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쁨으로 넘쳐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잘못"

가을날의 저녁 7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해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여름철의 저녁 7시는 아직도 한낮이다. 해가 지기에는 한참을 더 있어야 하고, 대지의 열기는 화로처럼 식지 않는다. 그 일광(日光)속에서는 누구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처럼 ‘주여,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하지 못한다. 그런 노래가 가능해지는 것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어느새 한낮에서 어둠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 때쯤부터다. 아, 벌써 가을이 오고 한 해가 이울고 있구나,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쯤일까, 하고 계산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 계산은 추억의 달콤함을 거느릴지라도, 희망과 설렘의 두근거림을 동반하기는 어렵다. 저녁, 가을, 성숙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노년의 시간을 찬양한 사람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고대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를 꼽을 수 있다.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던 그는 저서 『노년에 관하여』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여기는 노년이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노년에는 활동하기가 어렵다, 몸이 허약해진다, 쾌락이 사라진다, 그리고 죽음에서 멀지 않다는 것 때문에 노년을 비참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키케로는 “세계의 역사를 고찰한다면 위대한 국가들은 노인들에 의해 지탱되고 회복된다”며 노년의 분별력을 상찬한다. 노년의 기억력 감퇴에 대해서도 “열정과 관심만 남아있다면 노인들도 지적 능력을 얼마든 발휘할 수 있다”며 아테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노년에 법정에서 무죄 방면된 이야기를 예로 든다. 소포클레스는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재산권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당한다. 그러자 그는 최근 쓴 한 작품을 들고 가 재판관들에게 낭독을 하고 이것이 노망든 사람의 작품이냐고 물었다. 당연히 무죄방면이었다.

마르쿠스 키케로.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자신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정신적인 쾌락보다 더 큰 쾌락은 존재할 수 없다.”
마르쿠스 키케로.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자신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정신적인 쾌락보다 더 큰 쾌락은 존재할 수 없다.”

키케로는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이소크라테스나 고르기아스, 플라톤이나 크세노크라테스와 같이 노년기에도 엄청난 학구열을 불태운 작가나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벌판에서 씨 뿌리고 수확하며 저장하는 많은 농부들의 예도 든다. 그들이 누구를 위하여 나무를 심는단 말인가. 그 노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일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후손들에게 전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라오.” 쾌락의 감퇴에 대해서도 그의 말은 이어진다.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역(戰役)을 다 치르고 나서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자신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죽는 순간까지 오롯이 하늘과 대지를 연구하거나 학구열에 불타거나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 연희와 놀이와 창기(娼妓)의 어떤 쾌락도 여기에 비할 수 있겠는가. 정신적인 쾌락보다 더 큰 쾌락은 존재할 수 없다네.”

세상에서 이런 경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정치인이 올해 95세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지난 7일 집에서 쓰러져 이마를 14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고도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의 무주택자를 위한 해비타트 운동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석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외신들이 전한다. 지미 카터 프로젝트는 그동안 모금한 성금을 가지고 2021년까지 이곳에 12채의 단독 주택과 26채의 타운홈을 더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4년 전 간에서 발생한 암세포가 뇌로까지 옮겨갔다며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공개한 바 있다. 그가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여는 주일 성경교실에는 그의 가르침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투병 사실이 발표된 뒤 첫 주교에 찾아온 이들은 700여명으로 평소 참석자보다 무려 20배 가까이 많았고, 그 다음 주에는 토요일 밤 9시께부터 교회를 향한 자동차 행렬이 1㎞ 가까이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까지 했다. 그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한 연설에서 “국가 간에 일어나는 전쟁이나 한 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 또 이혼으로 치닫는 부부 간의 분쟁은 모두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면서 “바로 견해 차이와 소통을 꺼리는 자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용서와 소통은 얼마나 어려운가. 미움과 갈등을 선택하는 것은 얼마나 간단하고 손쉬운가. 그러나 어려움을 통과하지 않고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들이다. 그 불완전한 존재들이 완전함으로 가는 용서와 소통을 이루려면 자신이 먼저 백 번을 참고 상대를 이 백 번 용서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당신의 삶이 평화와 기쁨, 감사로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사진=habitat.org 갈무리).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당신의 삶이 평화와 기쁨, 감사로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사진=habitat.org 갈무리).

봉사활동에 참석한 카터 전 대통령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 수 백 명의 자원봉사자들 앞에서 “당신의 삶이 평화와 기쁨, 감사로 충만하지 않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기본적인 결정은 우리 각자가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기쁨으로 넘쳐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키케로는 노인들이 두려워하는 네 가지 것 중의 마지막 항목인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일이 설익었을 때는 따기가 힘들지만 농익었을 때는 저절로 떨어지듯, 노인들에게는 완숙이 목숨을 거두어간다네. 완숙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즐거운가. 내가 죽음에 더 가까이 갈수록 오랜 항해 끝에 드디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들어서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그래서 키케로는 “노년이 내게는 가벼우며, 짐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즐겁기까지 하다”고 했다.

나이가 들자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소설을 쓰고 있는 친구가 있다. 소설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과는 관계없이 2년이 안 되는 기간에 20여 편의 중단편을 탈고 했고, 새벽부터 일어나 정해진 일과처럼 글을 쓴다. 그가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됐다며 말한다. “상대방을 인정할 때, 내가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상대를 인정한 후 내가 인정받는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니 세상이 더없이 편하게 느껴진다.”

"아, 벌써 가을이 오고 한 해가 이울고 있구나,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쯤일까."

다른 사람의 맘에 들지 않는 것을 최대한으로 용서하고, 용서되지 않는 부분은 담대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 그 완숙의 가을 벌판으로 걸어가는 것. 그럴 때 우리는 릴케처럼 “주여,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

임순만 소설가·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편집국장)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