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둥 곰파에서 시바라야로 곧장 내려가는 능선 길이 있다는 걸 우리는 몰랐다. 만일 능선길로 하산했더라면 걷는 도중에 가우리상칼 히말과 그 주변의 설산을 좀 더 후련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시바라야 윗쪽의 마을과 구불구불 멀리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   

 

주지 나왕 초졸 스님은 우리를 자기 방에 초대했다. 천진하게 생긴 동승 둘이 따라 들어와 차 시중을 들었다. 장학금 3천 루피를 기탁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피케 도보여행 중 세 학교에 기탁한 장학금은 3천 루피씩 모두 9천 루피였다. 토둥 곰파의 일주문을 나와서 다시 만난 석탑들은 여전히 햇살을 받고 있었다.

 

올라올 때는 확연하게 보였던 피케 능선은 구름과 안개로 인하여 윤곽만 간신히 보였다. 피케 정상에 서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들을 바라볼 수 있는데, 고개를 좌우로 돌려야만 다 볼 수 있다던 앙 도로지 씨의 말이 떠올랐다. 일망무제一望無際가 그런 뜻일까? 

 

데우라리 고개로 내려오니 10시가 좀 넘었는데 아침 준비는 안 되어 있었다. 그게 미안했던지 부인은 남쪽 언덕을 가리키며 조금만 올라가도 가우리상칼 히말이 잘 보인다고 알려 줬다. 가우리상칼 히말을 비행기 창문으로만 보았던 나에게는 솔깃한 정보였다.

 

데우라리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가우리상칼 히말의 모습. 앞산 능선에는 토둥곰파에서 시바라야로 곧장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걸 몰랐다.   

 

카트만두에서 루클라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왼쪽 차창으로 몇 차례 스친 일이 있는 가우리상칼 히말은 포카라 쪽에 있는 마차푸차레 히말처럼 신성하게 여기는 성산이어서 정상 등정이 금지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성산을 데우라리 고개의 남쪽 능선에서 오래 조망하게 될지는 몰랐다.

 

며칠 뒤 카트만두에 돌아와 가이드북을 다시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토둥 곰파에서 시바라야로 곧장 내려가는 긴 능선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총누리가 그 길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지만, 만일 능선 길을 이용하여 시바라야로 하산했더라면 도중에 가오리상칼 히말과 그 주변의 설산을 좀 더 후련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올 때처럼 시바라야 골짜기를 향하는 비탈길을 따라 걸었다. 그 비탈에는 올 때 못 본 랄리구라스들이 피고 있었다. 만일 내가 3월 중순이나 하순, 또는 4월 초순에만 왔어도 랄리구라스가 만개한 숲길을 걸어 피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컸다.

 

11시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1130분에 하산을 시작했는데 시바라야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30분, 두 시간만에 내려왔다. 이 날 곧장 지리로 나가서 다음날 카트만두로 갈 수 있었지만 더 걸어볼 마음이 안 났다. 서둘러 카트만두로 가야할 이유도 없었기에 시바라야에서 쉬기로 했다.

 

열흘 전에 지나가면서 깔끔한 점심을 먹었던,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친 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강에 내려가 목욕을 해 볼 까 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포기했다. < 계속 > 

 

 

토둥 곰파 대웅전이 있는 본관 건물.  

 

데우라리 고개의 호텔들. 

 

마네탑 근처에 놓인 돌. 옴마니밧메훔을 새겼다. 

 

데우라리 고개의 마네탑의 돌판에 그려진 보우다탑. 

 

데우라리와 시바라야 중간 마을의 한 가게. 양계장 계란을 햇빛 속에 진열해 놨다.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한 랄리구라스 나무 밑으로 이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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