알아본 나는 난생 처음으로 돈을 들여 해학적으로 묘사된 정겨운 말 작품 두 점을 끌어안았다. 그날 이후로 줄곧 나를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두 작품은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이렇듯 새벽 처음으로 말(馬)을 대면하며 하루를 시작한 나는 출근길 현관에서 또 한두의 말(馬)을 만난다. 바쁜 어제의 잔상인 흙과 모래먼지가 이리저리 묻어 허옇게 변한 구두를 닦으러 신발장 한쪽 서랍을 열어 제치자 동그랗고 차가운 구두약이 놓여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말(馬)표 구두약’.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년 생산된 국내 최초 구두약으로 연간 180억원까지 매출을 올리며 세계 1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는 ‘말(馬)표 구두약’ 이다. 구두솔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러고 보니 이 ‘말(馬)표 구두약’은 우리나라 어1967
느 가정이든 한 두개정도는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동물 이름은 바로 말(馬)!”일 것이란 생각에 김점선 화백의 웃는 말(馬)처럼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서서히 동이 트는 이른 아침 지하주차장에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말(馬) 한두를 만난다. 평상시 저 녀석을 볼 때면 어느 날은 참 볼품없네, 어느 날은 클래식한게 괜찮네, 주인장은 무슨 맘으로 저리도 오래 저 차를 지니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하던 ‘포니’(Pony) 자동차다. ‘포니’는 우리나라 근대화시대의 기념비적인 자동차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수입모델을 조립하던데 그쳤던 국내 초기 자동차 산업에 순수 제작된 국민자동차로서 꿈을 현실화 시킨 바로 그 자동차다. ‘포니’의 양산화가 시작된 1976년 이후 3년간 한국경제는 10퍼센트를 넘나드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하니 ‘포니’가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하겠다. ‘포니’란 조랑말과 일맥상통하는 말로 말(馬)과에 속하는 작
은 말을 총칭한다. 성격이 온순하고 면역력과 생존력이 강해 다양한 풍토에 적응을 잘해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1986년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제주마가 있다. 그러고 보니 ‘포니’ 자동차는 역사적 의미와 어원적 의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포니’를 국민차로 양산하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자동차사(社)로 성장해서 인가? 현대 자동차사(社)의 현재 가장 고급 브래드인 ‘에쿠스’(Equus)도 말(馬)을 지칭한다. 에쿠스는 말(馬)의 조상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라틴어로는 개선장군의 말(馬) 또는 멋진 마차를 의미한다. 시대적으로 해석한다면 결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사는 말(馬)로 시작해서 말(馬)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셈이 아닌가?

출근길 수없이 많은 자동차의 행렬 속 말(馬)을 찾아보았다. 국내 브랜드인 ‘에쿠스’, ‘갤로퍼’, ‘엑센트’는 지천에서 도로를 누비고 있었으며 해외 브랜드로는 말(馬)을 엠블럼으로 쓰고 있는 ‘포르쉐’, ‘페라리’, ‘머스탱’ 등의 고급 승용차도 자주 눈에 띄고 있다. 현대에는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말(馬)이지만 그를 대신한 머신호스(machine horse)는 아직도 우리 곁을 누비고 있었다.
아침부터 말(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니 내 눈은 온통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말(馬)을 찾기에 바빴다. 사무실 도착 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말(馬)은 동료 직원의 티셔츠에 새겨진 말(馬) 문양 이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즐겨 입는 옷도 말(馬) 문양이 새겨진 브랜드였고, 의도적으로 말(馬)을 상징하는 브랜드를 찾아 다녔던 기억과 함께 어릴적 TV에서 본 강한 인상을 남겼던 CF가 뇌리를 스쳤다. 로데오를 하는 첫 장면과 함께 갈기를 휘날리는 말(馬)머리 모양의 로고가 나오며 “아메리칸 패션 진~ 죠다쉬(Jordache)"라는 강렬한 나레이션. ‘죠다쉬’는 미국 브랜드로 국내 유명 패션사(社)에서 국내에 들여
왔다. 당시 ‘죠다쉬’ 청바지는 교복 자율화로 인해 폭발적 관심을 받으며 중,고등학생은 물론 20대 청년들이 가장 선호했던 청바지였다. ‘죠다쉬’ 청바지를 입고 소풍가서 당시 유행했던 말(馬)춤을 추었던 추억의 그 시절, 말(馬)을 입고 말(馬)을 표현하며 젊음을 즐겼던 것이다.
말(馬)을 상징하는 또는 말(馬)과 관련된 문양을 심볼로 삼은 브랜드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명품 브랜드가 많다. 이태리를 대표하는 패션 및 가죽제품 브랜드인 구찌(GUCCI)는 1921년 설립된 회사로 초기에는 말 관련용품(안장, 재갈 등)을 제작했으나 현재는 토탈 패션사(社)로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품질과 장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구찌’사(社)는 말 재갈을 두 개 맞물린 장식이 붙은 신발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또 하나의 명품 브랜드인 페레가모는 1990년대 말발굽 모양을 구두
장식으로 사용하면선 큰 인기를 얻은 이후 말발굽이 페레가모의 대표 심볼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에르메스’(Hermes)도 1837년 설립된 회사로 유럽귀족에게 납품하기 위한 마구(馬具)작업장으로 출발하여,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전통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제품들을 제작하고 있으며, 패션업계에서 높은 명성을 얻고있다. ‘에르메스’사(社)의 로고도 마차를 끄는 말을 표현해 말을 상징 하고 있다.
경주마를 타고 있는 기수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브랜드도 있다. 프랑스 가방패션 명품 브랜드인 롱샴(LONGCHAMP)이 그러하다. 파리 귀족여성들의 패션의 경연장이자 사교장 이였던 롱샴경마장은 파리의 모든 유행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장소다.
영국의 명품브랜드도 말(馬)을 피해갈수는 없다. 1856년 설립되어 약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버버리사(社)는 영국왕실 인증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는 등 영국의 얼굴 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브랜드가. 매력적인 노바체크와 창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말을 타고 있는 기마상 로고 등 고풍스런 이미지가 물씬 풍기고 있어 세계 명품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외 독일의 유명 팬 브랜드인 ‘파버카스텔’(FABER-CASTEEL), 아태리의 ‘에트로’(ETRO), 미국의 ‘폴로랄프로렌’(Polo-Ralph Lauren)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말(馬)과 관련된 문양을 심볼로 삼고 있다. 이렇듯 세계 굴지의 패션사(社)들이 말을 선호했던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그건 말의 체형이 보여주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완벽한 조형성과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오며 변함없이 사랑을 받아오며 다져진 인연이 브랜드의 고급이미지를 더욱 고취시키고 있음일 것이다.
하루가 마무리가 되어갈 즈음 시작이 되는 프로야구 이야기로 동료들과 잠시 담소를 나눈다. 매해 최다관중을 돌파하며 국내 제 1의 프로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다. 헌데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용 심지어 사람인 거인, 쌍둥이, 영웅까지 마스코트로 내세운 8개 구단 중 현재 말(馬)을 마스코트로 삼는 구단이 없다는 게 유감이다. 프로야구 원년(1982년) 삼미 수퍼스타즈가 1985년 청보 핀토스로 구단명을 바꾸며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말(馬)을 마스코트로 삼는 구단이 탄생했다. 핀토스(Pintos)는 조랑말의 또 다른 명칭이다. 말(馬)을 마스코트로 삼았던 구단답게 당시 투수 교체시 마차를 타고 선수가 등장했던 이색적인 장면이 아직까지도 회자가 되고 있다. 청보 핀토스구단은 태평양 돌핀스로 구단명이 바뀌며 또다시 말(馬)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 태평양 돌핀스구단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구단명이 다시 바뀌며 말(馬)이 마스코트로 재등장했다. 유니콘은 말의 체구에 이마에 한 개의 뿔이 나 있는 유럽 중세의 전설적인 동물이다. 이 현대 유니콘스는 2008년 타사에 임대조건으로 인수되며 구단 명칭과 마스코트가 모두 바뀌게 되며 말(馬)을 마스코트로 삼았던 구단은 또다시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 국내 프로축구는 1983년 출범해 29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현재의 성남일화 구단이 천마(天馬)를 마스코트로 사용하며 있으며 팀 창단이후 총 7회의 우승을 차지해 프로축구 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거머쥐며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야구에 비해 선수들의 스피드가 경주결과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축구에서 말(馬)을 마스코트로 내세운 구단이 국내 프로축구 사상 최다우승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겠으나 말(馬)이 지닌 질주본능과의 묘한 인연이 깃들어 있음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특유의 해학과 감성으로 ‘조선펑크’의 정체성을 확립해온 홍대 인디밴드의 선구자인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라는 국민애창곡이 퇴근길 차안의 라디오에서 들려온다.
“살다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모두들의 잘못인가 난 모두를 알고 있지 닥쳐!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받나 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가지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해 바보놈이 될순 없어 말달리자 말달리자 말달리자 말달리자 말달리자”
노래가사의 ‘말’은 어떤이는 말(言)로, 또 어떤이는 말(馬)로, 또 다른 이는 막 달리자의 음악적 표현이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절규하듯 역동적인 이 노래는 분명 말(馬)달리자로 해석되야 함이 옳을 것이다. 루치아노 파파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더불어 빅 쓰리 테너로 불리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숱한 역경을 이겨내며 유례없는 기록인 130개가 훌쩍 넘는 오페라 배역을 소화해낸 플라도시 도밍고의 좌우명은 “쉬면 녹슨다”라고 한다. 근대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빨리빨리 만을 외쳐온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쉬면 녹슨다”라는 각오로 말(馬)이 우리 일상에서 늘 달리고 있듯 땀 흘리며 뜨겁게 살고싶다. 말(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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