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루우라라
발문
얼마 전 문세영 기수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저녁 스포츠뉴스에 근황이 보도되는 기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늦었지만 후배 중에서는 국민적 성원을 받는 대스타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 작은 발판이 된다면 영광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의 사례와 같이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는 스타마와 스타기수가 탄생한다면 경마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이미 우리에게는 스타가 될 자원들이 있고 이제 우리가 그것을 발굴하고 홍보하면 되는 것이다.

경마의 본질은 ‘질주’다
필자는 축구를 즐겨 보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챙겨보는 축구 경기는 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들은 축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은 챙겨볼 것이라고 믿는다. 바로 월드컵과 한일전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월드컵이 열리는 저녁이면 자연스레 회식자리가 형성이 되었고 스코어 또는 승무패 내기는 필수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도박’이라는 인식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응원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걸었던 내기였을 뿐이고 내기돈은 다 같이 모여 응원을 하기 위한 일종의 ‘관전장 임대료’이니 잃었다고 해서 크게 마음 상하지도 않는 것이다.
경마의 본질은 가장 빠른 말을 가리는 데 있다. 유렵에서 전쟁에 대비해 왕이나 귀족들이 많은 군마들을 육성하던 시절, 가장 빠르고 우수한 군마를 가리기 위해 경주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구경꾼들이 몰리게 되었고 구경꾼들은 재미를 더하기 위해 내기를 걸기 시작했던 것이 경마의 시초가 된 것이다.
지금은 구경꾼들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법적 제도를 만들어 규율을 만들고 시행체의 관할 하에 경주를 관람하게끔 만들어져 있을 뿐이고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마팬들이 아직도 경마를 도박으로 인식하게 되는 이유는 살아있는 생명과의 호흡을 중요시 하는 스포츠인지라 ‘의외성’과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많아서 배당이 높게 형성되는 특징을 지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배당 때문에 소위 ‘한탕’의 꿈에 젖게 되는 것이 스포츠를 도박으로 변질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의 문화로서의 경마의 본질까지 침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스타가 필요해
40여 년 전만 해도 일본 역시 경마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지만 관계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레저스포츠로 탈바꿈했다. 이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선데이사일런스’라는 좋은 명마를 도입한 경마산업의 선각자가 있었다는 것과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렸던 스타의 창출, 게다가 젊은 스타들을 경마 캠페인의 캐릭터로 기용한 미디어믹스 홍보전략 등이다. 또한 마문화를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경마박물관, 플라자에쿠스, AERU 종합레저 휴양시설, 샤다이 그룹의 노던호스파크 등 말 전문 테마시설을 만들어 경마문화가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잡아가도록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경마팬의 인식 변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역시 스타의 존재이다. 미디어믹스 홍보 전략과 더불어 탄생된 스타마필과 스타 기수는 다양한 연령층과 특히 여성들을 경마와 친숙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면서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 할 수 있었다.

인식의 전환, 꼴찌마도 스타마가 될 수 있다!
‘화창한 봄날’이라는 뜻의 ‘하루우라라’는 뛰었다하면 꼴찌만 하는 꼴찌 전문 경주마로 유명하다. 발목이 가늘고 몸집도 작고 폐활량은 부족한데다 성격도 예민해서 경주마로서의 단점은 모두 갖춘 ‘하루우라라’는 1998년 데뷔전 꼴찌 이래 이후 7년간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이 대기록이 ‘하루우라라’붐을 일으켰다. 계속된 꼴찌의 질주에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하루우라라’를 응원하기 시작했고 꼴찌할 것을 알면서도 돈을 걸었다. 그 당시 ‘하루우라라’의 단승식 마권은 해교위협과 교통사고 방지의 부적과 같은 존재였다. ‘하루우라라’가 출전하지 않으면 경마장에 손님이 없을 정도여서 흥행보장 카드로서 매번 출전시켜야 했고 경마장 입구에서는 이 말의 캐릭터 인형이나 열쇠고리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결국 ‘하루우라라’는 113연패라는 대기록을 남기고 은퇴했고 은퇴 경주는 일본 최고의 기수인 다케 유카타와 함께 했다. 지금은 일본의 명마 ‘딥임팩트’와 교배해 일본 최고의 1등마와 꼴찌마의 재미있는 조합을 만들어 냈다. 꼴찌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과 애정이 낳은 결과다.
국내 최다연패 말은 ‘당나루’로 95전 0승 승률 0%였고 현재 경주를 치르고 있는 최다연패 말은 ‘차밍걸’(3조 최영주 조교사)이다. 성적부진 때문에 폐사될 수도 있었지만 마주와 조교사는 경주로에 들어서면 죽기 살기로 달리며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차밍걸’을 포기하지 않고 출주시키고 있다. 지더라도 꾀부리지 않고 결승선까지 성실히 달리는 ‘차밍걸’의 모습은 스포츠의 정신이 뭔지를 느끼게 해준다. 지난 16일(토)까지 올해만 벌써 10회 출전을 했고 총 전적 82전 승률 0%, 올해로 7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최선을 다해 질주하고 있는 그녀가 한국의 ‘하루우라라’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우리 시대의 스타마필이 경마를 스포츠로 이끌 수 있다
1989년까지 만해도 일본에서의 경마는 도박으로 인식되어 왔고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오구리캡’이라는 회색 말 한 마리가 경마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댄싱캡’과 ‘실버샤크’ 사이에서 태어난 ‘오구리캡’은 통산 전적 32전 22승 2위 6회로, 일본 지방 경마장인 가사마쓰에서 경주에 데뷔해 데뷔전에 2위 이후 2연승에 이어 다시 8연승을 내달렸다. 혈통도 좋지 않고 다리가 휘어져 경주마로서는 악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근성 하나로 상대마들을 제압하며 연승가도를 달리는 이 마필에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더 큰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성화에 힘입어 중앙으로 진출한 ‘오구리캡’은 중앙경마장에서도 특유의 근성을 발휘하면서 20전 12승의 기록을 달성한다. 불굴의 투지만 있으면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오구리캡’이라는 말 앞에 바쳐진 엄청난 열광과 숭배행위를 두고 사람들은 ‘오구리캡’교라 부르며 종교현상에 비견했다. ‘오구리캡’이 은퇴경기로 삼았던 1990년 아리마기넨(일본의 그랑프리, G1)경주는 ‘오구리캡’을 보기 위한 관중만 18만 명이었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우리 시대의 명마 ‘미스터파크’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 경마 신기록인 17연승을 기록하던 중 18연승에 도전하던 경주에서 ‘인대파열’로 안락사 했다. 이 17연승의 기록은 세계적으로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기록임에도 경마산업이 약한 우리나라에서의 기록이라 우리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이 기록이 일본에서 나왔다면 세계 경마계가 연일 들썩였을 일인 것이다. (세계 최다연승 마필은 56연승을 기록한 푸에르토리코의 ‘카마레로’이지만 정식으로 인정된 혈통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올해 3세가 된 ‘스마티문학’이다. 명문가의 혈통이지만 네 다리의 구절이 모두 꼿꼿하게 서있어서 운동기질환에 약할 수 있는 체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려는 투지와 근성이 좋아서 마방에서 출전주기를 조절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경주로를 달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미 탁월한 경주력 덕분에 한계 부담중량에 육박하고 있기에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가장 걱정이 되는 마필이기도 하다.
한 마리의 명마가 경마 전반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을 수 있음을 일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시행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스터파크’의 사례를 볼 때 경마팬들의 인식은 이미 제고되고 있다. 명마의 죽음에 수많은 팬들이 질책과 아쉬움을 이야기했고 과연 시행체가 어떤 후속 대책을 내놓을지 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명마에 대한 보호대책이 시급함을 알고 있다. 과연 ‘스마티문학’이 한국의 ‘오구리캡’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열쇠는 시행체가 쥐고 있다.

박태종에 이어 문세영, 다음 기수는 꼭 스포츠뉴스에서 보자!
일본 최고의 기수 다케 유타카에 대한 열광도 ‘다케 유타카’교라는 이름을 붙일만하다. 1987년 3월 18세에 데뷔해 매우 촉망받는 기수의 길에 들어선 다케 유타카는 그 해 11월에 키쿠카쇼(G1)와 이듬해 4월 오카쇼(G1)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다양한 기록을 깨면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잘 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들의 높은 인기를 모아 경마 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를 보기 위해 경마장 대기석과 난간에는 경마에 대해 잘 알 것 같지 않은 여성들이 몰려들었고 이 여성 팬들의 참여가 경마를 도박이 아닌 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마가 대중과 친숙하게 된 계기는 미디어 홍보 전략이었다. JRA(일본중앙경마회)는 굴지의 톱스타를 캐릭터로 기용해 경마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기무라 타쿠야를 비롯하여 나카이 마사히로, 오다 유지 등 일본의 대표 스타들이 대부분 JRA의 모델이었다. 지난 2004년에는 한류스타 윤손하가 JRA 홍보대사 겸 전속모델로 활동한 바 있다. 이처럼 젊은 스타들을 기용해 경마와 친숙한 이미지를 제고해 나가면서 젊은 세대들이 경마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했던 것이 주효하면서 일본은 2007년 매출하락세였던 것을 이 홍보 전략으로 매출 10조원 상승으로 연결시킨 바 있다.
얼마 전 문세영 기수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저녁 스포츠뉴스에 근황이 보도되는 기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늦었지만 후배 중에서는 국민적 성원을 받는 대스타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 작은 발판이 된다면 영광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7년 프리기수제 시행과 더불어 김효섭, 문세영, 오경환, 함완식 등이 국내 매니지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해 방송 및 자선행사, 음반 제작 등 기수의 스포츠 스타화에 나선 바 있지만 경마에 대한 국민적 인식 부족으로 기획 단계에 그치고 말았다. 기록 갱신에 들어서 있는 박태종 기수와 문세영 기수의 이름은 이미 일본의 다케 유타카를 넘어설 수 있다. 경마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는 이유로 홍보 전략마저 세우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고 새롭게 부상할 잠룡들마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주저앉을까 저어된다. 이제 우리도 경마 스타 창출을 위한 다양한 매니지먼트와 미디어믹스의 활용으로 경마스타를 탄생시켜야 할 것이다.

경마팬은 도박중독자가 아니다
11월이 되면 일본 동경 경마장 입구 보도 가에는 텐트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이른바 ‘더비 텐트족’으로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유행하고 있다. 일본의 국제적인 빅레이스 재팬컵이 열릴 때면 경마장 앞에는 2~3일전부터 특석 입장권을 사기위해 줄을 선다는 것. 이들은 경마꾼이 아닌 평범한 일본 국민들이다. 20여 년간 포기하지 않고 물량공세와 치밀한 교섭으로 재팬컵을 세계적인 대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쏟아 부었던 일본은 결국 그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총상금(약 72억 원)으로 두바이월드컵과 상금 1~2위를 다투는데 우승마에는 무려 2억5천만 엔(약 33억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재팬컵을 보기 위해 일본 동경 경마장에 운집하는 관중 수만도 10만 명으로 일본의 경마 전문가들은 “재팬컵 탄생으로 일본 경마가 도박을 넘어 어엿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마 문화가 부러움의 대상인 이유다. 최고의 경주를 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것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춰놓고 유로2012를 보는 축구팬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경마의 팬층이 두터워지면서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조합의 경마팬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경마대회가 있거나 유명한 마필이 출전하는 경마일 에는 과천의 인원은 대폭 증가한다. 매주 과천에 나들이를 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는 명마들의 최선질주를 보고 싶어 하는 경마팬들의 욕구와 직접 관련되는 것이어서 경마관계자의 일원으로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 팬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심지어 젊은 여성들끼리 무리를 지어 나들이를 오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고 외국인 관람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의 경마가 이제는 관전과 응원의 스포츠 문화로 거듭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마장의 관람대 수준은 세계적이라고 한다. 경주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조망되어 있는데다 경주로와 관람객의 간격도 화단 하나 차이 정도로 좁아서 경주마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 수준은 어떨까?
경마일 과천경마장에서는 청원경찰 알바생들과 경마팬들 사이에서의 실랑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이 상황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직원들의 태도이다. 무엇이 불편한 것인지 물어보려하지도 않고 일단 고압적인 자세로 제압하려하는 것이 첫 번째 태도이고, 그 상대가 나이가 많은 노인이든 여성이든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간혹 행패를 부리는 경마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고객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고객 중에 소위 ‘진상 고객’이 있을 뿐이지 모든 고객이 진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주마 수준은 혈통적 측면에서는 세계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있다. 그만큼 좋은 씨수말들이 성과를 내고 있고 그에 부합할 수 있는 씨암말들의 도입과 환류도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아직 문제는 있다. 서울과 부경의 경질주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는 경주들이 많아질수록 경마는 스포츠에 가까워질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좋은 마필들이 안전하게 최선의 승부를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아이 옹알이처럼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만 하지 말고 이제는 실천해야할 때다. 사감위의 그릇된 통제도, 경마를 모르는 사람들의 마구잡이 타박도, 경마를 즐길 줄 아는 팬들의 숫자가 늘수록 줄어들게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즐기기에 충분히 좋은 마필 자원들이 있다. 그 말들의 최선 질주를 응원하기 위해 베팅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지영 기자 olympus77@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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