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네의 농막들은 빠쁘레 마을 주민들이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거처하는 곳이다. 마이다네에는 감자와 밀을 심는 밭도 있고, 소들을 방목하는 드넓은 풀밭도 있어서 우기가 오기 전에 가축을 몰고 마이다네로 올라왔다가 눈이 오기 시작하면 빠쁘레 마을로 돌아간다.

사진 왼쪽 공제선 위에 피케 1봉과 2봉이 보인다. ⓒ김홍성  

 

마네는 신성한 탑의 일종이다. 행인은 오른쪽을 탑쪽으로 하고 지나다닌다. ⓒ김홍성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석탑들. ⓒ김홍성  

 

길에 나선 모녀 ⓒ김홍성 

 

 

자프레의 셀파 호텔에서는 감자 졸임 말고도 토종 배추의 일종인 싹이라는 채소 졸임이 반찬으로 나왔다. (녹두죽의 일종)도 걸쭉하니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아주 만족스럽게 먹고 이도 닦은 후에 아직 덜 마른 양말 네 켤레를 배낭에 주렁주렁 매단 양말 장수 행색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지난 2월 하순에는 눈이 무르팍까지 쌓여 있던 똘루 곰파에서 오는 길을 거슬러 가는 것이다. 능선이 나오고, 석경담이 나왔다. 석경담과 나란히 난 길 끝에서 길은 갈라지는데, 곧장 가는 길은 불부레로 가는 길이었다.

좌측으로 난 길이 똘루 곰파로 이어지는 길인데 한참 만에 잘 만든 오래된 석탑이 나왔다. 이 석탑에서 우측으로 난 길이 똘루 곰파로 가는 길이었고, 곧장 가는 길이 앙 다와 씨네 동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모녀로 보이는 셰르파 여성 둘이 탑이 있는 오솔길 저쪽 짙은 그늘에서 나와 따사로운 햇살 속을 걸어 산모퉁이를 돌아갔다. 잠시 후에는 염소 치는 아이도 한 명 만났는데 이 아이는 앙 다와 씨네 마을에 사는 아이였다.

길가에 앉아서 잠시 쉬는 참에 사탕을 주려 했더니 앙 다와의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 했다. 아이는 앙 다와 씨가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라'라고 말한 후에야 사탕을 받았다.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먼 친척이라도 되는 듯했다.

앙 다와 씨네 여름 농막이 있는 마이다네로 가는 길은 앙 다와 씨의 본가가 있는 빠쁘레로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갈라져 숲으로 이어졌다. 숲을 빠져 나오자 옛날 우리나라 화전 같은 개활지가 나오고 듬성듬성 농가도 보였다. 거기가 마이다네 마을이었다. 1130분에 출발하여 230분에 도착하였으니 점심 먹고 천천히 세 시간을 걸어온 것이었다.

 

마이다네의 농막들 ⓒ김홍성 

 

마이다네에 이르자 발걸음이 빨라진 앙 다와 씨 ⓒ김홍성

 

마이다네의 방목장 ⓒ김홍성 

 

마이다네는 빠쁘레 마을 주민들이 여름을 나기 위해 지은 농막이 있는 곳이다. 빠쁘레 마을 주민들은 우기가 오기 전에 가축을 몰고 마이다네로 올라와 방목도 하고 밭농사도 짓다가 눈이 오기 시작하면 모두 농막에서 철수하여 빠쁘레의 본가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이다네 마을에 이르자 앙 다와 씨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와, 딸 셋, 그리고 세 살 난 아들이 기다리는 집은 마이다네의 맨 아래쪽에 있었다. 앙 다와 씨의 농막은 2층이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층계 옆으로 광이 있었고, 광에는 감자가 가득 널려 있었다.

이층의 광 한쪽 구석에는 감자가 쌓여있었다. ⓒ김홍성

 

앙 다와 씨의 마이다네 농막 2층. 광을 겸하는 곳이다. ⓒ김홍성 

 

여름에만 쓰는 집이라 하여 허름할 줄 알았는데 제법 규모 있게 지은 집이었다. 그러나 문이 작고 천정이 낮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이마나 머리를 다치기 쉬웠다. 나보다 키가 훨씬 큰 김 선생의 머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 또는 '' 소리를 내곤했는데, 그럴 때마다 김 선생은 신음 소리를 내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아이쿠, 자세를 낮추는 걸 잊었네.

-어휴, 더 숙이라는 얘기네.

-아야야, 아직도 교만한 마음이 남았다는군.

나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김 선생 나름대로 큰 수행을 하고 있는데 웃어야 되겠는가.<계속> 

 

우리가 도착하자 앙 다와 씨의 동네 친구들이 찾아왔다.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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