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마의 부상과 컨디션 난조, 그리고 궂은 날씨가 겹치며 예상 외 전개 이어져

영국 현지시각으로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영국과 아일랜드 경마를 통틀어서 가장 큰 장애물 경주 일정인 첼트넘 페스티벌(Cheltenham Festival)이 열렸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27개 경주**가 치러졌고, 장애물 경주마에게 클래식 경주와 비슷한 성격인 허들 경주 G1 트라이엄프 허들(Triumph Hurdle)과 펜스 경주 G1 아클 챌린지 트로피(Arkle Challenge Trophy), 현역 최강 허들 경주마를 가리는 G1 챔피언 허들(Champion Hurdle), 2마일 펜스 최강마를 가리는 G1 퀸 마더 챔피언 체이스(Queen Mother Champion Chase), 그리고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펜스 경주 G1 첼트넘 골드 컵(Cheltenham Gold Cup)을 포함해 G1이 14개가 열렸다. 이번 글에서는 나흘 동안 열린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주목할 만한 경주를 정리했다. 

* 아래 표기한 시각은 현지 시각

** 3월 13일 열릴 예정이었던 크로스컨츄리 체이스 경주는 주로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3/12 15:30 G1 챔피언 허들(Champion Hurdle), Old, 2m 1/2f, Heavy, 8 hurdles

첼트넘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당연 컨스티투션 힐(Constitution Hill)의 불참이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허들 경주마란 칭호에 도전하던 컨스티투션 힐은 체내 염증 수치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챔피언 허들과 남은 올 시즌을 포기했다. 현역 최강 허들 경주마와 아일랜드 현역 최강 경주마 스테이트 맨(State Man)의 두 번째 맞대결은 이렇게 무산되었다. 

궂은 날씨로 인해 다습에서 불량한 주로로 상태가 바뀐 첼트넘 페스티벌 첫째 날. 스테이트 맨의 독주가 예상된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경쟁마로 떠오른 말은 스테이트 맨보다 한 살 어린 아이리시 포인트(Irish Point)였다. 허들 경주 데뷔 시즌에 잠재력을 제법 선보였으며, 챔피언 허들에 나서기 전까지 G1 2승을 포함해 대상경주에서 4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2023년 12월 28일 레퍼즈타운(Leopardstown)에서 열린 G1 크리스마스 허들(Christmas Hurdle)에서는 3마일에 가까운 경주를 불량한 마장에서 치렀는데도 11마신차 여유로운 승리를 기록하면서 지구력이 검증된 상태였다. 

전방에 도주마 두 마리를 세운 스테이트 맨과 아이리시 포인트는 최종 코너 전까지 선행하면서 틈을 노렸다. 먼저 행동에 나선 말은 아이리시 포인트. 최종 직선에 진입할 때 제일 앞에 머리를 내밀었던 아이리시 포인트는 곧바로 자신을 따라온 스테이트 맨과 경합을 펼쳤다. 거의 동시에 마지막 장애물을 넘은 두 말은 속도 싸움을 이어갔으나 힘이 더 남아 있던 말은 스테이트 맨이었다. 스테이트 맨은 1 1/4마신차로 아이리시 포인트를 꺾으며 2년 만에 첼트넘에서 트로피를 다시 들어 올렸다.  

2024 Champion Hurdle(G1), Cheltenham Old, 2m 1/2f, Heavy, 8 hurdles

3/13 15:30 G1 퀸 마더 챔피언 체이스(Queen Mother Champion Chase), Old, 2m, Soft, 13 fences

2024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우승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졌어야는 경주였다. 175 레이팅이자 펜스 경주 무패를 자랑하는 엘 파비올로(El Fabiolo), 170 레이팅이면서 연대율 100%를 자랑한 존봉(Jonbon)의 맞대결이 예고되었고, 함께 출주한 에드워드스톤(Edwardstone), 엘릭시어 드 넛(Elixir De Nutz), 젠틀맨 드 (Gentleman De Mee) 또한 레이팅이 160 이상인 준마였다. 그러나 경주는 시작 전후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졌다. 

먼저 존봉이 경주를 포기했다. 존봉의 조교사 니키 헨더슨(Nicky Henderson)은 경주 당일 오전 존봉의 출주 취소를 공지했다. 컨스티투션 힐의 시즌 아웃, 이베리코 로드(Iberico Lord)의 경주 중단에 이어 존봉까지 경주를 포기하면서 헨더슨 마사에 속한 유력마 전부가 이번 첼트넘 페스티벌 게시판에서 사라졌다. 이후 헨더슨 마사의 백전노장 시슈킨(Shishkin) 또한 출주를 포기하면서 헨더슨 조교사는 이번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G1 무관의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계속된 비로 인해 표기상으로만 다습한 주로에서 열린 경주. 여섯 마리로 시작된 경주는 세 마리로 끝나는 이변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경주에서 이탈한 말은 우승이 가장 유력했던 엘 파비올로. 선두권에서 달리던 엘 파비올로는 첫 번째 장애물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다섯 번째 장애물에서는 거의 넘어질 뻔했다. 폴 타운엔드(Paul Townend) 기수는 곧바로 말 머리를 돌려버렸다. 

두 번째로 경주를 포기한 말은 엘릭시어 드 넛. 경주 중반까지 선두권을 이어가던 엘릭시어 드 넛은 마지막 세 번째 장애물을 넘고 갑자기 힘을 잃어버렸다. 18살의 청년 기수 프레디 진젤(Freddie Gingell)은 더 이상의 경주는 의미 없다고 판단해 경주를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경주를 마치지 못한 말은 에드워드스톤이었다. 경주 내내 선두를 달린 에드워드스톤은 다리가 풀려버린 나머지 마지막 두 번째 장애물을 넘다가 중심을 잃어버리며 넘어졌다.

푸남뷸 시볼라(Funambule Sivola)가 저 멀리 처진 가운데 그렇게 경주는 캡틴 기네스(Captain Guinness)와 젠틀맨 드 메 둘만의 대결이 되었다. 마지막 장애물을 넘었을 때 선두 캡틴 기네스와 젠틀맨 드 메의 거리는 3마신. 젠틀맨 드 메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추격을 이어갔지만 마지막 장애물 이후 첼트넘의 최종 직선은 고작 반 펄롱밖에 되지 않았다. 최종 결과 캡틴 기네스가 1 1/2마신차로 우승하면서 마생 첫 G1 우승을 따냈다. G1 슈프림 노비시스 허들(Supreme Novices' Hurdle)을 슬레이드 스틸(Slade Steel)로 우승한 레이첼 블랙모어(Rachael Blackmore) 기수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두 번째 G1을 차지했다. 

2024 Queen Mother Champion Chase(G1), Cheltenham Old, 2m, Soft, 13 fences

3/14 14:50 G1 더 페스티벌 트로피(The Festival Trophy), New, 2m 4 1/2f, Soft, 17 fences

출주한 말 11마리의 레이팅이 151~166 안에 몰려 있었다. 따라서 비슷한 수준의 경주마만 출주하기에 흥미진진할 것으로 예상된 경주였다. 경주 전 1번 인기를 받은 말은 2연패를 노린 앙브와 알렌(Envoi Allen)이었다. 작년 이 경주에서 블랙모어 기수와 함께 174 레이팅의 시슈킨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2023-24 시즌에는 승리가 없었지만 준수한 주력을 선보여왔다. 이외에 2023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노비스 등급에서 G1을 따낸 스테이지 스타(Stage Star), 경주 거리를 대폭 줄여서 나선 노장 컨플레이티드(Conflated), 1월 켐튼(Kempton)에서 에드워드스톤과 픽 도리(Pic D'Orhy)와 같이 쟁쟁한 말을 꺾은 밴브리지(Banbridge) 등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번 경주에서 가장 빛난 건 경주마가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Sir Alex Ferguson)이었다. 바로 앞 경주인 프리미어 핸디캡 퍼템스 파이널(Pertemps Final)에서 퍼거슨 경이 소유한 몬미랄(Monmiral)이 기적의 역전승을 선보였는데, 그 짜릿함이 채 가시기 전에 프로텍토랏(Protektorat)이 이어서 우승해버렸다.

프로텍토랏은 2021년 12월 아인트리(Aintree)에서 3마일 1펄롱 경주에서 우승한 이후 줄곧 3마일이 넘는 장거리 경주에만 나섰다. 2023-24 시즌도 3마일 경주로 시작했으나, 두 차례 나선 경주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자 댄 스켈튼(Dan Skelton) 조교사는 다시 짦은 거리의 경주에 출주하는 선택을 내렸다. 2년 반 만에 출주한 2마일 4펄롱 경주였지만, 지구력은 타고난 말이었기에 첼트넘의 진창길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경주 내내 전방에서 선두를 압박한 프로텍토랏은 최종 직선에 설치된 두 개의 장애물을 넘으며 앙브와 알렌과 선두 경쟁을 펼쳤다. 프로텍토랏은 마지막 반 펄롱에서 앙브와 알렌과 거리를 벌릴 수 있었고, 그렇게 4마신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1년 4개월 만에 G1 우승이자 4년 만에 2마일 4펄롱 경주에서 우승한 것은 덤이었다. 

2024 The Festival Trophy(G1), Cheltenham New, 2m 4 1/2f, Soft, 17 fences

3/15 14:50 G1 더 스파 노비시스 허들(The Spa Novices' Hurdle), New, 3m, Heavy, 12 hurdles

이번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가장 짜릿한 승부는 마지막 날에 나왔다. 2005년 신설되어 비교적 최신의 대회인 장거리 노비스 허들 경주 더 스파 노비시스 허들에서 버저비터와 같은 승부가 펼쳐졌다. 

13마리가 출주한 이번 경주의 주인공은 7세마 스텔라 스토리(Stellar Story). 이번 경주 전까지 내셔널 헌트 플랫에서는 두 번 우승했지만, 허들 경주에서는 미우승마 경주 딱 한 번 우승한게 전부인 말이었다. 이번 경주에서도 33/1이란 아주 높은 배당률을 받으며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낮았었다. 반대로 가장 낮은 배당률을 기록한 말은 리딩 토미 롱(Readin Tommy Wrong)으로, 1월 나스(Naas)에서 G1 경주를 우승했으며 공식경주 4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경주는 또 다른 영국 축구계의 거장 해리 레드냅(Harry Redknapp)이 소유한 경주마 더 주크박스 맨(The Jukebox Man)의 대도주로 시작되어 대도주로 끝날 뻔했다. 3마일의 아주 긴 거리의 경주지만, 더 주크박스 맨은 첼트넘의 뻘밭에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부터 선두로 나서더니 최종 직선까지 그대로 기세를 이어갔다. 나머지 경주마들은 더 주크박스 맨이 이끄는 페이스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자기에 맞는 각질에 맞춰서 마지막 승부를 준비했다. 스텔라 스토리는 강선행을 택하며 두 번째 순위를 꾸준하게 유지했다. 한편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 리딩 토미 롱은 두 번째 마지막 장애물을 넘고 실속했고, 타운엔드 기수는 그대로 경주를 포기했다. 

마지막 장애물을 넘은 후 더 주크박스 맨과 스텔라 스토리의 차이는 4마신. 거기에 스텔라 스토리는 마지막 장애물을 넘을 때 상당히 높이 뛰면서 추가로 체력을 소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 주크박스 맨의 우승이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승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스텔라 스토리가 폭발적으로 가속하며 더 주크박스 맨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고, 힘이 소진된 더 주크박스 맨은 영국과 아일랜드 경마장에서 가장 가혹한 오르막 구간을 자랑하는 첼트넘의 마지막에서*** 똑바로 전진하지 못하고 지그재그로 주행했다. 스텔라 스토리는 그 틈을 파고들었고, 승부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결정됐다. 스텔라 스토리의 목차 승리. 

*** 첼트넘 경마장 마지막 구간의 경사도는 1도가 채 되지 않지만, 내리막 구간에 곧바로 이어진 오르막 구간이 3펄롱이나 이어진다. 마지막 2펄롱의 높낮이 차이는 무려 11.48미터에 달한다. 

2024 The Spa Novices' Hurdle(G1), Cheltenham New, 3m, Heavy, 12 hurdles

3/15 15:30 G1 첼트넘 골드 컵(Cheltenham Gold Cup), New, 3m 2 1/2f, Soft, 22 fences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열리는 경주 중 가장 권위가 높은 경주이자 장애물 경주의 꽃인 첼트넘 골드 컵은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압도적인 우승 1순위 갈로팽 데 샴(Galopin Des Champs)이 첼트넘 골드 컵 2연패를 어렵지 않게 달성했다. 

갈로팽 데 샴을 두 번 꺾은 패스터슬로우(Fastorslow)를 비롯해 제리 콜롬(Gerri Colombe), 브레이브맨스게임(Bravemansgame) 등 장거리 펜스 종목의 준마들이 대거 출전했지만, 갈로팽 드 샴의 탄탄한 주력을 따라잡기엔 부족했다. 전방에서 줄곧 선두권을 추격한 갈로팽 드 샴은 평소 즐겨쓰는 전략을 이번에도 사용했다. 세 번째 마지막 장애물부터 페이스를 끌어 올리더니 두 번째 마지막 장애물에서 선두를 쟁취했고, 그렇게 리드를 벌려갔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공식 2착" 제리 콜롬과의 마신차는 3 1/2마신. 

한편 이번 경주에서는 패스터슬로우의 기수 제이 제이 슬레빈(J J Slevin)이 16번째 장애물을 넘다가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패스터슬로우는 기수가 없는 상황에서 주로를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경주를 이어갔고, 또 상당히 잘 달렸다. 점프를 훌륭하게 해냈으며 페이스도 스스로 잘 조절했다. 갈로팽 데 샴과의 라이벌 관계를 이해하는 패스터슬로우는 최종 코너를 마치면서 가장 앞서 달리게 되었으며, 마지막 장애물을 넘은 상태에서 갈로팽 데 샴과의 거리를 2마신차까지 벌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반 펄롱에서 힘이 다 해버렸고, 그대로 우측으로 기울어버렸다. 패스터슬로우는 갈로팽 데 샴과 3/4마신차 "비공식 2착"으로 경주를 마쳤다. 

2024 Cheltenham Gold Cup(G1), Cheltenham New, 3m 2 1/2f, Soft, 22 fences

궂은 날씨로 인해 순탄하지 않았던 이번 첼트넘 페스티벌이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페스티벌의 리딩 기수는 타운엔드 기수로, 총 6승을 거뒀는데 그중 G1이 무려 5개였다. 리딩 조교사는 윌리 멀린스(Willie Mullins) 조교사로, 그가 육성한 아홉 마리가 우승(G1 8승), 여섯 마리가 2착, 여섯 마리가 3착을 기록했다. 타운엔드 기수는 첼트넘 페스티벌에서 네 번째 리딩 기수, 멀린스 조교사는 11번째 리딩 조교사가 되었다. 

영국/아일랜드 장애물 경주에서 다음에 찾아오는 큰 일정은 4월 11~13일 아인트리 경마장에서 열리는 그랜드 내셔널(Grand National)이다. 그리고 4월 30일 시작해 5월 4일 끝나는 펀치스타운 페스티벌(Punchestown Festival)을 끝으로 영국/아일랜드 장애물 경주 시즌은 사실상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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